전우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과 같은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가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기업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며 “환경오염을 줄이는 기술이 도입되고, 원유를 대체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석유화학 업종은 더 이상 사양 산업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은 약 10년 전부터 ‘화학적 재활용’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롯데케미칼은 태양광이나 2차전지 등 미래 사업을 제때 준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재활용 기술을 통해 이미지 회복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이 오는 2023년부터 신기술이 적용된 플라스틱 재활용 설비를 가동하기로 결정해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울산광역시 남구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사진=연합뉴스
#“죄책감 없이 플라스틱 써도 되는 시대 열린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은 ‘물질 재활용’이다.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종류별로 선별·분류한 후 세척하고, 다시 녹였다가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술 난이도는 낮지만 완성물의 물성이 저하돼 4~5회 이상 재활용이 어렵고 분류·정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 등 글로벌 선두권 화학 업체들이 개발하는 화학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과 폐의류, 유색 저품질 페트 등을 모두 모아 분쇄한 후 화학 작용을 통해 페트의 전 단계인 ‘해중합된 단량체(BHET)’를 만드는 방식이다. BHET를 다시 페트로 만들면 기존의 페트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신규 페트를 만들 수 있다. 폐플라스틱에서 불순물이 원천적으로 제거돼 의료용 기기나 식품 용기로도 쓸 수 있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롯데케미칼은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등 산유국의 석유화학 원료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플라스틱을 회수하는대로 영구적인 재활용이 가능해 플라스틱 사용에 따른 죄책감이 사라질 것”이라며 “롯데케미칼뿐 아니라 많은 화학업체가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전우제 연구원도 “매출 원가의 약 45%를 롯데케미칼이 직접 조절할 수 있게 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롯데케미칼 내부에서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울산광역시와 ‘친환경 플라스틱 재활용 플랫폼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협약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2공장에 약 1000억 원을 들여 11만 톤(t)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 공장을 신설한다. 이 공장에는 5t 규모의 폐페트 분쇄조각을 연간 5만t까지 처리하는 ‘해중합 공장’도 들어선다. 해중합 공장이 국내에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공장 신설 이후 해중합과 화학적 재활용 페트 생산시설을 신·증설해 재활용 페트 사업 규모를 26만t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2030년까지 기존 울산의 페트 공장도 화학적 재활용 페트 공장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롯데케미칼은 울산광역시와 ‘친환경 플라스틱 재활용 플랫폼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왼쪽)과 황진구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케미칼의 재활용 설비는 2024년 본격적으로 가동되지만 2023년부터 파일럿 설비(연구용 시험 설비)를 가동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계획에 따르면 2030년부터는 매해 약 100t의 페트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석유화학 업체 중 플라스틱 재활용에 적극적인 곳은 바스프와 셸이 꼽힌다. 셸은 2025년까지 연 100만t 규모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바스프는 지난해 이미 다양한 플라스틱을 열분해해 70%가량 회수하는 방식의 재생 플라스틱 상업화에 성공했다.
#신사업 투자 적어 화학 빅3 중 가장 밀려
롯데가 플라스틱 재활용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태양광, 2차전지 등 다른 신사업에는 뒤처졌다는 인식 때문이다. 롯데그룹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롯데그룹 한 관계자는 “2013년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증설이나 2015년 삼성으로부터 화학 계열사들을 인수한 것은 주효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면서도 “그 이후 수년 동안 태양광, 2차전지 열풍 등에 소극적으로 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도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500억 원 넘는 적자를 기록해 너무 석유화학 외길만 걷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며 “지난해 갑작스럽게 2차전지 재료인 동박 생산 업체 두산솔루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것도 이 같은 질책이 이어지면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사업에 대한 실망감은 주가에서도 드러난다. 롯데케미칼은 2018년이나 지금이나 화학업계 시가총액 3위 기업이지만 1·2위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2018년 2월 기준 롯데케미칼의 시가총액은 16조 원이었고, 1위 LG화학과 2위 SK이노베이션은 각각 26조 원과 18조 원대였다. 하지만 현재 롯데케미칼의 시가총액은 10조 원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각각 63조 원과 26조 원에 달한다. 롯데케미칼보다 한참 뒤쳐졌던 한화솔루션(옛 한화케미칼)은 태양광 시장을 공략하면서 시가총액도 8조~9조 원으로 올라 롯데케미칼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대규모 인수합병(M&A)도 준비 중이다. 2020년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현금과 단기금융자산이 3조 원이 넘는다. 이 자금으로 친환경 사업과 관련한 M&A에 나서면 사양산업의 치중됐다는 인식도 단숨에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 롯데케미칼 측의 계산이다. 지난 2월 롯데케미칼은 컨퍼런스콜에서 “친환경과 배터리 소재, 재활용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M&A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한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2차전지·태양광 사업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고, 경영전략에 맞춰서 재활용 관련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며 “M&A 관련해서는 다각도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