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쏘팔코사놀배는 최고기사를 가리는 결정전답게 구색을 제대로 갖췄다. 9명의 기사가 리그전을 펼쳐 1위가 도전자가 되어 타이틀 보유자 신진서 9단과 도전 5번기를 벌이게 된다. 작년 1기 대회에서는 리그전 순위 1, 2위인 박정환과 신진서가 우승 자리를 두고 5번기를 가졌는데 신진서가 3-0 승리를 거두고 초대 챔프가 됐다.
박정환(왼쪽)이 강동윤을 꺾고 다시 신진서를 만날 채비를 갖췄다. 사진=K바둑 제공
올해 쏘팔코사놀배는 9명의 기사들이 본선에 진출해 도전권을 향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본선 리그에는 전기 대회에서 시드를 확보한 4명(박정환, 신민준, 김지석, 변상일 9단) 외에 예선을 통과한 4명(이창석 7단, 강동윤 9단, 설현준 6단, 강승민 7단) 그리고 후원사 시드를 받은 이창호 9단까지 총 9명이 풀리그를 벌여 순위를 정하게 된다.
최고기사를 가리는 결정전답게 올라올 만한 기사들의 모습은 모두 보인다. 박정환, 신민준, 변상일은 신진서와 함께 올해 한국바둑 제2의 르네상스를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기사들. 거기에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1989년생 동갑내기 김지석과 강동윤도 무시할 수 없고, 이창석, 설현준, 강승민도 충분히 다크호스 역할이 가능한 멤버들이다. 이창호 9단이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5월 1일 현재 기사에 따라 5~6게임을 소화한 가운데 박정환 9단이 5연승으로 1위를 지키고 있고 변상일이 5승 1패, 강동윤이 4승 2패로 그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올해 LG배 우승의 신민준도 기대를 모았지만 우승 직후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3승 3패 평범한 성적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4월 29일 중요한 일전이 있었다. 4연승의 박정환과 4승 1패의 강동윤이 만났던 것. 신진서 등장 전 박정환이 상당히 오랫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둘 간의 상대 전적에서 박정환이 많이 앞설 것 같지만 의외로 9승 8패로 살짝 앞선 상황에서 마주했다. 1년 전엔 강동윤이 8승 6패로 앞섰는데 박정환이 최근 1년 사이 3연승을 거두면서 역전시켰다.
도전권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대국이었지만 바둑은 142수 만에 끝나고 말았다. K바둑 TV의 해설자 안형준 9단은 “무척 중요한 승부여서 접전이 될 것이라 예측했는데 너무 빨리 끝나 놀랐다”면서 “박정환 9단이 너무 잘 둔 탓도 있지만, 강동윤 9단이 실제 이상으로 형세를 비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바둑이 박정환의 승리로 끝나면서 박정환은 도전권에 한발 더 다가섰다. 5승의 박정환과 5승 1패의 변상일이 공동 선두지만 박정환은 한 경기를 덜 치렀고, 또 도전권 경쟁자들인 변상일과 강동윤에게 승리했기 때문에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동률일 경우 승자승 원칙을 따른다).
9연승, 12연승을 주고받은 박정환(왼쪽)과 신진서. 이번에는 어떤 승부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본선 리그 중간 결과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묘한 패턴을 보이고 있는 신진서와 박정환의 타이틀 승부가 다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둘의 승부가 묘하다는 한 것은 지난 승부 일지를 들춰보면 드러난다.
2018년과 2019년 박정환은 신진서에게 9연승을 거둔다. 이 2년간 신진서는 박정환에게 한판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 6월 새로 창설된 쏘팔코사놀 결승에서 신진서가 3-0으로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신진서는 제3기 용성전 결승에서 다시 박정환에게 2-0 승리를 거두고, 곧바로 이어진 두 사람의 슈퍼매치 남해7번기 승부에선 7전 전승, 일방적인 승리 끝에 도합 12연승을 거두며 천적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박정환은 둘 간의 마지막 대국인 작년 12월 20일 바둑리그에서 승리하며 긴 연패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되지만, 약 6개월 동안 신진서에게 당한 12연패는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박정환이 연패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박정환은 남해7번기에서 7연패를 당한 이후 곧장 이어진 중국 갑조리그에선 7연승을 거두면서 언제 연패를 당했느냐는 듯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7연승에는 신진서도 어려워하는 중국의 초일류 딩하오, 렌샤오, 판팅위, 자오천위, 스웨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다시 바둑리그에서 만난 신진서에게 216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변했음을 알렸다.
박정환은 12연패의 시발점이었던 쏘팔코사놀배에서 신진서에게 설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박정환의 남은 상대는 김지석, 이창호, 이창석이다. 모두 만만찮은 상대들이지만 2승 1패만 거두면 자력으로 도전권 획득이 가능하다. 예측할 수 없는 둘만의 승부, 박정환이 다시 신진서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제2기 쏘팔코사놀배 최고기사결정전의 우승상금은 7000만 원, 준우승상금은 2000만 원이다. 본선 대국료로 승자는 150만 원, 패자는 80만 원을 받는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3회가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