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 나이츠 구단은 지난 4월 29일 전희철 신임 감독의 부임을 발표했다. 지난 10여 년간 팀을 이끈 문경은 감독의 후임이다. 전희철 감독은 구단 역사상 8대 감독이다. 그는 “SK 나이츠를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팀으로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에어본’ 전희철 감독이 2021-2022시즌부터 서울 SK 나이츠 감독으로 팬들 앞에 선다. 사진=KBL 제공
#누구보다 SK를 잘 알고 있는 인물
전희철 감독은 SK에서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2011년부터 문경은 감독대행의 부임과 함께 수석코치로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대학 시절엔 각각 연세대(문경은)와 고려대(전희철) 소속으로 라이벌 관계였지만 지도자 생활을 하며 찰떡궁합을 보여왔다.
이들은 2020-2021시즌까지 10시즌간 감독과 수석코치로 인연을 이어갔다. 이후 팀의 공식 석상은 물론 팬 대상 행사, 저녁 술자리 등에도 실과 바늘처럼 함께했다. 최근 나섰던 방송가 나들이에도 나란히 얼굴을 내비쳤다. 자택도 경기도의 한 동네일 정도다. 감독직을 놓고도 이들은 ‘배턴 터치’를 하는 셈이다. SK 구단은 문 전 감독을 기술자문 자리에 앉히며 내부 승격을 선택했다.
농구계에선 ‘언젠가 전희철이 감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그에게 감독직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앞서 타 구단에서도 장기간 수석코치를 지내며 그와 유사한 상황에 놓였던 인사가 있었다. 기존 감독 사퇴 이후 감독대행까지 맡았지만 새 얼굴이 감독직을 맡으며 다시 수석코치로 ‘강등’된 바 있다. 그러나 전희철 감독은 예상대로 문경은 전 감독에 이어 감독에 올랐다.
전희철 감독은 누구보다 SK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2003년부터 SK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활약했고 2008년 현역에서 물러나 프런트를 거쳐 코치까지 지냈다. SK가 자랑하는 포워드 라인인 김민수, 최부경, 최준용 등이 그의 코치 시절 ‘작품’으로 알려졌다.
전희철 서울 SK 신임 감독(왼쪽)은 지난 10시즌간 수석코치로서 문경은 전 감독을 보좌해 왔다. 사진=KBL 제공
#초보 감독 전희철의 과제
신임 전 감독은 이번 시즌 8위로 급격히 떨어진 팀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서울 연고, 탄탄한 모기업 지원을 등에 업은 SK는 언제나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강팀으로 꼽힌다. 지난 시즌엔 정규리그 1위(코로나19로 플레이오프 치르지 않음)를 차지했고 2018년에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영광의 얼굴들이 대거 남아 있기에 전 감독이 맡는 첫 시즌 성적이 희망적이다.
다만 전희철 감독은 선수단 내 세대교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랜 기간 SK를 이끌어온 주축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빅맨 김민수(1982년생)는 노장 축에 속한다. 간판스타 김선형(1988년생)과 최부경(1989년생)도 30대 중반에 접어든다. 주축 가드로 성장한 최성원의 상무 입대 공백도 메워야 한다.
외국인 선수 선발도 전희철 감독의 주요 임무다. 앞서 SK 구단은 2019-2020시즌 팀이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밀 워니와 재계약했다. 하지만 1년 뒤 워니에 대한 평가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외국인 선수로 뒤바뀌었다.
그간의 ‘농구대잔치 세대’ 지도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도 그의 큰 과제 중 하나다. 19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농구대잔치에서 활약한 이들은 하나둘 사령탑으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다수가 감독으로서 이렇다 할 자취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농구 인기 부흥을 이끌어야 하는 스타 출신 감독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김승기 안양 KGC 감독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인기를 이끈 대학생 스타 출신 중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이번 시즌 자신의 감독 경력 중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소녀들의 함성으로 농구장이 가득 찼던 1990년대, 그중에서도 가장 큰 함성을 끌어낸 이는 ‘산소 같은 남자’ 이상민이었다. 선수 시절 9년 연속 올스타 득표 1위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감독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흥행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숱한 우승을 경험했던 선수 시절과 달리 이상민 감독은 감독으로선 오랜 기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4-2015시즌부터 7시즌간 서울 삼성 썬더스 지휘봉을 잡고 플레이오프에 단 2회 올랐으며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그 사이 최하위를 한 시즌도 두 번이다.
이상민 감독은 남다른 각오로 이번 시즌에 나섰다. 2년 재계약을 맺고 시즌을 맞이했고 정규리그를 치르던 중 트레이드로 전력 보강에도 나섰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관희를 내주고 리그 정상급 가드 김시래를 받아왔지만 결국 최종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전희철 감독의 대학 시절, 고려대에서 동고동락했던 현주엽 전 감독도 지도자로서 ‘쓴맛’을 본 인물이다. 중계석을 지키다 창원 LG 세이커스의 부름을 받고 사령탑에 오른 그는 재임 기간 3시즌간 9위-3위-9위라는 성적표를 남기고 재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연세대 시절 ‘쌍둥이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조동현 감독도 부산 KT 소닉붐을 맡아 3시즌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다 지휘봉을 내려놨다. 반면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으로 90학번 동갑내기인 문경은 전 감독과 김승기 안양 KGC 감독은 각각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다.
김승기 감독의 지도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 감독은 ‘농구대통령’ 허재를 비롯해 김유택, 강동희, 김영만 등 스타를 배출한 중앙대 출신이지만 과거 연세대와 고려대 동료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다. 대표팀에서도 같은 포지션에서 이상민 감독에게 밀렸던 설움을 지도자로서 씻어버리고 있다. 그는 정식 감독 부임 첫 시즌인 2016-2017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석권하며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2020-2021 챔피언결정전에도 진출해 감독 커리어 두 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전희철 감독의 취임으로 또 한 명의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 감독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에게는 가까이서 지켜본 문경은 감독이라는 ‘우수 사례’가 존재한다. 10년간 코치 경험을 쌓고 사령탑으로 나서는 전희철 감독이 다음 시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