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2인자, 법무부 차관의 역할을 묻자 나온 반응이다. ‘장관 몸빵, 노가다’처럼 장관의 위임을 받아 다양한 회의나 위원회 등에 참석해 법무부의 입장을 밝히거나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바로 법무부 차관이다. 각종 백과사전에서 ‘법무부 장관을 보좌해 소관사무를 처리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적혀 있는 법무부 차관의 실제 역할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법무부 차관 시절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안 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으로, 과거 군사 정권 시절 이전에는 판사 출신들이 임명되기도 했지만 군사 정부 이후 검사 출신 고검장급이 가는 자리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했다. 수사가 아닌 행정을 맡는 자리다 보니 차관 이후 다음 보직으로의 기회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1990년 이후 법무부 장관 7명, 검찰총장 3명, 국회의원 1명, 헌재 재판관 1명 등을 배출했다. 정부의 신뢰를 받는 인물들이 임명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낙점을 받았다가 별장 성접대로 물러나야 했던 김학의 전 차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기는 좋다. 갈수록 더 인정받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각종 위원회와 회의에 참석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발탁’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법무부의 탈(脫)검찰화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처럼, 비검사 출신들의 임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역대 법무부 차관 역할 뜯어보니
법무부 출신 법조인들의 설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무부 차관은 회의 참석으로 바쁜 자리’다.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의 얼굴마담이자 최종 결정권자라면, 법무부 차관은 장관을 대신해서 법무부가 관련된 내·외부의 거의 모든 회의와 위원회를 주관한다. 법무부 간부 출신의 한 검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만 하는 게 차관의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1995년 9월부터 1992년 8월까지 법무부 차관을 지낸 김태정 전 장관은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김태정 장관 취임식 당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법무부 근무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차관은 비수사 영역이자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부의 실질적인 업무 전반을 챙긴다고 봐야 한다”며 “별도로 회의 관련 수당도 받지 못하지만 정작 실무는 다 챙기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장점은? 회의 통해 얻어지는 ‘외연’이 최고
장관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언론’에 노출될 기회도 적은 자리지만 장점은 분명하다. 각종 회의나 위원회, 국회 일정을 소화하면서 얻을 수 있는 외연 확대가 바로 그러하다. 법무부는 행정부처 특성상 국회나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 사법 관련 조직 등과의 회의가 잦은데 이에 차관이 주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차관 후 ‘영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을 기점으로 일요신문이 정리한 결과 차관 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한 사람은 7명에 달했다. 김두희(1989년 3월~1991년 4월), 김태정(1992년 8월~1995년 9월), 최경원(1998년 3월~1999월 6월), 김경한(1999년 6월~2001년 5월), 김승규(2001년 12월~2002년 2월), 이귀남(2009년 1월~2009년 9월), 김현웅(2013년 12월~2015년 2월) 전 차관이 이후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가운데 김두희, 김태정 전 차관은 검찰총장도 역임했다. 이 2명 외에도 김각영(2002년 8월~2002년 11월) 정상명(2003년 3월~2004년 5월) 등 법무부 차관 이후 검찰총장이 된 사람은 4명이다. 김오수 전 차관이 검찰총장 후보로 낙점되면서,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경우 차관 출신 검찰총장은 1990년 이후 5명째가 된다.
장관이나 총장 외의 자리로 옮긴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김학재 전 차관)이나, 헌재 재판관(김희옥 전 차관)으로 옮긴 이들도 있었다. 정동기 전 차관은 그 후 감사원장 후보로 임명됐다가 전관예우 및 재산형성 과정, 민간인 사찰보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과거 검찰 내에서 ‘김학의 검사(사진)의 법무부 차관 임명은 무리’라는 반대 평가가 있었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차관 임명을 강행했고 며칠 뒤 ‘별장 성접대 사건’이 터졌다. 사진=일요신문DB
법무부 차관 출신들의 ‘승승장구’는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다. 검사장으로 법무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차관을 하면 하루에 적게는 3~4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명함을 받을 수 있다”며 “국회부터 청와대,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능력을 보여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 자리에서 다음 임명보직으로의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차관의 대화 파트너를 보면 이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통상 법무부와 검찰과의 교류 및 소통은 검찰국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의 교류 및 소통은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지만 검사 출신이 맡아온 차관 자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후문이다.
#불명예스러운 사건도 발생
이처럼 ‘외연 확장’이 좋은 자리이다 보니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로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2013년 3월 15일~2013년 3월 21일)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 내에서 ‘김학의 검사의 법무부 차관 임명은 무리’라는 반대 평가가 당시 청와대에 전달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차관 임명을 강행했다. 며칠 뒤 ‘별장 성접대 사건’이 터졌고 이 사건은 현재 불법 출국금지 의혹 등으로 번져 지금까지도 검찰을 뒤흔들고 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2000년 전만 해도 고검장 중 가장 별로인 자리 중 하나가 법무부 차관이었는데, 갈수록 행정부처 중 법무부만의 전문성이 중요해지면서 차관 자리도 파워풀해지기 시작했다”며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역시 ‘세평’이 떨어지는 인물이 주요 보직에 가다 보니 터진 이슈”라고 평가했다.
김오수 전 차관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낙점된 것 역시 ‘차관의 역할’이 가져다준 외연 확대 기회와 여권의 신뢰가 주효했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가 판사 출신 이용구 변호사(사진)를 지난해 12월 새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하면서 60년 만에 비검사 출신 법무부 차관이 나왔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이런 법무부 차관 자리를 바라보는 전망은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판사 출신 이용구 변호사를 2020년 12월 새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하면서 60년 만에 비검사 출신 법무부 차관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직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판사 출신으로, 법무부는 장관과 차관이 모두 ‘판사 출신’이 맡고 있다. 검사 출신들이 60년 동안 내주지 않았던 법무부 차관 자리까지 비검사 출신에게 넘어간 것은 변화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가 검찰 수사의 보조적인 성격이 아니라, ‘인권 감독’ 등으로 행정부처적인 전문성이 중시되면서 탈검찰화와 맞물려 앞으로 차관 자리는 비검사 출신들이 더 임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