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현황 관계부처 보고에서 송영길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교롭게도 이틀 사이에 ‘지지도 최저치→비주류 당 대표’가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여권 한 관계자가 당내 역학구도를 언급하며 던진 말이다. 실제 그랬다. 문 대통령 지지도 30% 선이 무너진 지 이틀 만에 비주류 ‘송영길 체제’가 출범했다. 차기 대선을 치를 관리형 지도부 선출 직전 국정 지지도의 심리적 저항선이 뚫린 셈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4월 5주 차(4월 27∼29일 조사·30일 발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도는 29%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문 대통령 취임 후 조사한 결과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33%)을 밑돌자, 여권 내부 충격파는 컸다. 여의도 문법에선 당청의 ‘데드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를 본격적인 레임덕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문 대통령이 친정부 인사인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사실상 ‘방탄 라인’을 구축했지만, 정권 수사에 따라 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집권 5년 차를 맞은 문 대통령의 운명은 △당·청 원팀 기조 유지 △친문 적자 찾기 △검찰의 정권수사 등 3대 난제에 따라 희비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 중 단기간에 친문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딜레마는 여권 내부 권력구도의 핵심인 당청 균열이다. 당장 송영길호 출범 직후 여권 내부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취임 직후 신임 사무총장에 비주류로 분류되는 윤관석 의원을 선임했다. 대표 비서실장에는 김영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고용진 의원, 대변인에는 이용빈 의원을 각각 발탁했다. 친문 강경파와는 결이 다른 인사를 중용한 셈이다. 정책 기조 전환에도 시동을 걸었다. 연일 ‘당 주도’를 외친 송영길 대표는 부동산 원칙론을 고수하는 청와대·정부 기조와는 달리, 부동산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5월 4일엔 정부로부터 백신 현황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정부가 선을 그은 ‘플랜B(러시아 스푸트니크V)’를 또다시 검토했다.
당 일각에선 친문 최고위원이 대거 포진한 당 지도부에 비주류 당직자를 전진 배치, 균형을 꾀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향후 당청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앞서 5·2 전당대회에서 친문 강경파 의원들은 최고위원을 싹쓸이했다. ‘친조국’의 대명사인 김용민 의원은 17.73%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송 대표에게 0.59%포인트(p) 차로 석패한 친문 직계 홍영표 의원과 사실상 러닝메이트를 한 강병원 의원은 2위(17.28%)에 올랐다. 친문 김영배 의원(13.46%)과 검찰개혁을 강조한 백혜련 의원(17.21%), NY(이낙연)계인 전혜숙 의원(12.32%) 등도 최고위원에 합류했다. 친문 강경파와 친조국파, 범친문계가 최고위원직을 독식한 셈이다. 양측 간 노선투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측의 잠재적 갈등은 서서히 표면화되고 있다. 송영길 대표는 5월 3일 취임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송 대표가 “세월호는 챙기면서 제복 입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소홀했다”고 하자, 친문 성향 당원들은 발칵 뒤집혔다. “야당 대표냐” 등의 문자폭탄을 송 대표에게 날렸다. 이튿날(5월 4일)에는 민주당 새 지도부 필수 코스인 봉하마을 대신 국회에서 정부 부처로부터 부동산 정책 보고를 받았다.
당 산하의 부동산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진선미 의원도 교체했다. 5월 4일 김용민 최고위원은 홀로 봉하마을로 내려가 방명록에 “개혁을 저항하는 세력에 좌초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적었다. 송 대표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일정은 이로부터 이틀 뒤인 5월 6일 이뤄졌다. 부동산 정책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친문 강병원 최고위원은 송 대표의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내 파열음의 확전은 문 대통령에게 독이다.
관전 포인트는 송영길 대표의 향후 드라이브 강도다. 스스로 ‘원팀’이라고 강조하지만, 임기 말 당청 간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리스크다. 특히 여권 안팎에선 당청 균열 리스크의 핵심 변수로 정책 차별화를 넘어 강골 스타일인 송 대표의 ‘캐릭터’를 꼽는다.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송 대표가 야당의 ‘낙마 리스트 3인방’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당내 의견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고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당 한 보좌관은 “(송 대표는) 한번 꽂히면 목표 달성 때까지 뒤도 안 보고 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조직 장악력도 강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강경파 친문 지지층의 문자폭탄을 둘러싸고 당내 균열이 확산일로인 상황에서 송 대표가 비주류에 힘을 실을 경우 양측의 갈등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가 2020년 7월 30일 만난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당청 원팀 균열은 차기 대권잠룡의 역학관계와 맞물리는 중요 변수다. 당청 간 균열점이 커질 경우 당 대표와 대권잠룡 조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다. 송 대표와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인사로는 이낙연 전 대표가 꼽힌다. 송 대표는 지난해 8·29 전당대회 때 이 전 대표를 물밑에서 도왔다. 호남 고리로도 묶인다. 송 대표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이 전 대표는 전남 영광 출신이다. 정 전 총리와의 인연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린우리당 분당 직전인 2007년 정세균 의장 시절, 송 대표는 사무총장을 맡았다. 둘의 간극도 크지 않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관계 설정이다. 송 대표와 이 지사는 당내 비문계로 분류된다. 러시아 백신 구매와 실거주 목적 2주택자의 규제 완화 등에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법연수원 선후배(이재명 18기·송영길 26기)로도 묶인다. 5·2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이재명계인 임종성 의원 보좌진들이 송영길 캠프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이들이 향후 ‘전략적 공존’을 택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의 정서적 이질감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엘리트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송 대표와 검정고시 출신인 이 지사는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없는 ‘정서상 간극’이 있다는 얘기다.
송 대표가 누구와 손을 잡느냐는 특히 친문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선 경선 연기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친문계가 띄우는 특정 후보와 송 대표가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면 대선 경선 연기론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송 대표가 친문계의 제3후보론 대신 다른 후보를 물밑 지원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송영길 지도부는 늦어도 5월 말께 경선 일정을 포함한 ‘대선 경선 룰’ 논의에 나설 전망이다. 4·7 재보선 패배 이후 경선 연기론이 재점화하자,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등도 공식 출마 선언을 6월 이후로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두관·이광재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97(90년대 학번·70년 생)그룹 선두주자인 박용진 의원과 양승조 충남도지사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변수는 검찰 개혁 동력이다. 문 대통령은 5월 3일 믿을맨 ‘김오수 검찰총장 카드’를 꺼냈다. 특히 문 대통령의 ‘김오수 카드’는 검찰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전격 기소된 직후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문 대통령이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에 김 후보자를 발탁하면서 정권 수사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야권은 청와대의 “김오수 카드에 대해 검찰 장악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청와대가 ‘김오수-이성윤 라인’을 구축하면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사건과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등 정권 수뇌부를 겨냥한 수사의 방향도 정국 변수로 떠올랐다. 검찰은 김학의 사건에 연루된 차기 검찰총장 1순위였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소환 조사했다. 월성 원전 의혹에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이 엮여 있다. 야권 한 인사는 “임기 말 정권이 그나마 쓸 수 있는 카드는 인적 쇄신 정도”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택한 방탄 라인의 무리한 정권 보호가 되레 여권을 궁지로 내몰 수 있다는 의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