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정국의 막이 오르면서 친노 원로그룹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상왕’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권 차기 대선 주자들과 잇따라 회동하며 사실상 막후 조정자 역할에 나섰다. ‘친노 대모’로 불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인 5월 23일 전후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소회를 담은 자서전을 출간한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자서전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이해찬 움직임을 주목하라.” 최근 여권 내부에선 대권잠룡 3인방(이낙연 이재명 정세균, 가나다순)보다 핫한 인물로 단연 이해찬 전 대표를 꼽는다. 그는 여의도의 대표적인 책사로, 야권 대선판을 검증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킹메이커 대전’을 벌이고 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해찬 전 대표는 최근 여권 대선주자들과 연쇄 회동을 했다. 그는 4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배석자 없이 약 1시간 30분간 독대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해 8·29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전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고 지난 3월 9일 퇴임 전까지 당을 이끌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자신이 공천을 마무리한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당 안팎에선 “이낙연은 끝났다”는 섣부른 관측도 나왔다. ‘이낙연 필패론’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점에 이해찬 전 대표가 손을 먼저 내민 것이다.
특히 이들의 회동은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외곽 조직이 몸집을 불리는 시점과 맞물려 이뤄졌다. 이 지사는 조만간 가칭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약칭 성공포럼)’을 띄운다. 5월 10일에는 전국 네트워크 플랫폼인 ‘민주평화광장’도 5월 10일 발족한다. 명칭에 들어간 ‘광장’은 이해찬 전 대표가 2008년 구성한 연구단체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매달 이해찬 전 대표를 만나 정국 방향 등에 관한 조언을 듣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명숙 전 총리. 사진=최준필 기자
정 전 총리도 당내 현역 의원들의 지지 모임인 ‘광화문 포럼’을 비롯해 각 지역에 외곽 그룹을 만들고 있다. 이원욱·김영주 의원 등은 ‘정세균 대통령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섰다. 지지도가 한 자릿수로 떨어진 이낙연 전 대표도 상왕에게 SOS를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해찬 전 대표의 킹메이커 능력 때문이다.
이해찬 전 대표는 민주당 5·2 전당대회에도 깊숙이 개입, 자신의 영향력을 늘렸다. 당 내부에서조차 이해찬 전 대표가 두 명 후보(우원식·홍영표)의 후원회장을 맡자, “해찬대원군(이해찬+흥선대원군)이냐”라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노련한 처세로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왕은 아니었으나, 왕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 ‘국태공’이란 존호를 받았다.
한명숙 전 총리는 5월 말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를 출간한다. 자서전 추천사는 이해찬 전 대표가 썼다. 그는 “군부독재에 기생해 ‘그렇게 살아왔던’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탄압하고 누명을 씌웠는지 그 진실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 측은 “정치권과 거리를 둘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발간 이후 일부 후원자들은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친노 원로그룹에 대한 여권 대권잠룡 3인방의 구애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