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행보에 관심이 높다. 사진=연합뉴스
6일 G7 장관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부 주도의 정권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과 원조 중단 등 움직임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요청했다. 미얀마 군부에 직접적 지원뿐 아니라 자금이 될 수 있는 연결고리 자체를 끊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국내에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언급된다. 2000년부터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진행 중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최근 미얀마의 인권·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비정부기구(NGO) ‘버마 캠페인 UK’에서 작성한 ‘Dirty List‘(더티 리스트)에 올랐다.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즉각 “직접적 연관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2000년 미얀마 A-1, A-3 광권을 따낸 포스코인터내셔널(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의 가스전 사업 지분은 51%다. 이어 인도국영석유회사(ONGC) 17%, 미얀마국영석유사(MOGE) 15%, 인도국영가스회사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8.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수치상으로 미얀마 가스전 사업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지분이 높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가스전 사업을 통해 군부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해당 사업의 한 지분을 차지하는 MOGE의 존재 때문이다. 1963년 미얀마 내 1차 쿠데타를 일으킨 네 윈 군부가 ‘버마 석유 산업’(Bermese Petroleum Industry)을 국유화해 설립한 MOGE는 2015년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선 뒤 군부와 유착, 불투명한 회계로 수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3일 “(포스코는) 수익금의 15%를 MOGE에 배당하는데 2018년 지급한 배당금은 한화 200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렸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MOGE에 대한 가스전 사업 수익금을 싱가포르에 있는 OCBC은행에 보낸다. 계좌명은 미얀마국영외환은행인 MFTB(Myanmar foreign trade bank). MFTB로 전달된 가스전 수익은 이후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MOGE는 군부와 관련이 없다”며 “가스전 사업 수익금이 미얀마 군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MOGE 측으로부터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가스전 사업과 군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얀마 현지법에 따르면 MOGE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군부가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군부가 독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영기업에 투입되는 돈이 군부 운영에 쓰이지 않을 리 만무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얀마 시민단체인 저스티스 포 미얀마(Justice for Myanmar)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미얀마의 산업을 지배하는 군부는 국내외 150여 기업과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사업은 반인륜 범죄의 자금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얀마는 지난해 자금세탁 우려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Grey List’(회색명단, 강화된 점검 대상국)에 등재됐다. 실제로 미얀마 군부는 지난 2월 미얀마 중앙은행 명의로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예치된 약 10억 달러(약 1조 1260억 원) 규모의 미얀마 중앙은행 명의 자금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 바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초 미얀마 정부와 계약할 때 싱가포르 은행으로 지정돼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에서) 의심 없이 (계약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상황만 놓고 봤을 때 대금이 군부에 흘러갈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내부 검증이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얀마 가스전 사업구조는 위치별로 ‘Upstream→Offshore Midstream→Onshore Midstream→중국 육상파이프라인’으로 돼 있다. 진행 과정을 보면 미얀마 서해상 쉐 가스전에서 한국·미얀마·필리핀·호주 등 80여 명의 다국적 직원들이 해저 생산 설비를 이용해 가스를 생산한 뒤(Upstream)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얀마 짝퓨에 위치한 육상가스터미널(OGT)로(Offshore Midstream) 가스를 보낸다. 육상가스터미널을 거친 가스는 다시 육상파이프라인을 통해(Onshore Midstream) 미얀마와 중국으로 판매(중국 육상파이프라인)된다.
가스 생산량 중 20%는 미얀마 발전소로 공급돼 전기를 생산한다. 80%는 중국국영석유사(CNPC) 자회사 ‘CNUOC’에 판매되며 중국은 홍콩의 한 중국계 은행을 통해 포스코인터내셔널에 가스 판매 대금을 전한다. 이때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가스전 판매 대금에서 55%를 챙기고, 나머지 45%는 가스전 사업 지분 소유자들에게 나눠 보낸다. 여기서 MOGE로 보내는 수익금은 싱가포르의 OCBC은행 MFTB 계좌로 들어간다.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는 지난 5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가능한 빨리 MFTB와 MOGE를 제재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군부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까지 가스전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에는 막대한 이익도 있다. 자원개발 사업이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면서 기존 무역업의 낮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때문.
가스전 판매 이전 포스코인터내셔널(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의 가장 큰 과제는 ‘수익성 개선’이었다. 2012년 17조 5000억 원(연결기준)에 달하는 매출을 냈지만 영업이익은 매출의 1%도 안되는 1520억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스전 매출이 반영된 후인 2015년 영업이익은 3688억 원으로 2012년의 2배 넘게 뛰었다. 이후 2016년 3181억 원, 2017년 4013억 원, 2018년 4726억 원, 2019년 6053억 원으로 해마다 영업이익이 늘어났다.
가스전 사업 매출이 반영된 후 포스코인터내셔널 영업이익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디자인=백소연 디자이너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주요 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상품 수출 및 중개, 인프라 프로젝트 개발 등을 맡는 무역 부문이다. 하지만 미얀마 가스전을 통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자 시선은 가스전 사업으로 쏠렸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가스전 사업 투자 비용 회수를 하반기 진행해 사업 성과는 상반기에 비해 우세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미얀마 쿠데타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주가엔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5일 G7 장관들이 미얀마 군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미얀마 내 해외 기업의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특히 사태를 지켜보던 미국이 미얀마 경제제재에 나설 경우 포스코인터내셔널 측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당연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기업의 생존권이 중요하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직접적인 생존권을 두고 투쟁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미국의 제재를 기업 측에서 반대하는 논리는 성립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악화할수록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리더십 문제도 점점 더 도드라지고 있다. 최정우 회장은 미얀마 쿠데타 이후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가스전 사업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그는 미얀마 민주진영의 임시정부 격인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에서 지난 3월 “석유와 가스 사업자로부터 거둬들인 수익금이 현 군사정부의 폭정에 쓰일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민주정부가 기능을 재개할 때까지 모든 대금 지급을 중단하고 대신 해당 대금을 ‘보호 계좌’(protected account)에 넣어달라”는 공식 서한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최정우 회장은 2018년 취임 직후부터 ‘ESG경영’을 강조하며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실천하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행보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포스코는 지난 4월 소통창구를 정비한다는 명분으로 경영지원본부 산하에 있던 커뮤니케이션실과 정책지원실을 분리해 커뮤니케이션 본부를 새로 만들었다. 최정우 회장이 나서는 대신 사측을 대변할 자사 직원들을 정비한 것이다.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최정우 회장이 ESG경영을 보여줄 때”라며 “지배구조적인 부분에서도 이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