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던 배우 안성기(69)는 최근 건강을 회복해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공식 홍보활동에 나섰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5월 12일 개봉을 앞둔 안성기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극 중 그가 맡은 대리기사 오채근은 그날을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 살아가다가, 사태의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단죄하기 위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앞서 출연했던 ‘화려한 휴가’(2007)에 이어 또 다시 5‧18을 다루는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셈인데 ‘같은 주제’의 ‘다른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안성기는 “크게 고민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아주 탄탄했어요. 그러니 선택에도 짧은 시간이 걸렸죠. 물론 저예산 영화(‘아들의 이름으로’의 제작비는 10억 원 상당이다)다 보니 좀 더 보여줘야 할 때 제대로 보여준다거나 그런 것을 못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작품 자체에 매력이 있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을 두고 ‘결심’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결심한 건 아닙니다(웃음). 작품 자체만 좋다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죠. 어떤 개런티를 받는 것보다 작품 자체가 좋으면 그게 제게 곧 보상이 돼요.”
안성기가 맡은 배역 오채근은 전직 군인으로 겉보기에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어디에서나 볼 법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자신은 끊임없는 죄책감과 고통으로 고뇌하고 또 번민하는 인물이다. 베일에 싸여 있는 복잡한 그의 행적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이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궁금해 하게 된다. 안성기 역시 오채근에 대해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평하며, 그래서 더욱 이 작품에 끌렸다고 말했다.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안성기는 1980년 5월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 살아가는 전직 군인 오채근 역을 연기한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그런 삶을 산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없게 가다가 조금씩 허물이 벗겨지는 모습이 보이죠. 그러다 마지막에 복수를 하게 된다는 그 일련의 흐름이 저에게 참 좋게 다가왔어요. 또 마지막이 그렇게 그려지는 인물이기에 캐릭터 자체가 잘 구축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득력이 생겨야 하니까요. 그가 가지고 있는 분노나 고통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는데 그걸 조금은 자제하고 또 억제하면서 표현하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오채근을 연기하면서 ‘대역 없는’ 액션 신까지 안성기가 그대로 소화해냈다는 것이 영화 공개 후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더 이상 불의를 묵인하지 않는 오채근이 힘을 써야 할 때가 오면 안성기는 즉각적으로 날렵한 액션을 선보였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정정함을 과시한 그 신을 두고 안성기는 “그다지 어려운 점도 없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길지도 않은 액션인데 대역까지 넣으면 할 수가 없죠(웃음). 아주 임팩트 있게, 재미나게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허리띠 신은 이정국 감독이 알려줬어요. 탁! 하고 내려치면 손등에 (허리띠가) 감기는 시범을 보여주더라고요. 저도 나름대로 연습해서 자연스럽게 했습니다(웃음). 무등산을 오른 것도 큰 에피소드는 없었는데 오르고 보니 제가 좀 빨리 올라 다니는 편이더라고요. 다른 스태프들보다도 빨라서 체력을 좀 자랑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사진=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1957년 다섯 살의 나이에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올해로 배우 인생 64년을 맞았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에서 젊은 배우들을 제치고 늘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대중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그에게 ‘국민배우’는 결코 분에 넘치는 타이틀이 아닐 것이다. 안성기 역시 이제는 이 타이틀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는 상당히 부담이 됐었죠. 국민배우라는 그 타이틀이.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웃음). ‘국민’이라고 이것저것 붙인 게 많아서, 지금은 오히려 그냥 그 하나 안에 들어가 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영화가 그런 제게 배우로서 활동하게 하는 동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 거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스태프들, 새로운 장소 이런 것이 늘 저를 자극하고 또 그걸로 새롭게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젊은 후배들과 함께하는 것도 늘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고 안성기는 말했다. 한국 현대 영화사의 거목으로서 그는 후배들이 그저 우러러보거나 넘어야 할 하나의 벽이 아닌,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함께 달려가는 동료이길 더 바라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늘 고맙고 그들의 열정에 자신 역시 자극 받고 있다는 안성기는 딱 한마디, 그가 종종 하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요즘 후배들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저도 예전과 다르게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서 더 배울 게 많은 것 같다고 느껴요. 다만 제가 후배들에게 가끔 이야기해주는 게 있는데, 변하지 않고 쭉 가는 게 좋다는 겁니다. 주변 상황이, 환경이 변하면서 좋은 의미가 아니라 안 좋은 의미로 변하게 된다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실망을 많이 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죠. 대중들에게 한결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좋은 게 아닐까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