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로 상속세 논쟁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 전경. 사진=연합뉴스
#인하론 “유례없는 과세율 낮추고 납부 기간 확대해야”
재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과세율이 너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상속세제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지분 상속에는 최고 세율이 60%로 높아져 OECD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경총에 따르면 OECD 회원국 36개국 중 13개국에는 상속세가 없다. 이스라엘·호주·스웨덴·캐나다·뉴질랜드·노르웨이·오스트리아 등이 상속세가 없는 국가다. 상속세가 있는 OECD 23개국도 17개국의 경우 자녀에게 상속할 때 세율을 낮게 차등 적용해 부담을 줄여줘 원활한 기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의 영속성 확보와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인 25%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며 “일률적인 최대주주 주식 상속에 대한 세율 할증(최고 50→60%)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세 과세 방법은 크게 유산세와 유산취득세로 나뉘는데, 유산세는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를 하고 재산을 상속받는 유가족이 상속세에 대해서 연대납세 의무를 지는 방식이다. 이는 상속재산 규모로 세율이 결정돼 그중 실제로 자신이 얼마를 상속받는지와 무관하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별로 받은 재산만큼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상속재산 전체는 커도 자신이 받는 금액이 적으면 세율이 낮아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산세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형평성 있게 유산취득세로 바꾸자는 제안이 재계로부터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연)는 상속세에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가업 승계 시점에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지만,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 매각 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다. 상속된 재산을 받았을 때 상속 재산을 매각하지 않는 이상은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상속재산의 일부를 급하게 매각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매각 시 소득이 생기면 과세하자는 주장이다.
경총과 한경연 등 재계는 연부연납 분할납부 기간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거액의 상속재산을 물려받을 경우 상속세를 한꺼번에 내기 어렵기에 상속인들은 신고 시점에 전체 상속세의 6분의 1을 납부하고, 이후 5년간 세액을 분할해 납부하는 연부연납제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상속재산 중 유동화가 어려운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최장 20년간 분할납부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업상속을 제외한 일반 상속에 대한 분할납부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부담이 큰 만큼, 분할납부 기간을 확대하자는 제안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2019년 5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 참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이 무리한 편법증여 유혹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 교수는 “높은 세율 때문에 편법증여를 하거나 해외이전 및 음성화로 불법 반입하면서 실제 과세가 안 되는 문제가 생긴다”며 “과거와 달리 중산층들이 상속세 과세 대상에 들어오면서 편법증여에 대한 동기가 더 강할 수 있다. 세율을 낮추면 음성화를 방지해 세원을 더 걷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중과세 문제도 거론된다. 세무법인다솔WM센터 소속 최용준 세무사는 “자녀가 둘 있는 가정에서 아버지가 사망하면 상속인은 배우자와 자녀로, 일부분 공제되긴 하지만 일정부분 각자 세금을 내야 한다”며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자녀들 입장에서는 세금을 또 내야 한다. 이중과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외국은 소득세를 많이 물리고 상속세는 아주 자산이 많은 경우에만 내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산가의 경우 소득세도 상속세도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 앞에서 경제개혁연대 및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에 대한 이사회의 명확한 입장 및 대응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속세 내는 사람 극히 일부…양극화 해소에 필요”
현행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억제해 부와 권력이 소수의 가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을 최대 목적으로 한다. 상속세율 인하로 가업 상속이 용이해질 수는 있겠지만 계층 간 이동을 어렵게 해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속세가 높다는 주장은 재벌 등 극히 일부에 해당할 뿐, 상속세를 내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서의 2020년 조세보고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상속세의 과세자 비율 평균은 2.51%였다. 2018년 기준 피상속인(재산 물려주는 사람)의 수는 35만 6109명, 상속세 과세자 수는 8002명으로 그 비율은 2.25%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총수 사망 후 자녀가 상속세를 낼 때마다 인하 목소리가 나오는데, 일반 국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양극화가 문제라고 너도나도 말하면서 왜 상속세가 문제라는지 의문”이라며 “상속세 때문에 경영을 못 한다는 주장은 스스로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상속세 분할납부 기한이 5년인 것도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5년간 연부연납 하는데 금리가 1.5%로 낮고, 5년간 받을 수 있는 배당도 엄청나다는 것.
세율 자체가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상속세 명목상세율이 있고 실효세율이 있는데, 우리나라 실효세율은 높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상속세에서 공제하는 것이 많아 실효세율이 굉장히 낮다. 또 일반 중산층 기준 부동산 상속이 대부분인데, 부동산은 시가가 아니고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기에 실제로 적용하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등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이 방식은 불가능하더라도 공익재단에 지분을 맡겨놓고 의결권행사를 하는 방식으로 피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상가 등 꼬마빌딩 소유자나 토지, 건물, 상가 등 아파트처럼 주변 시세가 명확하지 않고 제각기 형태가 다른 건축물의 경우 공시가격이나 국세청 기준시가 등 보충적 방법으로 평가해 신고하기에 시가로 산정한 것보다 금액이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중소기업체에서 상속세율이 높아 가업승계를 못한다는 주장의 경우, 중소기업 가업승계가 제일 활발한 국가인 일본이 한국보다 명목 상속세율이 더 높다는 점에서 힘을 잃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상속제 인하에 반대하는 학자들 가운데 상속세 과세방식을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식은 고려해볼 지점으로 꼽는다. 익명을 요구한 조세 전문가는 “상속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몫이 작은데 전체 자산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 유산취득세 개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