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최준필 기자
#급부상하는 윤석열 검증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검증 필요성과, 불펜투수 ‘준비론’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높아지고 있다. 대선을 10개월여 앞둔 지금 철저히 검증해 정리하지 않으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검증론의 방아쇠는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의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당겼다. 그는 4월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위 적폐수사를 현장 지휘할 때 ‘친검무죄, 반검유죄’ 측면이 전혀 없었는가”라며 윤 전 총장에게 고해성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용판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지휘한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돼 기소됐다가, 1심부터 대법원 최종심까지 내리 3심 연속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라를 망친 ‘국기문란범’으로 몰렸던 김 의원의 화풀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의 얽히고설킨 ‘과거사’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는 게 당 내부의 시각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특수통 검사로서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건뿐 아니라 권력형 비리사건을 자주 맡아 왔다. 이러한 수사경력과 보수진영과의 악연은 어떤 형태로든 윤 전 총장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으로서 과거사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는 보수 야권 후보로 등판하기 어렵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 내부 법조인 출신 의원들 중에서는 “윤 전 총장이 기소한 사건의 무죄판결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다. 논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 편이 맞느냐”는 정체성 논란에 과거사 논란까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윤석열 카드에 대한 기대심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과도 연결된다. 특히 윤 전 총장이 대세론에 지나치게 기대면서 대선 마운드 등판을 늦추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어차피 보수 야권의 단독 후보 추대는 불가능한 만큼 경선이라는 예비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윤 전 총장이 이 부분에 준비가 전혀 안 돼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세론, 특히 당 내부경쟁에서의 우위는 하루아침에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례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내놓는다. 2002년 2월 시작된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당시 후보는 대세론을 펴며 경선 승리를 확신했다. 실제 차기 대통령으로 각인된 이인제 후보 선거캠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런데 막상 경선에 돌입하자 당 안팎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레이스 초반만 해도 지지율이 형편없었던 노무현 후보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고, 노무현 바람은 태풍으로 바뀌면서 승승장구했다. 결국 이인제 후보는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당내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쥐었고, 정몽준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까지 꺾어버리면서 청와대로 직행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충고다.
“정치는 한순간 바람으로 판도가 확 뒤집어진다. 윤 전 총장이 대세에 기대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욱이 윤 전 총장은 2002년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처럼 밖에서 굴러온 돌이다. 정당이라면 문지기로서 밖에서 들어오는 윤 전 총장의 모든 것을 검증해야 한다. 손님이 시원찮으면 문지기는 입장을 막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불펜 ‘홍승룡’이 몸을 풀고 있어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에이스 윤석열이 무너져도 불펜투수 3인방 홍승룡(홍준표·유승민·원희룡)을 가동해 준비한다면 크게 밀릴 것이 없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총대를 멨다. 당대표 경선에 출마, 대선주자 관리 역할을 희망하는 권영세 의원은 4월 29일 보수진영 전·현직 의원 모임인 ‘마포포럼’ 강연에서 당내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을 언급하며 “윤석열 전 총장만 믿고 당내의 다른 (대권) 후보를 놓쳐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에이스 투수 1명에 기대는 팀보다는 두터운 불펜 투수층을 갖춘 팀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당내 잠룡들의 지지율 부진에 대해서는 내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권 의원은 “후보 본인들이 노력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난 지도부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했다. 권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우리 당 주자에 대해서 전망이 없는 선수, 이미 평가를 받은 선수로 취급해 언론에 보여질 기회조차 없애버렸다”며 “당에서도 인정 못 받는데 국민에 인정받겠나. 이분들이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최근 ‘홍승룡이 도대체 어때서’라는 자강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홍승룡’ 3인방도 이런 기류에 적극적으로 몸을 싣고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국민의힘 복당을 재차 촉구하는 차원에서 지난 5월 3일 자신의 SNS에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노마지지(늙은 말의 지혜)의 역량이 필요한 때”라고 적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연일 때리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4월 30일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를 찾아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끝까지 당당하게 경쟁해서 중도 플러스 보수 야권 전체의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전 의원은 “대선까지 10개월 정도 남았고, 각 당 경선까지 4∼6개월 정도가 남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지도가 출렁거릴 계기가 있을 것 같다”고 언급, 지금의 지지율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윤석열 검증론’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5월 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되고, 지금 대통령에 발탁됐다가 갈라선 입장에 대해 명백히 대답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왼쪽부터).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최동연 영입 카드
초특급 투수를 외부에서 영입해오자는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선 최재형 감사원장이 거론된다. 최 원장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는 윤 전 총장과 ‘공정’이라는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이 강판당할 경우 대체제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또한 판사와 감사원장을 거쳐 보수정당의 특성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재형 원장은 탈원전 정책 감사로 불리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적절성에 관한 감사 과정에서 거대 여당이 엄청난 압박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감사위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최 원장은 네 명의 자녀 중 두 명을 입양, 보수의 품격을 보여준 최적의 인사로 꼽힌다. 또한 최 원장 부친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예비역 해군 대령이고, 최 원장도 법무관으로 복무해 보수의 간판인 안보 측면에서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권력 의지’다. 이를 두고 “있다” “없다”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을 지냈지만 정부 정책과 결이 다른 것으로 평가받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국민의힘 영입 대상으로 분류된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유년시절 가난 탓에 상업고교를 거쳐 야간 대학을 다녔지만,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해 이후 성공적인 공직생활을 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를 쓴 그는 여권의 유력 주자로 역시 ‘흙수저 성공’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인생 스토리보다 오히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김 전 부총리는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 5월 4일에는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아 ‘환경, 자신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세 가지 반란-유쾌한 반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특강 직후 정치 참여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며 “정치 안한다”는 부인 의사는 내놓지 않았다.
1970년대생인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내 대표적 소장파로 꼽히는 김 전 의원 역시 개혁적 목소리를 발산하면서 주목을 끈 바 있다. 김세연 전 의원은 앞서 서울과 부산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된 바 있지만,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