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전부터 ‘완성형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김진욱이 정규시즌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처음에는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와 강백호(KT 위즈) 같은 신인 야수들이 더 두각을 나타냈다. 이정후는 2017년 역대 고졸 신인 최다 안타(179개)와 최다 득점(111점)을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강백호는 이듬해 프로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역대 고졸 신인 최다 홈런(29개)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신인왕 소형준(KT)을 기점으로 무게추가 투수 쪽으로 기울었다. 프로 첫 등판에서 선발승을 신고하면서 강렬하게 데뷔한 소형준은 2006년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14년 만에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고졸 신인으로 기록됐다. 또 KT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경기였던 지난해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섰고, 2년차인 올해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로 출격해 팀 내 위상을 보여줬다.
올해는 장재영(19·키움), 김진욱(19·롯데 자이언츠), 이의리(19·KIA 타이거즈)가 소형준의 뒤를 이어 신인왕을 다툴 ‘괴물 투수 삼총사’로 기대를 모았다. 야구 관계자들은 “세 투수가 신인왕 한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 시너지 효과로 서로 발전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셋 중 1군에서 제 몫을 한 투수는 아직 이의리밖에 없다. 계약금 9억 원을 받은 키움 1차지명 신인 장재영과 신인 2차지명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김진욱은 나란히 제구 문제로 난항을 겪다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의리는 두 동기생 투수가 부진한 사이 신인왕 레이스에서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갔다.
#13⅔이닝 동안 볼넷 13개를 내준 김진욱
강릉고 출신 김진욱은 지난해 고교 무대 10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은 1.70을 기록했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김진욱에 대해 “이미 고교 선수로는 완성형에 가까웠다.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은 웬만한 프로 선수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출발도 나쁘지 않았다. 2군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탄탄한 실력을 보여줬다. 이름값 높은 프로 베테랑 타자들과 대결하면서도 배짱 좋게 자신의 공을 던졌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마인드가 남다른 선수인 것 같다”고 흡족해하면서 김진욱을 5선발로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시켰다.
김진욱은 정작 정규시즌 막이 열리자 혼란을 겪었다. 프로 데뷔전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4월 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키움과 홈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다. 최고 시속 147km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는 여전히 감탄을 자아냈다. 문제는 한 번 제구가 흔들리자 평정을 찾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진 거다.
출발은 무척 좋았다. 김진욱은 1회 첫 타자 박준태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강렬한 스타트를 끊었다. 1회는 공 10개로 삼자범퇴. 2회 역시 키움 간판타자 박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공 9개만 던지고 세 타자로 막아냈다. 그러나 3회 갑자기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선두 타자 박동원에게 데뷔 첫 볼넷을 허용한 뒤 2사 후 박준태와 김혜성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김진욱은 결국 이정후에게 우중간을 가르는 주자 싹쓸이 적시 2루타를 얻어맞았다. 다음 타자 박병호에게도 우전 적시타를 맞아 순식간에 4실점. 김웅빈을 삼진으로 잡아낸 뒤에야 간신히 이닝을 마무리했다.
김진욱은 4회를 다시 삼자범퇴로 끝내면서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5회 1사 후 박준태에게 우월 2루타, 김혜성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연속으로 내줘 1점을 더 잃었다. 이어 다시 만난 이정후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박병호에게 또 좌전 적시타를 맞아 실점을 ‘6’으로 늘렸다. 최종 성적은 5이닝 5피안타 4볼넷 6탈삼진 6실점. 롯데가 2-7로 패해 김진욱은 데뷔전에서 첫 패전을 안았다.
다음 등판 결과도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프로 두 번째 등판에서 이의리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야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진욱은 첫 번째 등판보다 더 흔들렸다. 3⅔이닝 동안 볼넷을 무려 6개나 허용하면서 5실점 했다. 21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볼넷이 3개로 줄었지만, 5이닝 동안 홈런 두 방을 포함해 안타 6개를 맞고 5점을 줬다. 첫 3경기 성적이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10.54다. 13⅔이닝 동안 볼넷 13개를 준 게 대량 실점의 원인이었다.
허 감독은 결국 세 번째 등판을 마친 김진욱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다만 ‘문책성’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진욱은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1군과 동행하면서 1군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았다.
허 감독은 “세 번 던졌기 때문에 쉬게 해주는 것뿐이다. 어린 나이에 프로에서 던지는 게 쉽지 않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스트라이크 존은 다르다”라고 강조하면서 “적응하는 단계라 생각하고 있다. 첫 경기보다 세 번째 경기에서 괜찮았다. 미래를 생각하면 긍정적”이라고 감쌌다.
장재영은 제구 문제에 발목이 잡혀 2군으로 갔다. 사진=연합뉴스
장재영은 ‘강속구’라는 확실한 무기로 유명세를 탔다.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비공식 최고 구속이 시속 157km까지 나왔다. 시속 150km를 넘는 구속은 훈련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여겨진다. 장재영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투수인 셈이다. 실제로 야구 관계자들은 “프로에서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시속 160km 도전도 문제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장재영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두 차례 최고 시속 155km를 찍어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강속구는 위력을 잃기 마련이다. 장재영은 시범경기부터 제구 불안의 조짐을 보였다. 롯데와 시범경기에 키움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2피안타 3볼넷 2탈삼진 3실점(1자책)으로 부진했다. 폭투와 악송구 실책, 밀어내기 볼넷이 이어지면서 진땀을 흘렸다. 최고 시속 153km의 직구도 힘을 잃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당시 “빠른 공만으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선수 자신도 느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마운드를 운영해 나갈지 깨닫는 게 본인의 몫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고 성장해 가는지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재영은 1군에서 시즌을 출발했지만 다른 두 동기생과 달리 불펜 승리조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개막 후에도 계속 혹독한 적응기를 거쳤다. 불펜 투수로 나선 첫 6경기에서 5⅔이닝을 던지면서 6실점 했다. 평균자책점은 9.53. 4월 17일 KT전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사사구 4개와 안타 하나로 4실점한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KT 장성우에게 헤드샷을 던져 퇴장당했다.
키움은 고심 끝에 장재영의 기용 방식에 변화를 줬다. 4월 29일 두산전 선발 투수로 장재영을 내보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수차례 “아직 장재영을 선발 투수로 쓸 생각은 없다”고 말한 홍 감독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바꾼 이유가 있었다. 홍 감독은 “정확히 말하면 장재영은 ‘선발 투수’가 아니라 ‘불펜 데이’에 가장 먼저 나가는 투수다. 투구 수도 50개 안팎으로 제한한다”고 강조하면서 “장재영의 등판 간격이 불규칙했다. 투수코치와 미팅한 결과 정해진 투구 수를 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먼저 나가는 게 선수에게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등판 날짜를 미리 못 박아 준비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선발 투수로 나선 장재영은 또 다시 제구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볼넷 5개를 내주고 강판됐다. 장재영이 볼넷으로 내보낸 주자 5명이 모두 홈을 밟아 ⅓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결국 장재영은 2군으로 갔다. 홍 감독은 “장기적으로 2군에서 선발감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2군에서 수업을 더 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진욱·장재영 등이 어려움을 겪는 반면 KIA 이의리는 양현종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양현종’ 조짐 보인 이의리
KIA가 1차지명한 이의리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장재영 김진욱에 비해 덜 주목받았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연습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실전용 투수’로 이름값을 높였다. 이의리가 팀 청백전에서 호투하는 모습을 미국에서 영상으로 본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무시무시한 공을 던진다.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관심이 쏠린 첫 시범경기 등판도 완벽에 가까웠다. 이의리는 롯데 타선을 5이닝 2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비시즌 동안 몸무게를 90kg까지 늘린 덕에 최고 구속도 시속 148km까지 올라왔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스피드건으로 측정한 수치도 높지만, (타석에서 보는) 체감 구속은 더 빠를 것 같은 투수”라고 칭찬했다. 지난해까지 부동의 에이스였던 양현종을 미국으로 보낸 뒤 고민이 깊었던 KIA 입장에선 이의리의 등장이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정규시즌이 개막한 뒤 더 강해진 것도 인상적이다. 데뷔전인 4월 8일 키움전에서 5⅔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다. 이의리 역시 김진욱과 선발 맞대결한 15일 롯데전이 고비였다. 김진욱과 승부에선 판정승을 거뒀지만, 4이닝 3피안타 4볼넷 7탈삼진 3실점으로 5회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이의리는 “말로는 서로를 의식 안 한다고는 했지만, 의식을 하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의 부담을 없앤 4월 22일 LG 트윈스전에선 6⅔이닝 1실점으로 첫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했다. 이어 28일 한화 이글스전에선 6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면서 2피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해 신인 셋 중 가장 먼저 프로 첫 승을 신고했다. 최고 시속 149km의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 신인답지 않게 여유 있는 경기 운영으로 프로 타자들을 꽁꽁 묶었다.
이의리의 당찬 피칭은 다른 팀 감독마저 사로잡았다. 타이거즈 레전드 출신인 이강철 KT 감독은 “올 시즌 신인 중 확실히 이의리가 가장 낫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감독은 특히 2007년 KIA 투수코치 시절 ‘신인’으로 만났던 양현종을 떠올리면서 “현종이는 그때도 제구가 좋았는데, 당시에는 직구로만 대결하는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의리는 변화구까지 전반적으로 완성돼 있다. 구속이나 구위만 놓고 보면 (신인 시절의 양현종보다) 이의리가 조금 더 나아 보인다”고 극찬했다.
다만 이의리도 한 차례 혹독한 통과의례를 겪었다. 지난 6일 사직 롯데전에서 3이닝 동안 안타 4개와 볼넷 3개를 내주고 6실점(3자책점)으로 부진했다. 1회 손아섭과 전준우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기운차게 출발했지만, 2회 이대호에게 좌전 안타를 맞고 연속 볼넷까지 내줘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설상가상으로 후속 타자 장두성의 땅볼 타구를 잡은 KIA 유격수 박찬호가 홈 송구 실책으로 주자 2명의 득점을 허용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이의리는 이어진 1사 2·3루에서 적시타, 볼넷, 적시타를 연달아 허용하고 무너졌다. 3회 1사 후에는 안치홍에게 좌월 솔로포도 얻어맞았다. 첫 4경기에서 2.42였던 평균자책점은 3.20으로 치솟았다.
배동현은 ‘대졸 신인’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사진=한화 이글스 페이스북
#‘대졸 신인’ 자존심 세우는 다크호스 배동현
한화 투수 배동현(23)은 고졸 신인들의 기세에 도전장을 던진 ‘대졸 다크호스’다. 올해 신인 2차드래프트 5라운드(전체 52순위)에 한화의 지명을 받은 그는 고교 시절까지 내야수로 뛰었고, 대학교 2학년 때까지 투타를 겸업했다. 본격적으로 투수를 시작한 지 3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른 신인들을 제치고 1군 무대에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배동현은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전 한화 투수 김성훈과 경기고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한화에 입단하면서 친구의 등번호(61번)를 달고 “성훈이 몫까지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그 다짐대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최원호 2군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시즌을 2군에서 출발한 배동현은 최 감독의 강력한 추천 덕에 개막 3주 만에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이어 4월 22일 키움전에서 팀이 1-4로 뒤진 5회 한화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다른 투수들과 달리 챙이 평평한 스냅백을 쓰고 등장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한화 레전드 출신인 김태균 KBSN 해설위원은 “신인이 저런 모자를 쓴다는 건 자신감이 있고 남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다. 무척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패기는 모자뿐 아니라 투구 내용에서도 묻어나왔다. 프로 첫 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6회 안타 1개와 볼넷 3개로 1실점 했지만, 2사 만루에서 김웅빈을 1루수 땅볼로 잡아 대량 실점을 막았다. 수베로 감독은 2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배동현의 첫 삼진 공을 직접 챙겨주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배동현은 4월 24일 LG전에서 2이닝 무실점, 28일 KIA전에서 4⅔이닝 3피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각각 역투했다. 수베로 감독은 KIA전 다음날 취재진과 인터뷰 자리에서 “왜 배동현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느냐”고 먼저 되물은 뒤 “KIA의 강력한 좌타자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배동현의 호투가 확실한 수확”이라고 칭찬했다.
결국 배동현은 선발 등판 기회도 얻었다. 5선발 김이환이 발목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지난 6일 삼성 라이온즈전 선발 투수로 나섰다. 결과는 3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3실점. 한화가 3-2로 앞선 4회 무사 1·2루에서 교체됐고, 불펜이 주자 1명을 더 들여보내 3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래도 수베로 감독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당장 한 경기 성적만으로 로테이션에서 제외하는 일은 없다. 선수의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 한 꾸준히 기용할 것”이라고 했다. 배동현이 ‘대졸 신인’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