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4월 28일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이 555억 원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제21대 현역 의원이 구속된 것은 정정순 의원에 이어 이상직 의원이 두 번째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선된 이상직 의원은 2020년 9월 이스타항공 대량 정리해고 사태, 임금 미지급 등 논란으로 당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탈당했다.
4월 28일 전주지법 김승곤 영장전담판사는 이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피의자의 행태를 참작할 때 증거 변조나 진술 회유의 가능성이 있다”며 “피의자는 관련자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5월 10일쯤 이상직 의원을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하기로 했다. 이 의원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 등을 받은 이스타항공 관계자 사이에서는 ‘검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어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이유가 앞서 언급한 노트북이다.
이 의원이 구속되기 전인 지난 3월 이스타항공 관련, 중요한 재판이 있었다. 이스타항공 횡령, 배임 등의 핵심 키를 쥔 A 씨 재판이다. 2015년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 주식을 당시 10대, 20대였던 두 자녀에게 편법 증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 의원 조카이자 이스타항공 재무팀장인 A 씨가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이스타항공 계열사들이 보유한 약 540억 원 가치의 이스타항공 주식을 증여와 관련된 특정 계열사로 저가 매도하면서 일을 진행했다고 알려졌다. 540억 원 가치 주식을 약 100억 원에 매도하면서 차액인 약 400억 원의 손해를 이스타항공에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그룹 계열사 채권 가치를 임의로 평가해 60억 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다.
지난 3월 재판에서 이 의원 조카인 A 씨의 변호인은 “A 씨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직원일 뿐”이라며 “최정점에 이 의원이 있는 것이고 A 씨는 실무자 중 실무자”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또 다른 관계자는 “A 씨가 ‘나는 실무자인데 구속돼 있고 지시한 이 의원은 구속이 안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보석신청을 했다고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이스타항공 안팎에 따르면 A 씨가 이 의원과 처음부터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 B 씨는 “A 씨는 사건 초기 이 의원에 유리한 진술을 했다고 알고 있다”며 “검찰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사이 이스타항공 핵심 경영진을 조사하다 A 씨가 갖고 있는 노트북에 결정적인 증거가 있음을 포착했고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이를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A 씨가 그동안 이스타항공 재무팀장으로서 일했던 모든 증거들이 노트북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A 씨가 더 이상 혐의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25일 A 씨가 구속되면서 이 의원 관련 사건 전반이 일사천리로 풀렸다고 이스타항공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기소된 혐의 외에 현재 이상직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사건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시절인 2019년 3차례에 걸쳐 전통술과 책자 2646만 원 상당을 선거구민 377명에게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상직 의원 재판에 이 의원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최종구 전 이스타항공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상직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4월 28일 구속 수감됐다. 사진=박은숙 기자
최 전 대표는 이 의원이 중기공 이사장 시절 선거구민 등에게 제공한 전통주가 이스타항공 법인카드로 구매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증인으로 채택됐다. 재판부는 이날 “A 씨가 전통주 구매에 이스타항공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이 쟁점”이라며 “앞서 검찰이 요청한 최종구 전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변호인들의 우려가 있는 만큼, 증인신문 사항은 기부행위에 대해서만 최대한 예상하는 범위 내에서 그때그때 변호인 의견 받아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증인으로 최 전 대표를 신청한 것을 두고 그가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강용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자의 진술조서에 대하여 피고인이 증거로 사용함에 부동의하는 경우 검사는 증거의 효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진술자를 증인으로 신청한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진술하지도 않은 자를 검사가 추가 증인으로 부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확보한 노트북을 통해 최 전 대표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최 전 대표는 과거 이 의원이 회장으로 있던 KIC그룹에 경영기획 전무로 재임한 바 있고 오랫동안 이 의원과 연을 맺어 핵심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만약 최 전 대표마저 돌아선 것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스타항공 안팎 얘기처럼 노트북과 A 씨, 최 전 대표 진술까지 확보했다면 혐의 입증이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상직 의원을 둘러싼 재판 중 가장 큰 변수는 횡령, 배임 사건의 키를 쥔 A 씨의 보석 여부다. A 씨는 최근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했고 검찰은 이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전주지검은 “사건 당사자들 진술이 핵심 증거인데 A 씨가 풀려나면 진술이 뒤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석신청 기각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을 둘러싼 혐의는 많고 복잡하다. 이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탈락을 염려해 권리당원 등에게 거짓응답을 권유하는 메시지를 보내 공직선거법 혐의로 재판 중이다. 이 의원을 둘러싼 횡령·배임 혐의, 국회의원 신분이 아님에도 지역 사무실을 운영한 정당법 위반 혐의는 5월 10일쯤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20년 7월 이스타항공 노동조합은 불법 증여,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이 의원을 고발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4일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 조종사 지부는 이 의원과 이 의원의 딸, 최 전 대표, 김유상 이스타항공 대표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업무상 배임·횡령)로 전주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이 의원 관련 수사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셈이다. 앞서 이스타항공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또 다른 재판에서도 노트북에서 나온 자료가 계속 활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