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을 활용해 빌딩 옥상에서도 작물을 쉽게 재배할 수 있다. 사진=플란티오 홈페이지
오피스가 밀집돼 있는 도쿄 시부야구. 빌딩 옥상에는 시금치와 무, 완두콩 등 약 20종류의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운영하는 곳은 일본의 스타트업인 ‘플란티오’. 사람이 상주하는 대신,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인공지능(AI)을 통해 작물을 관리한다.
가령, 땅 속 수분량이 20% 이하가 되면 스마트폰에 ‘물주기를 해주세요’라는 문자가 도착한다. 알림을 받는 이는 ‘농사체험’을 위해 회원 등록한 사용자로, 퇴근길이나 휴일에 들러 작업을 하는 식이다.
근처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나카토 도시후미 셰프는 옥상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들로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재료의 싱싱함과 향은 요리사가 만들어낼 수 없다”며 “밭에서 갓 따온 신선함을 고객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옥상 농장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땅 속 수분량이 20% 이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온다. 사진=NHK 오하비즈 캡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소 재배에 도전한 초보자 중 60%는 좌절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물주기, 솎아내기를 언제 해야 할지 몰라 작물이 말라죽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플란티오는 여기에 착안해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의 임대 텃밭과 달리, 사무실이나 아파트, 상업시설의 빌딩 옥상에서 채소를 기른다는 점이 색다르다.
예를 들어 씨를 뿌린 날과 재배 지역의 위치정보를 통해 수확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 재배단계에 맞춰 손질방법을 스마트폰 앱으로 알려준다. 작물 관리는 알림 지시에 따라 그대로 실행만 하면 된다. 세리자와 노리요시 CEO(최고경영자)는 “채소 재배를 데이터화해 누구든 효율적인 재배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농사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갓 수확한 작물을 맛있게 먹는 일이다. 플란티오는 ‘즐겁게 기르고, 즐겁게 먹는다’를 콘셉트로 도시농업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채소 재배의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AI가 예측한 수확일에 맞춰 직접 딴 채소를 나눠 먹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올 1월에는 슈퍼마켓 안에 ‘농장’을 만드는 곳이 생겨났다. 독일 스타트업 인팜의 일본법인 ‘인팜재팬’이다. 이 기업은 슈퍼의 한쪽을 빌려, 고수와 바질 등을 재배하고 있다. 햇볕 대신 LED라이트를 사용하고, 공간을 세로로 이용한 ‘실내 수직농법’이 특징이다. 전문 스태프가 씨를 뿌리고 수확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이렇게 재배한 채소는 슈퍼에서 직접 판매하는데, 매상의 일부가 기업의 수익이 된다.
한 여성 고객은 “‘슈퍼 안에 밭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고객은 재배된 채소를 손에 들고 “유난히 향긋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슈퍼에 등장한 수직농법. 사진=NHK 오하비즈 캡처
통계에 의하면, “농작물이 농장에서 슈퍼마켓까지 이동하는 동안 40%에 가까운 영양소들이 파괴된다”고 한다. 독일의 인팜은 ‘맛있고 영양가 많은 친환경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탄생하게 됐다. 농산물을 수송하는데 걸리는 에너지가 필요 없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막스앤스펜서를 필두로 한 대형마트, 아마존의 식선식품 서비스와도 제휴 중이다. 세계 10개국 30개 도시에서 관련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 일본은 인팜의 아시아 첫 거점이다. 일본 법인의 하라이시 이쿠오 대표는 “슈퍼에서 채소를 키우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향후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 등 다른 도시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일본철도회사 JR동일본 측도 “인팜의 장비를 기차역 실내로 도입해 역사를 식물공장으로 꾸미고 현장에서 승객들에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