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터/뉴시스 |
무려 25년 동안 LA를 비롯해 미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 살인범의 기막힌 범행이 추가로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월 10명을 살해하고 1명을 살인 기도한 혐의로 체포됐던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5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얼마 전 LA 경찰이 프랭클린의 집에서 압수한 1000여 장의 여성들 사진 가운데 180장을 추가로 공개하면서 그가 10명이 아닌 100명이 넘는 여성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속의 여성들은 대부분 흑인이며, 대다수가 잠이 들었거나 혹은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어서 더욱 소름이 돋는다. LA 경찰은 사진 속의 여성을 알거나 혹은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리면서 프랭클린의 숨겨진 범행이 더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연 그는 정말 100명이 넘는 여성을 살해한 걸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가 탄생할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그림 슬리퍼(Grim Sleeper).’ 미국인들이 프랭클린을 가리켜 부르는 별명이다. ‘그림 슬리퍼’는 ‘그림 리퍼(Grim Reaper)’, 즉 한 손에는 낫을 들고 긴 망토를 걸치고 있는 죽음을 상징하는 ‘사신’에서 따온 이름이다.
프랭클린에게 ‘그림 슬리퍼’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의 범죄 행각이 마치 잠이라도 든 듯 14년 동안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재개된 데 따른 것이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4년간 8건의 범행을 저지르다가 갑자기 살인을 멈추었던 그는 2002년부터 다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따라서 이번에 추가로 공개된 180장의 사진이 혹시 이 14년의 공백 기간에 그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또 다른 범행들을 밝혀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1985년부터 2007년까지 22년 동안 ‘은둔의 살인마’ 프랭클린의 손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10명의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흑인 여성이었으며, 흑인 남성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여성들은 대다수가 매춘여성이거나 혹은 마약중독자였으며 나이는 15~36세였다. 모두 성폭행 당한 후 목이 졸리거나 혹은 총에 맞아 숨졌고, 시체는 길거리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 LA 경찰이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의 집에서 발견한 여성들의 사진. 프랭클린은 알려진 10명보다 더 많은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가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었다. 1988년 11월 술집 앞에서 프랭클린을 만났던 에니트라 워싱턴은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날 밤 오렌지색 핀토를 탄 그가 다가와서는 나를 태우고 갔다. 얼마간을 달리다가 갑자기 그가 권총을 꺼내더니 내 가슴에 한 방을 쐈다. 그리고는 곧 나를 성폭행하고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나를 자동차 밖으로 밀쳐 냈다.”
그녀의 결정적인 증언을 토대로 경찰은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다. ‘흑인 남성’ ‘신장 172~177㎝’ ‘몸무게 약 72㎏’ ‘상냥하고 또박또박한 말투’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 ‘곰보 얼굴’ 등이 그녀가 기억하는 용의자의 신상이었다.
당시 프랭클린도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문제는 이렇다 할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프랭클린은 이미 자동차 절도죄 등으로 1993년과 2003년 두 차례 징역을 살았지만 이웃들에게는 평판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쓰레기수거 환경미화원이었던 그는 한때 LA 경찰 주차장에서 일하다가 자동차 정비공으로 고용된 적이 있었다.
특히 자동차 정비와 수리에 재주가 많았던 그는 동네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이웃집 남자였다. 자동차 정비를 도맡아 해주는 것은 물론, 잔디를 깎아주거나 전구를 갈아주는 등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친절한 이웃이었지만 밤에는 무서운 살인마로 변하는 이중생활을 해왔던 그는 밤마다 고물차를 몰고 거리로 나가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25년 동안 꼬리가 잡히지 않았던 그가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된 데에는 첨단수사기법인 ‘가족유전자수사기법’이 큰 몫을 했다. 이 수사기법은 중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DNA와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DNA를 대조해서 일치하는 DNA를 가진 용의자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2009년 총기 및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한 남성(28)의 유전자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이 남성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 샘플과 상당 부분 일치했던 것. 처음에는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했지만 무엇보다도 80년대에 범행을 저질렀다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그 다음으로 그의 가족이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과학수사대의 유전자 분석 결과 이 남성의 친아버지, 즉 프랭클린이 범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찰은 곧 프랭클린의 유전자 표본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몇날 며칠을 미행한 끝에 마침내 기회가 왔다. 프랭클린이 공원에서 먹다가 버린 피자 조각과 커피 잔에 묻은 타액의 유전자 표본을 얻는 데 성공한 경찰은 그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 7월 프랭클린의 집을 급습한 경찰은 현장에서 그를 체포했고, 3일 동안 그의 집을 수색한 결과 놀라운 증거물들을 발견했다. 그의 집과 차고에서 1000여 장의 여성 사진과 수백 분가량의 동영상들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
사진 속 인물은 대부분 10~60대의 흑인 여성들이었으며, 일부는 백인과 동양 여성도 있었다. 사진 속의 여성들은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거나 알몸이거나 혹은 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모습도 있어 혹시 살인을 저지른 다음 촬영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사진들도 더러 있었다.
동영상은 X등급의 포르노물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았으며, 간혹 프랭클린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한 동영상 클립에서는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여성을 더듬는 남성의 손이 잠깐 나오기도 한다.
이밖에도 프랭클린의 집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 한 자루와 희생자들의 것으로 의심되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시계 등도 다수 발견되었다. 이에 경찰은 “아마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 했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180장의 사진이 공개된 후 여기저기서 제보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자신이 사진 속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들도 있었으며, 어떤 남성은 사진 속의 한 여성이 1985년 실종된 자신의 아내 같다고 했다. 프랭클린은 현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태. 그의 변호인 역시 이번 사진 공개로 인해 그가 공정한 판결을 받기가 어려워졌다며 경찰의 처사를 맹비난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