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대형 해운사 인수합병(M&A)으로 대기업 집단이 된 중견기업으로는 하림그룹이 있다. 하림그룹은 2015년만 해도 자산이 4조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총자산이 4조 4000억 원인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9조 원대로 올라섰다. 이후 2016년 양재동 부지를 인수하면서 2017년 대기업 집단에 지정됐다.
창업 몇 년 만에 대기업 집단으로 올라선 그룹은 카카오, 네이버, 넷마블, 넥슨 등 주로 IT 기업들이다. SM과 하림은 성장성이 높지 않은 건설·유통업에서 본연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M&A를 통해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기에 경영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성공한 경영인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주목할 부분은 두 회사 모두 대기업 집단 선정으로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지분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부채도 줄여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일으킬지도 고민거리다.
#SM, 순환출자 해소했지만 지분구조 개선 갈 길 멀어
SM그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졌다. 순환출자란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리는 것으로 한 그룹 내에서 A 기업이 B 기업에, B 기업이 C 기업에, C 기업이 다시 A 기업에 출자하는 식이다. 순환출자는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편법이지만 대기업 집단이 되면 이를 해소해야만 한다.
SM그룹은 2017년만 해도 185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난해 대기업 집단 지정을 앞두고 이를 모두 해소했다. SM그룹은 우오현 회장의 강한 의지로 단기간 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없앨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SM그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졌다. 서울 강서구 SM R&D 건물. 사진=박정훈 기자
그러나 지배구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다. M&A에 나설 때마다 현금 여력이 있는 계열사가 중구난방으로 동원되다 보니 이종산업의 기업에 출자한 건이 적지 않다. 일례로 SM그룹 대표 해운사인 대한해운과 SM상선의 주인이 다르다. 대한해운의 주요 주주는 SM하이플러스(21.43%), 케이엘홀딩스(16.41%) 등이고, SM상선은 삼라마이더스(41.4%), 티케이케미칼(29.6%), 삼라(29%)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같은 업종끼리 모여 있어야 신규 투자 등을 집행할 때 유리하다”며 “SM그룹은 해운사 위에 화학 회사가 있는 식이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집단이 되면서 계열사에 대한 보증이 어려워졌다는 점도 지켜볼 부분이다. 그간 SM그룹은 불필요한 이종산업 진출, 부채 과다 등으로 무너진 회사를 인수한 후 계열사 채무보증으로 신용도를 회복해 정상화시키는 전략을 펴왔다. 기업 자체는 경쟁력이 있었기에 채무보증 및 추가 투자 집행 후 정상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기업 집단 지정으로 앞으로는 상호 간의 채무 보증이 불가능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간 빚보증을 허용하면 불황 시 연쇄 도산이 발생할 수 있어 법으로 막는 것”이라며 “SM그룹의 경우 대한해운 인수 후 해운업황이 개선돼 다행이지만 불황이 오랜 기간 지속됐다면 모기업에도 여파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SM그룹 관계자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등 그룹 전체적으로 대기업 집단 지정에 대한 대비를 해왔고, 해운사 주주 구성과 관련한 논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대기업 집단이 됐으니 채무 보증을 통해 회사를 키우는 전략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지만 ESG 경영 실천 등 대기업에 걸맞게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 지정 후 공정위 조사받고 물류센터 차질 빚은 하림
해운사 팬오션을 인수해 대기업이 된 하림그룹은 두 가지 이유로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림그룹은 대기업 집단 지정 후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받기 시작해 조만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제재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김홍국 회장이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하림이 계열사를 동원해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 하림지주 과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 올품을 부당 지원했다고 보고 2017년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김준영 과장은 김홍국 회장으로부터 2012년 올품 지분 100%를 증여받았다. 증여세로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내긴 했지만 증여세 자금을 올품의 유상감자로 마련해 논란이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하림그룹 계열사들은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올품과 거래해 부당 이득을 챙기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해운사 팬오션을 인수해 대기업이 된 하림그룹은 두 가지 이유로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하림타워. 사진=일요신문DB
하림그룹은 양재동 부지 개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림은 2016년 9만 4949㎡(약 2만 8800평) 규모의 경부고속도로 옆 화물터미널 부지 ‘파이시티’를 매수했다. 하림그룹은 이 부지를 용적률 800%, 높이 70층 규모의 도시첨단물류단지로 만들 계획이었지만 서울시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변과의 연계성 및 차량 정체 심화 등의 이유로 용적률 400%, 50층 이하를 요구하고 있다. 양측이 각자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하림그룹은 대출 이자만 납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계는 하림그룹이 대기업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홍역을 치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되면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데 하림은 ‘증여세 냈으니까 됐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부지를 샀으니 시는 조속히 개발을 허가하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오너 영향력이 큰 SM그룹이나 다른 중견기업들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시장 일각에서는 양재동 부지가 조만간 개발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결단을 내릴 것이란 희망 섞인 분석이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재동 물류센터는 그룹 차원에서 여러 시너지가 기대됐는데 오랜 기간 답보 상태였다”며 “서울시의 승인이 나오는 대로 개발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수도권에 위치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봤을 때 부가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 한 관계자는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면서 불공정거래가 있었는지 공정위 조사를 받은 것이고, 이와 관련한 공정위 전원회의가 개최될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2018년부터 일감 몰아주기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고, 공정위도 전원회의 전에는 결정된 것이 없다고 입장을 냈다”고 전했다. 파이시티 관련해서는 “(오세훈 시장 취임 후) 특별히 진전된 사항은 없다”고 덧붙였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