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극장 앞 여배우의 흡연
1990년대 말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 앞 풍경이다. 영화 기자시사회를 앞둔 시점 극장 앞에 기자 대여섯 명이 모여 있는데 당대를 풍미한 여배우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배우가 중앙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주도하고, 기자들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영화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당시 기자시사회에는 지금처럼 엄청난 취재 인파가 몰려들지 않았다. 일간지와 스포츠신문 영화 담당 기자들과 주·월간지 기자들, 그리고 영화전문지 기자들 정도만 참석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연예매체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취재진 앞이라 여배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될 여지도 있었지만 당시 그런 모습을 보도하는 매체는 없었다. 극장 앞 길거리라 담배 피우는 행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연예인의 자연스러운 흡연도 가능했다.
#장면2. 담배연기 가득했던 촬영현장
그럼에도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극장 앞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웠다는 부분이 다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시절엔 촬영 현장에서도 여배우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2002~2004년 사이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퇴출됐지만 그 이전엔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이 쉽게 등장했다. 영화에서는 지금도 흡연 장면이 종종 나온다. 연기 중인 배우도 흡연을 하고 있는 터라 촬영 현장에서 대기하는 배우와 스태프들도 자연스럽게 흡연을 했다. 오히려 배우와 스태프만 있는 공간인 촬영장소가 연예인 입장에선 더 편했을 수 있다.
그 시절 한국 사회 자체는 흡연에 대해 지금에 비해 훨씬 관대했지만 여성 흡연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지금보다 심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의 흡연을 불편하게 여기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촬영현장 같은 곳이 더 편한 흡연 공간이었다. 다만 실내 세트장에서도 흡연 장면이 자주 촬영됐던 터라(당시에는 안방이나 거실에서의 흡연이 일반적이어서 드라마에도 그런 장면이 많았고 이런 장면은 대부분 세트 촬영이었다) 무제한적인 세트장 흡연이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는 종종 있었다.
최근 임영웅은 방송국 분장실에서 흡연을 한 부분이 문제가 됐고, 서예지는 차량 안에서 자주 흡연을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사진=CJ ENM 제공
2000년대 중반 이후 흡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다중이용시설 내 금연, 건물 내 금연 등이 확산되면서 당연히 여겨지던 방송국 대기실 흡연도 금지되는 분위기였다. 대신 방송국 현관에 마련된 흡연구역이 연예인들의 흡연 공간이 됐다. 촬영 도중 쉬는 시간에 연예인들이 방송국 현관 옆에 삼삼오오 모여 흡연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실은 물론이고 세트장 내부에서도 흡연이 자유로웠던 것에 비해 큰 변화였다.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다.
#장면4. 임영웅 서예지 연이은 담배 논란
최근 임영웅은 방송국 분장실에서 흡연을 한 부분이 문제가 됐고, 서예지는 차량 안에서 자주 흡연을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연예인들도 흡연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우면 되지만 요즘에는 그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과거와 달리 일부 언론이 연예인의 흡연 모습을 보도하고 있는 데다 유튜버들은 오히려 그런 모습을 촬영하는 데 더 집중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기능 좋은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요즘에는 누가 촬영했는지도 모르게 흡연 모습이 포착될 수 있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흡연구역에서의 흡연도 쉽지가 않다. 연예인이 흡연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안티팬을 중심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연예인이 스스로 자신의 SNS에 흡연하는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에도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그래서 가장 편한 흡연 공간이 차량인데 사실 촬영 도중 흡연을 위해 주차장에 있는 차량까지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방송국 등 촬영 현장에 도착하면 매니저들이 가장 먼저 연예인이 편하게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러 다닐 정도다. 연초에 비해 연기와 냄새가 덜한 전자담배와 액상담배가 많이 보급되면서 대기실 등에서 흡연하는 연예인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흡연하는 모습만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냄새와 연기가 없어 흡연 사실이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건강을 위해 금연은 분명 중요하지만 정해진 구역에서의 흡연은 불법은 아니다. 따라서 연예인에게 점점 흡연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분명 생각해볼 문제다. 스타급 연예인들은 흡연구역에서조차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