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장르가 콘텐츠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면서 1020세대를 겨냥해 앞다퉈 이를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난다.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의 증가도 BL 장르의 인기에 힘을 보탠다.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골라 보는 환경이 구축된 덕분이다. 아이돌 가수나 청춘스타들도 BL 콘텐츠 참여에 적극적이다. 라이징 스타 손우현은 주연을 맡은 BL 웹드라마 성공에 힘입어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쌓았고,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BL 참여를 통해 팬덤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
BL 웹드라마 ‘나의 별에게’는 올해 1월 포털사이트 시리즈온 및 채널 ENDG에서 공개되자마자 동시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을 맞았다. BL 장르가 처음 출발한 일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사진=BL 웹드라마 ‘나의 별에게’ 공식 인스타그램
#여성 팬덤 지지…‘현실에 없는 남성’ 판타지
BL 웹드라마 ‘나의 별에게’는 올해 1월 네이버 시리즈온 및 채널 ENDG에서 공개되자마자 동시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을 맞았다. BL 장르가 처음 출발한 일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일본 라쿠텐 TV에서 전체 콘텐츠 순위 1위까지 올랐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열광하는 BL 장르의 인기를 증명한 순간이다.
BL은 일본에서 하위문화로 태동했다. 1990년대부터 일본 여러 잡지에 BL이란 단어가 쓰이면서 남성 동성애 코드의 콘텐츠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마니아 성향이 짙은 장르이지만 최근 자신만의 시선과 취향을 가진 소비층이 확대되고, BL 콘텐츠의 소재도 다양해지면서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성간 러브스토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함, 남녀의 성별 구분에 국한하지 않고 원하는 인물에 이입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강점으로 각광받는다.
최근 히트한 ‘나의 별에게’는 우연히 동거를 시작한 연예인과 셰프의 강렬한 사랑을 그린다. 시청률 17%를 기록한 tvN 드라마 ‘철인왕후’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나란히 공개됐음에도 인기 순위에서 1, 2위를 다퉜다. ‘주류’인 케이블채널에서는 ‘철인왕후’가 동시간대 경쟁작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1020세대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 셈.
BL의 핵심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미소년의 등장, 그들이 나누는 애틋한 사랑이다. 그야말로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것 같은 미소년, 잘생긴 남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섬세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팬심’을 자극한다. 때문에 BL 장르의 절대적인 소비층은 여성이다. BL 장르의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들 가운데 남성이 드문 이유도 비슷하다. 온전히 여성 판타지를 충족하는 장르로 확고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BL 웹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이런 충성도에 힘입어 팬덤을 빠르게 구축한다. ‘나의 별에게’의 주인공 손우현은 드라마 ‘구미호뎐’ 등을 통해 주목받는 신예에서 어엿한 라이징 스타로 부상했다. 상대역인 김강민 역시 ‘스토브리그’로 데뷔하고 불과 2년여 만에 이름을 알렸다. 여기에 아이돌 그룹 뉴키드의 멤버 진권도 출연해 BL 러브스토리를 완성했다.
‘류선비의 혼례식’은 사라진 누이 대신 혼례를 치른 주인공이 겪는 동성 결혼생활을 다룬다. 헬로우 라이브 TV, 일본 라쿠텐 TV, 18개국 LINE TV, We TV 등을 통해 전세계 동시 공개된 가운데 특히 대만 라인 TV와 라쿠텐 TV에서는 일간 차트 1위에 올라 인기를 증명했다. 사진=웹드라마 ‘류선비의 혼례식’ 공식 포스터
#BL 웹드라마 러시…영화로도 확장
BL 장르는 웹드라마의 잇단 성공으로 폭발력을 더하고 있다. 주요 타깃 층이 1020세대로 맞춰지면서 이들이 선호하는 웹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소재로 확대된다. BL 게임까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성공한 웹드라마는 다시 영화 버전으로 제작된다. 지상파나 케이블채널, 기존 OTT 플랫폼이 형성한 주류 시장에서는 엿볼 수 없는 ‘웹 콘텐츠 전쟁’이다.
누적 조회수 1억 9000만 뷰를 돌파한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를 만든 제작사 와이낫미디어도 BL 장르에 도전장을 냈다. 동명의 BL 게임을 원작으로 웹드라마 ‘새빛남고 학생회’를 제작키로 했다. 친구를 사귀려고 고등학교 학생회에 들어간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하이틴 로맨스다. 외형과 매력이 각기 다른 4명이 남학생들이 얽히고설켜 나누는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와이낫미디어 관계자는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에서 BL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시도와 변화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며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을 바탕으로 차별화한 웰메이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BL과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을 접목한 시도도 있다. 아이돌 그룹 마이네임의 멤버 강인수가 주연을 맡은 웹드라마 ‘류선비의 혼례식’은 사라진 누이 대신 혼례를 치른 주인공이 겪는 동성 결혼생활을 다룬다. 헬로우 라이브 TV, 일본 라쿠텐 TV, 18개국 LINE TV, We TV 등을 통해 전세계 동시 공개된 가운데 특히 대만 라인 TV와 라쿠텐 TV에서는 일간 차트 1위에 올라 인기를 증명했다.
해외 팬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BL 웹드라마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나의 별에게’와 ‘류선비의 혼례식’ 등 최근 히트한 BL 웹드라마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해 성과를 냈다. 2020년 5월 공개된 국내 첫 BL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전 세계 200여 개국에 공개되기도 했다.
한 웹콘텐츠 제작사의 관계자는 “BL 장르가 일본에서 시작돼 중국과 동남아에서 마니아 중심의 콘텐츠로 소구됐지만 한국에서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지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며 “한류 콘텐츠를 선호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겨냥한 신흥 장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웹드라마 ‘나의 별에게’는 영화 버전으로도 재탄생해 OTT 넷플릭스, 웨이브 등에 공개됐다. ‘류선비의 혼례식’ 역시 5월 27일 감독판 형식의 영화 버전을 공개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개봉도 잇따른다. 2020년 7월 개봉한 BL 애니메이션 ‘지저귀는 새는 울지 않는다’는 극장개봉 관객 9000여 명을 동원,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 2월에는 ‘해변의 에트랑제’ 역시 6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BL 장르의 충성도 높은 관객층의 존재를 알렸다.
이해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