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 성장 중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함부르크의 샛별 손흥민을 만났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그가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이 축구화일 정도로 10대의 마지막 문턱을 넘는 그의 머릿속은 온통 ‘축구’ 생각뿐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먼저 축하드려요. 아시안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됐는데 소감이 어때요?
▲감사합니다. 꿈만 같아요. 기대도 되고 부담도 되고요. 사실 전 대표팀에서 형들 훈련하는 걸 보고, 배우기 위해 온 거라 전혀 기대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최종 엔트리 발표가 난 지금도 실감이 나질 않는 것 같아요.
―아직 어린 나이라 태극마크를 달 기회는 앞으로도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유독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처음엔 감독님이 아시안컵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제 다친 부위가 염려스럽다면서요. 저한테 의견을 물으시기에 어차피 전반기 끝나면 휴식기간이니 그때 대표팀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죠. 물론 감독님이 한 번에 승낙하진 않으셨어요. ‘왜 그렇게 가고 싶냐’고 물으시기에 “축구 선수라면 누구든 자기 나라 국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게 꿈이지 않느냐”고 대답했죠. 그러니까 ‘다치지 않게 잘 다녀오라’고 보내주셨어요.
―대표팀에 합류하니 어땠나요. 처음이라 어색하고 긴장됐을 것 같은데. 어떤 선배가 제일 잘해주던가요?
▲처음엔 아는 형들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공항에서 (최)효진이 형, (구)자철이형, (지)동원이 형을 비롯해 많은 형들이 먼저 와서 인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제주도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선배들 방을 다 돌면서 인사드렸어요. 그때가 밤 11시니까 다들 주무실까봐 걱정했지만 다음 날 아침 훈련 전에 미리 인사드리는 게 예의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방문에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는데 엄청 긴장됐어요. 형들도 처음엔 당황해서 제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도 있었어요(웃음). (염)기훈이 형은 마사지 중이셨나봐요. ‘손에 크림 범벅이라 악수를 못하겠네’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모든 형들이 다 잘해주시지만 특히 효진이 형이랑 (조)용형이 형이 많이 챙겨주셨어요.
―룸메이트였던 조용형 선수는 본인에게 까마득한 선배잖아요. 긴장되지 않았어요?
▲워낙 잘해주셔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처음에 방에 들어가니 ‘흥민아,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형 생각 말고 편하게 방 쓰라고 하셨어요. 제가 간식을 엄청 좋아하는데 용형이 형이 그걸 아시곤 밖에 나갔다 오실 때 간식거리를 잔뜩 사다 주셔서 감동했었죠.
―대표팀 훈련은 어땠어요? 독일에서 하던 훈련과 다른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형들을 보면서 감탄했어요. 기훈이 형의 파워, (유)병수 형의 골 결정력, 자철이 형의 센스…. 선배들한테 배울 점이 너무 많았거든요.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로 훈련하려니 힘들더라고요. 감독님과 코치님도 원래 1분 간격으로 하는 체력 훈련을 저는 30초만 하라고 하셨어요. 근데 30초만 하고 멈추면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끝까지 참고 했죠(웃음).
독일에선 운동을 많이 시키지 않아요. 화요일에만 강도 높은 훈련이 있고 그 외엔 1시간 10분 정도 게임 위주의 훈련을 하죠. 웨이트 트레이닝은 각자 알아서 하고요. 구단에서 개인 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언덕이 있는데 전 훈련 끝나고 언덕을 5번 오르고 개인 연습을 더 한 뒤 들어가는 편이에요.
―조광래 감독님을 뵌 건 이번이 두 번째죠? 실제로 뵈니 어땠나요?
▲독일에 오셨을 땐 처음 뵙는데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워낙 사투리를 쓰시다보니 감독님이 말씀하실 땐 모든 신경을 눈과 귀에 집중해서 안 놓치고 들으려고 애써요. 몇 가지 단어를 캐치한 다음 연계해서 해석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인기를 실감했을 것 같은데.
▲공항에서 기훈이 형이랑 (정)성룡이 형이 팬들에게 둘러싸여서 사진 찍고 사인해주고 계시더라고요. 근데 갑자기 기훈이 형이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손흥민 선수 맞아요?’라고 물어보면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제가 손에 들고 있던 감귤 초콜릿도 드렸어요(웃음). 대부분 절 보시곤 ‘정말 손흥민인가? 아닌 것 같은데…’ 하세요.
―독일에선 다들 손흥민 선수를 알아본다고 들었어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독일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팬들이 500~600명씩 찾아오세요. 결승골 넣은 선수 유니폼은 금방 동이 나버린다고 해요. 전 근데 골 넣었을 때마다 졌잖아요. 그것도 두 번 다 3 대 2로.
―그래도 데뷔골 기록했을 때 기분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부상 이후 첫 복귀 시합에서 터진 값진 골이었잖아요.
▲사실 그날 경기 직전에 엄청 못 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전 경기 전에 오늘 내가 잘 뛸지 못 뛸지 감이 오거든요. 나중에 비디오를 보니 엄청 헤매는 게 보이더라고요. 경기 시작하자마자 처음 골 잡고 파울 얻어낸 뒤로 계속 실수했어요. 전반 23분에 골 넣고 그 후로 5분 동안 잘 뛰다가 다시 계속 볼 뺏기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날은 복귀 후 첫 선발 출장이라 더 긴장해서 그랬나봐요. 몸 풀면서 슈팅할 때 ‘촉’이 오는 것 같아요. 그 예감은 항상 적중했고요.
―함부르크 동료들은 어때요? 판 니스텔로이(네덜란드)가 멘토를 자처했는데 어떤 선배인가요?
▲공격수 믈라덴 페트리치(크로아티아)가 분위기 메이커예요. 말보다 몸으로 웃기는 편이죠. 조나단 피트로이파(부르키나파소)는 말을 안해요. 정말 조용해요. 판 니스텔로이는 제가 운동장에서 실수하거나 움직임이 잘못됐거나 하면 항상 지적해주고 인생관에 대한 조언도 해줘요.
―함부르크 동료들이 한국 선수들에 대해 먼저 묻기도 하나요?
▲그럼요. 요새 부쩍 더 늘었어요. (윤)석영이 형, 자철이 형, 병수 형에 대해 묻는 동료들이 많아졌어요.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선배들에 대해선 말 다했죠. 진짜 잘한다며 부러워할 정도니까요.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들었어요. 유학 초기, 혹시 언어 때문에 고생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너무 많아서요(웃음). 한 번은 음식을 주문하면서 메뉴판에 쓰여진 독일어를 그대로 읽었어요. 그런데 주문한 메뉴 말고 엉뚱한 음식이 나오더라고요.
―차두리 선수가 직접 통역해준 적이 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깜짝 놀랐을 것 같은데.
▲저도 그 기사 읽고 깜짝 놀랐어요. 전 차두리 선수와 전화통화 한 적도 없고 인터뷰한 적도 없거든요. 제가 아니라 저랑 같이 풋살 대회에 나갔던 (김)민혁이 형이 차두리 선수와 전화통화한 거예요. 민혁이 형이 지시를 못 알아듣자 전화 연결해준 거였죠. 전 차두리 선수 목소리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만나 뵙고 싶어요.
―특별히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이유가 있나요? 가고 싶은 리그가 있다면요?
▲제가 영어를 못해요. 대한축구협회에 선발돼서 1년 동안 독일 유학을 다녀오고 나니 영어보단 독일어에 더 자신이 생겼거든요. 가고 싶은 구단은 단연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죠! 제가 맨유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특히 지금은 맨유 선수가 아니지만 호날두를 좋아해요. 실력도 좋고 인기도 많고 축구선수로서 닮고픈 점이 많아요. 물론 사생활만 빼고요(웃음). 레알 마드리드도 가고 싶고요. 저한테는 저 꼭대기에 있는 구단이지만요.
▲ 손흥민이 자신의 멘토이자 스승인 부친 손웅정 씨와 포즈를 취했다. 부자의 마주보는 시선이 훈훈하다. |
▲그럼요. 아버지시고 축구 선배이자 제 지도자시죠. 축구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세요. 그중에 가장 강조하시는 건 ‘예의’와 ‘성실함’이죠. 독일에 아버지가 계시면 슈팅 연습, 웨이트 트레이닝 등 1 대 1 훈련을 함께할 수 있는 데다 정신적으로도 정말 힘이 되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는 것만 빼면요(웃음).
―키(183㎝)에 비해 발이 작네요.
▲네. 255~260mm 신어요. 게다가 발 폭이 좁아서 신발 고르기 좀 힘들어요. 약간 평발이라 오래 뛰면 발바닥이 많이 아파요. 지성이형만큼 심한 평발은 아니고요.
―손흥민 선수 패션이 축구 실력만큼 뛰어나단 얘기가 많아요. 쇼핑은 어떻게 하나요?
▲쇼핑은 간단하게 끝내요. 제가 청바지를 사야겠다고 맘 먹으면 머릿속에 미리 종류, 색상, 두께를 정해놓고 청바지가 많은 매장에 가서 제가 원하던 청바지만 고른 뒤 바로 돌아와요. 한국에 있을 땐 쇼핑을 거의 못해요.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워낙 짧다보니 일단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거든요.
―경기 전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요?
▲게임 전에는 주로 신나는 음악을 들어요. 심박수를 높이려고요. 한국 가요를 주로 듣는 편이죠.
―미니홈피도 예쁘게 꾸며져 있던데.
▲가끔 미니홈피에 사진 올리고 다이어리를 써요. 방명록도 다 읽어보고요. 예전엔 방명록에 글 써준 분 미니홈피에 찾아가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곤 했는데 지금은 방문자 수가 많아져 못하고 있어요. 일촌신청도 엄청 밀렸어요. 2300명 정도요. ‘왜 제 일촌 안 받아주시냐’는 팬 분들이 계신데, 일부러 수락 안하는 게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오해 풀어주세요(웃음).
―아시안컵 그리고 리그 후반기 목표를 소개해줘요.
▲먼저 아시안컵 우승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올 시즌 목표한 골이 7~8골이었어요. 전반기 리그 3골을 목표로 했었는데 일단 첫 단추는 채웠네요. 후반기 리그까지 제가 목표로 한 7~8골을 다 채우고 싶어요. 2011년엔 더욱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우린 널 기다릴거야” 반니 위로에 ‘폭풍 눈물’
지난 8월 결승골을 넣었던 첼시전 막판 상대선수 태클에 왼쪽 발목 부상을 당했던 손흥민. 그는 2개월 반의 재활 이후 정규리그 7경기에서 3골을 뽑아내며 완벽히 부활했다. 부상 그리고 재활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골을 넣은 뒤 상대 선수와 부딪혔을 때 발목에 심하게 통증이 왔어요. 발이 안 움직일 정도였으니까요. 겨우 일어나서 추가 시간 3분 동안 이 악물고 뛰었어요. 게임 끝나고 다리를 살짝 들어보는데 엄청난 통증과 함께 발이 덜덜덜 떨리더라고요.”
다음날 목발을 짚고 병원을 찾은 손흥민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복숭아 뼈 밑 부분이 피로 골절로 부러지고 만 것.
“3개월 동안 운동을 못한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초조하기도 했고요. ‘절대 울지 말자’ 속으로 다짐을 하고 구단에 돌아갔어요. 선수들이 ‘괜찮다. 3개월간 기다렸다가 다시 시작하자’면서 위로해줬죠. 눈물을 꾹 참고 땅을 쳐다보면서 걷는데 갑자기 누가 앞에 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장실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반니(판 니스텔로이)였죠. ‘우린 널 기다릴거다’고 말하는데 거기서 참았던 ‘폭풍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재활에 임했던 2개월 반의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온다고. 부상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손흥민. 그의 2011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