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최근 대형 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동수사를 비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고 손정민 씨 실종 사건’과 ‘구미 3세 여아 사건’으로 이런 여론에 불이 붙고 있다. 경찰도 사건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5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경찰의 늑장수사 비판’ 청원이 올라가 금방 8만 명 넘는 동의가 이뤄지는 등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5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주변에서 경찰이 의대생 고 손정민 씨 친구의 휴대폰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고 손정민 씨 아버지 손현 씨가 경찰의 초동수사를 문제 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배당했다. 경찰의 수사 대응이 적절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들 대다수는 사건 특성을 고려할 때, 경찰의 수사 대응에 대해 ‘무조건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의심을 할 여지가 있는 사건은 맞지만, 초반부터 대대적인 경찰력을 동원하기에는 증거의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 검사가 나가서 함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등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금 더 치밀한 수사를 위한 검찰과 경찰 간 수사 협조는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10만 명 가까이
고 손정민 씨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에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민 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글에 12일 오후 기준, 41만 4250명이 청원했다. 5월 3일 올라온 해당 청원에서 글쓴이는 “누가 봐도 이상한 사건, 왜 경찰은 그 시간대까지 같이 술 먹었던 친구는 조사하지 않았냐”고 비판했다.
5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경찰의 늑장수사 비판’ 청원글.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검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정민 씨의 아버지 손현 씨가 5월 4일 “아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진해 현재 많은 중요 증거 자료가 소실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검찰에 낸 진정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허인석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손 씨는 진정 취지에 대해 “아무 증거가 나오지 않아 (피의자가) 기소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수사가 미흡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검찰은 일단 경찰 수사 진행 과정을 지켜본 뒤, 대응 과정의 적절성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4월 30일 정민 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9일 만인 5월 9일 정민 씨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 씨와 그의 부친을 불러 10시간가량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경찰 불신론은 상당하다. 경찰 수사와 별도로 자원봉사 민간수색팀 ‘아톰’ 등 민간잠수부가 A 씨의 휴대전화를 찾으러 나섰다. 민간수색팀 ‘아톰’에 따르면 최근 젊은 민간인 부부가 한강 인근에서 아이폰 한 대를 발견해 경찰이 아닌 해당 수색팀에 넘기기도 했다. 아톰은 이에 대해 “앞서 발견한 휴대전화를 경찰이 돌려주지 않아 이번엔 자체 포렌식한 뒤에 넘기겠다”며 경찰을 못 미더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A 씨의 부친·친척이 고위 경찰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사실’처럼 퍼지고 있다.
#구미 3세 여아 사건 때도 빈손 송치
경찰 수사 능력이 비판을 받았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경북 구미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 사망 사건을 놓고, 빈손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도 했다. 유전자(DNA) 검사 결과 외할머니였던 석 아무개 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사실은 밝혀냈지만, 숨진 여아의 친부와 사라진 손녀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딸이 낳은 여아가 바꿔치기 된 과정 확인 △숨진 여아의 친부 등의 바꿔치기 공범 개입 가능성 등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숨진 3세 여아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딸의 범죄행위와 시신을 유기하려 했던 할머니 석 씨의 범행만 확인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직접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결국 아이 바꿔치기가 이뤄진 시점이나 장소, 방법에 대해 ‘불상’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했다. 증거 확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사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 대목이다.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타살이 의심되는 사건에서는 경찰의 증거 확보 능력이 우리(검찰)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언급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경찰 대응 적절하지만 2% 아쉬운 현실”
자연스레 ‘검찰이 했으면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도 네티즌 사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검사들의 반응은 “이런 강력사건은 경찰의 수사력이 검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게 공통의 반응이다.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타살이 의심되는 사건에서는 경찰이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거 확보 능력 등 실력이 우리(검찰)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며 “특히 증거 확보가 필요해 인원을 100~200명씩 동원하는 상황에서는 경찰이 검찰보다 수사를 더 잘한다”고 언급했다.
경찰 사건 지휘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정민 씨 사건이 국민들 시선에서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행동 한두 개를 가지고 갑자기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해서 휴대전화를 찾는다거나 CCTV를 확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수사력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아마 국과수 발표를 보고 타살 정황이 있다는 판단을 하면 수사력을 동원하는 ‘통상의 경찰 대응’으로 하다 보니 비판을 받은 것 같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약해진 수사 협조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수도권 지역의 한 간부급 검사는 “과거에는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검사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경찰이 수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보충해서 확보해야 할 증거’들을 얘기하며 수사 지휘라기보다는 수사 협조를 함께하기도 했는데, 이제 수사권 조정으로 아예 불가능해졌다”며 “사실 관계를 더 정확하게 입증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내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검찰과 경찰 간 현장 수사 협조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