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의원(사진=박은숙 기자)
[일요신문]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가 연일 청년 정책을 내놓으며 이재명 지사를 추격하고 있다. 징집 군인에게 사회출발자금 3000만 원, 사회 초년생에 미래씨앗통장 1억 원 등 획기적인 공약을 제시하며 청년층에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다. “이제야 청년을 돌아본다. 재보선 패배가 약이 됐다”는 해석도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그 좋은 정책을 왜 국무총리, 당 대표할 때는 안 하고 왜 이제 하겠다는 거냐”라는 아픈 지적도 나온다.
이낙연 의원은 5월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낙연 TV에서 “사병으로 징집된 남성들에게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걸 장만해서 드렸으면 좋겠다”며 “한 3000만 원, 가능하다면”이라고 했다. 제대 군인에 대한 보상을 수면 위로 꺼낸 것이다.
지난 1999년 12월 23일 헌법소원심판에서 제대 군인에 채용 시험 시 가점을 부여하던 군필자 가산점 제도가 폐지(효력 상실)되며 재판부는 “다른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라고 결정문(전원재판부 98헌마363, 1999. 12. 23.)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20년이 넘도록 청년들의 희생과 헌신에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회기마다 금전적 지원 등을 제공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제정되지 못하고 매번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년 전 2~4만 원 수준이던 사병 월급이 40~60만 원으로 올랐지만 청년들에게 군대는 적절한 보상 없이 끌려가 삶을 소모해야 하는 곳으로 통한다. 특히 일반 국민에 비해 정치인 자녀의 병역 면제 비율이 수십 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는 청년층의 분노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에게 군대는 불공정의 상징이다. “똥별(장성의 비하 표현) 유지를 위해 버릴 수 없는 징병제”, “지구에서 유일하게 노예제를 체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군대”라는 발언까지 나온다.
이낙연 의원의 ‘징집 전역자 출발자금 3000만 원’은 징병제를 단숨에 없앨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한 청년 달래기 정책으로 읽힌다. 이미 전역한 사병들은 받을 수 없지만 민주당이 특히 고전하고 있는 만 18세~20대 초반 청년층의 굳은 마음을 돌리기에 효과적일 거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한 미필 20대 청년은 “돈 준다고 민주당이나 이낙연 씨가 잘한다는 생각은 안 든다. 18개월 동안 3000만 원이면 최저임금인데 원래 그 정도는 해줬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나마 국회에서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국민의 힘 윤희숙 의원은 “제대군인 사회출발자금에 공감한다. 한나라당(국민의 힘의 전신)에서도 2005년 군인 퇴직금 도입을 내용으로 한 법을 발의했었다”며 “포퓰리즘 공약들과 같이 묶지 말고 고민해 발전시킵시다”라고 환영의 뜻을 비쳤다.
이낙연 의원은 청년 친화는 계속됐다. 11일 민달팽이 유니온(청년 주거 문제 개선 비영리 민간단체) 초청 청년 1인 가구 주거 대책 토론회에선 “헌법에 주거권을 명시하고 청년 주거급여 대상과 금액을 늘리겠다”고 했다. 현재 주거급여는 월 소득 82만 원 이하만 지급된다. 이를 최저임금(2021년 기준 182만 2480원) 수준까지 지급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이 의원은 “청년들이 월세 때문에 고통받지 않도록 하겠다. 임대료의 일부를 국가가 보조해 주겠다. 종부세를 청년 주거복지에 쓰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낙연 의원의 청년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일에는 중소기업중앙회, 7일에는 중견기업연합회를 찾아 “청년 채용을 늘려달라고 요청했고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8일에는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청년들을 이런 현실로 내몰았다는 것이 미안하다.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그 순간에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애절한 청년 사랑이다.
정세균 전 총리(사진=임준선 기자)
정세균 전 총리 역시 청년을 타깃으로 한 행보를 펼쳤다. 11일 오전 광화문포럼에서 “신생아들이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부모 찬스 없이도 자립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20년 적립형으로 1억 원을 지원하는 미래씨앗통장을 제안한다”고 했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전에 없던 획기적 개념이다. 부유층에게는 별거 아닌 돈일 수도 있지만 돈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잇기 위해 취업을 해야 하는 저소득가정 청년에게는 미래를 설계하고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연간 1만여 명에 달하는 속칭 고아(보호 아동)들을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정착지원금 500만 원을 쥐여주고 보육 시설에서 내쫓는 현실을 고려하면 1억 원이라는 지원이 현실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시설 관계자들과 시민사회가 보호아동에 대한 지원 확대와 정착지원금 인상을 요구했을 때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여 왔다. 같은 사회초년생이지만 보호종료아동에게 그토록 소홀했던 정부, 그리고 그 행정부의 장이 대선 도전을 앞두고 매년 30만 명에 달하는 신생아에게 1억 원 통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게다가 20년 적립형이라고 하지만 첫 수혜자가 나오는 시기부터는 사실상 매년 30만 명(2020년 출생아 수 기준)에게 1억 원씩을 줘야 하는 연간 30조 원짜리 예산이다. 20년간 매년 30조 원이 미래씨앗통장 몫으로 꾸준히 지출돼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예산의 축소나 증세, 기금의 전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전형적인 ‘현금 퍼주기 공약’이라는 비판도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지적을 뒤로하고 정세균 전 총리의 청년 사랑은 계속됐다. 정 전 총리는 11일 오후 국무총리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만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총리 시절 청년정책조정위를 출범시켰다. 정부에서 상시로 청년을 위한 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공식적 길을 열었다”고 넌지시 자신의 청년 사랑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청년의 힘겨운 현실을 생각만 해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스럽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한 구조적인 불평들이 청년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라며 “청년이 등에 쥔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국회의장 시절 1호 법안으로 ‘청년 세법 패키지’를 발의하기도 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12일에는 전주를 방문해 2030 청년창업활동가들과 만나 “씩씩하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여러분께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연일 국무총리 출신 대권 주자 두 사람의 청년을 향한 구애가 지속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 좋은 정책을 왜 권력의 최상부인 국무총리, 당 대표할 때는 안 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지율이 높을 때는 손 놓고 있다가 지지율이 떨어지니 공수표 남발하는 거 아니냐”는 날 선 비판이다.
이에 대해 이낙연 의원 측 관계자는 12일 “해당 정책들은 지난해 말부터 준비했던 것들이다. 총리, 당 대표 시절엔 당시 역할에 충실 하느라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정부를 통할할 힘이 있을 때, 180석 집권 여당의 당권을 가졌을 때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lithium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