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사진)이 최근 국내 소매금융 부문의 전체 매각 방침을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사진=한국씨티은행 제공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최근 직원들과 대화에서 “전체 매각, 일부 매각, 단계적 폐지 등 세 가지 옵션 중 전체 매각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관리(WM)와 신용카드, 대출 등 소매금융을 한 번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인수할 후보로는 제2금융권인 OK금융그룹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른 저축은행 대비 자본이 넉넉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이 수년 전부터 제1금융권 진출을 공언했다는 소문도 금융권에 파다하다.
지방은행들도 한국씨티은행 소매금융 부문 인수를 발판삼아 수도권 진출을 노릴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방은행은 수도권 진출을 내심 원하지만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방에서 조성된 돈이 수도권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고, 수도권 소비자들이 지방은행에 거리감을 느껴 잘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수도권에 영업점이 몰려 있는 씨티은행을 인수하면 자연스레 수도권 진출이 용이해질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소매금융 부문만 매각하겠다는 한국씨티은행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한때 제2금융권 금융사들이 큰 은행 인수 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제1금융권에 들어오면 금융당국 제재가 훨씬 더 심해지고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며 “한국씨티은행에 대단한 장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규제를 무릅쓰고 인수하고 싶을 만큼 매력은 못 느낀다”고 말했다.
지방은행들 입장에서도 기업금융을 뺀 한국씨티은행은 구미가 별로 당기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지방의 자동차‧조선업 등 여러 기업들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지방은행들의 기업금융 부문이 위축되고 있다. 지방은행들이 기업들이 훨씬 더 많은 수도권 진출을 꾸준히 노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씨티은행 인수로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기업금융이 빠져 있기에 지방은행들에 ‘수도권 기반’이라는 매력을 어필하기 힘든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한국씨티은행 소매금융 중 아쉬운 부분으로 카드를 꼽는다. 씨티카드의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으로 알려졌다. 씨티카드의 수수료 수입액은 2018년 3245억 원, 2019년 3079억 원, 2020년 2614억 원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씨티카드의 상품 경쟁력이 부족하다”며 “은행과 카드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자산관리 부문은 강점으로 꼽힌다. 자산관리를 경쟁사 대비 일찍 시작해 노하우도 상당하고, 글로벌 체인망을 기반으로 정보력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저금리 기조에서 은행들이 비이자 부문의 수익원을 찾고 있는 만큼 은행들이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 부문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금융분쟁조정절차 등을 규정한다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3월 25일부터 시행되면서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금소법을 비롯해 2019년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대규모 손실 사태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엄격해져 은행권이 상품 판매에 여러 제약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원용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의 불완전판매 등 이슈로 인해 은행은 앞으로 더욱 신중하게 영업해야 한다”며 “이 같은 영업환경에서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 부문을 인수해봤자 대단한 이점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승자의 저주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종로구 한국씨티은행. 사진=한국씨티은행 제공
통매각이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소매금융을 전체 매각하면 덩치가 커져 몸값이 비싸지고, 매각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관계자는 “씨티카드 사업 부문이 워낙 부진하다 보니 매물로 내놓아도 아무도 안 사갈 것 같기에 그나마 상황이 나은 자산관리 부문과 ‘원 플러스 원’ 형태로 묶어서 통매각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의 통매각 결정에는 노동조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씨티그룹이 소매금융에서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분리매각과 철수에 반대하며 전체 매각을 주장했다. 한국씨티은행 임직원 3500명 중 소매금융을 담당하는 직원은 2500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분리매각을 하면 2000명 정도가 실직할 것이라고 노조는 우려한다. 한국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급하게 서두를 것 없이 통매각 인수자가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되고, 버틸 만한 여력도 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씨티은행은 소매금융을 한 번에 묶어 팔아서 더 높은 가치를 받고 싶겠지만, 소매금융 지점을 폐쇄하는 것이 현재 은행업계의 흐름인 만큼 묶어 팔아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통매각이 잘 안 되면 분리 매각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