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기혼, 기미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불륜 목적 채팅방들. 사진=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대한민국 대표 메신저 카카오톡(카톡) 오픈채팅방이 암흑의 장으로 변질됐다. 오픈채팅방은 2015년 카카오 측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익명으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기존 카톡과 달리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아도 되고 채팅방 주소와 코드만 알면 얼마든지 방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익명성이라는 허점을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오픈채팅방을 통한 불륜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혼자와 미혼, 돌싱(‘돌아온 싱글’이라는 뜻으로 이혼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 등을 동시에 모집하는 대화방이 있으며 기혼자들만 따로 모집하는 대화방도 수십 개다. 기혼만 입장 가능한 방은 ‘기혼방’, 기혼과 미혼이면 ‘기미방’, 기혼과 돌싱이면 ‘기돌방’으로 불린다. 참여자들은 가볍게 연애하자는 의도로 접근하지만 실상은 기혼자들끼리 불륜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 많다.
기자가 잠입한 기혼자들의 카톡 오픈채팅방 대화. 사진=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기자가 잠입해 들어간 한 기혼자들의 대화방에선 배우자 몰래 서로 만남을 즐기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남들 키 클 때 나는 다른 게 크더라. 매력 어필이다” “판도라 상자 열린다” 등의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저녁에 만남을 추진하자”는 이야기가 오갔고 이를 동의한 사람들은 “약속 있는 척 몰래 빠져 나오겠다” “뭐 입고 갈까” “오빠는 내 일빠” 등의 말을 이어갔다.
이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도 존재한다. 깜짝 오프라인 만남을 의미하는 ‘커벙’(커피 번개)과 ‘출퇴’(배우자 출퇴근 시간에 맞춰 채팅방을 입퇴장하는 것), ‘얼공’(얼굴 공개 원칙) 등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는 오픈채팅 홈에서 간단한 키워드 검색만 하면 100여 개가 넘는 채팅방 리스트가 나타난다. 자신의 직장 동료가 해당 채팅방을 이용하는 모습을 봤다는 오 아무개 씨(42)는 “서로 비밀스러운 존재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만남을 성공하면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앞으로 계속 발생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적 판단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사회에서 풀어가야 할 하나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개설한 채팅방의 프로필 사진에는 ‘뜨거운밤권’(교환권)이라는 말이 적힌 그림이 있다. 카톡 오픈채팅방에는 ‘낮져밤이 중고대딩 수다방’ 등도 있다. 사진=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모인 친목방도 수두룩하다. 카카오 측에서 개설 목적으로 내걸었던 소통, 관심사 공유 등이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대화방명을 보면 단순한 관심사 공유 이상이다.
한 오픈채팅방의 프로필 사진에는 ‘훈이(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뜨거운밤권’(교환권)이라는 말이 적힌 그림이 있다. 이 채팅방을 개설한 방장은 12세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초딩 연애수다방’ ‘초딩 수다방’ ‘낮져밤이 중고대딩 수다방’ 등도 있다. 카톡 오픈채팅방이 10대와 20대가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나 성매매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일부 초등학생들이 개설한 카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인 30대의 A 씨는 당시 오픈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10대 초등학생 B 양을 유인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오픈채팅방에서 ‘보고 싶다’ ‘만나자’ ‘주소 좀 불러줄래’라며 B 양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주소를 확인한 후 B 양이 사는 도시로 내려갔고 차량 공유업체에서 빌린 차량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B 양은 A 씨의 휴대전화에서 200개가 넘는 오픈채팅방을 봤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12월 인천지방법원은 지적장애 3급의 13세 청소년을 상대로 성관계를 맺어 임신시킨 혐의(미성년자의제강간)로 기소된 C 씨(21)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오픈채팅방을 통해 처음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와 사단법인 탁틴내일이 지난해 서울에 사는 12~19세(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3학년) 1607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명 중 1명(36%)이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낯선 사람에게 쪽지나 대화 요구를 받아본 적 있다고 답했다.
카톡 오픈채팅방은 익명성이 보장되며 개설이 간단해 남녀노소 기준 없이 이용 가능해 범죄 노출은 더 쉽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텔레그램 n번방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메신저에서 불법 성착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승희 사이버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피해가 발생하고 사후 처벌이 이뤄진다고 해도 온라인 공간이라는 특성 탓에 피의자를 특정하는 문제가 형사적 공백 상태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카톡 오픈채팅방은 더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부와 접촉이 줄고 디지털 이용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세상에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디지털 문명이 들어선 뒤 발전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로 비대면 일상이 활성화됐다”며 “소통 공간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만들어졌고 결국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범죄로 악용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카톡 오픈채팅방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카톡 오픈채팅방에 대한 구조적 제재나 규제는 마땅치 않다. 불륜을 목적으로 개설된 채팅방의 경우 법을 통한 제재는 더 어렵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사인 간 대화를 감청하거나 검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개인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배우자에게 불륜 사실이 발각돼 이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 카톡 오픈채팅방이 유책사유가 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명예훼손 등 개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형태가 함께 갖춰져야만 처벌이 된다”며 “이혼소송 등 민사소송에서 상대(배우자) 유책사유로 작용해 소송인에 유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오픈채팅방을 통한 성범죄 사건의 경우 잠입수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잠입수사관들이 채팅방 등에 깔려 있다는 인식을 가해자에게 줄 필요가 있다”며 “경찰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채팅방에서 잠입수사를 하다가 범죄가 포착될 때 증거를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온라인 그루밍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그루밍이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한 후 약점을 잡아 성적 노예 혹은 돈벌이 등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범죄를 말한다.
카카오 측은 익명성을 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해 금칙어 관리 등 자체 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정확한 파악은 어렵다고 말한다. 카카오 관계자는 “성매매, 조건만남 등 일부 단어를 금칙어로 지정해 대화방명이나 닉네임에 한해 제재를 가한다”면서도 “방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사적영역이므로 모니터링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부적절한 대화방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대화 내용을 검토하고 삭제 조치를 한다”면서 “인공지능이 유해한 단어를 감지하고 한 번만 걸려도 이용 정지를 당할 수 있게 제작했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