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4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 지도부에 요구하는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누구 덕분에 ‘배지’를 달았는데….”
5월 13일 만난 한 친문 의원은 분을 삭이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총선 때 앞 다퉈 ‘문재인 마케팅’을 했던 이들이 누구냐. 바로 지금의 초선들”이라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빠졌다고, 임기 말이라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일로 친문, 그리고 지지층은 더욱 결집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이 강하게 비판한 것은 초선 의원으로 이뤄진 당내 모임 ‘더민초’가 문 대통령을 향해 장관 1인 지명 철회를 요구한 부분이다. 더민초는 5월 12일 임혜숙 박준영 노형욱 장관 후보자 중 ‘최소 1명은 부적격’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청와대에 대안을 강력히 권고할 것을 (당 지도부에) 요구하기로 했다”고 했다.
친문 진영에서 더민초의 이런 행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5월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이 반대한다고 검증 실패는 아니다”라면서 도마에 오른 후보자 3인의 임명 당위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낙마 ‘영순위’로 꼽혔던 임혜숙 후보자에 대해선 ‘여성 롤모델’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이 당 일각에서 거론되던 후보자 철회 요구를 완곡하게 거부하며 진화에 나선 셈이지만 이는 통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후부터 더민초 소속 의원들은 난상토론을 벌였고, 5월 12일 ‘1명 철회 요구’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 초선 의원은 “통일된 의견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귀띔했다. 일부 청와대 출신 및 친문 의원들은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문계 재선 의원은 “인사권자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당이 거부하는 그림이 됐다. 오히려 정권 초라면 철회의 부담이 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에 밀려 원하는 인사를 못했다는 것은 레임덕과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초선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대통령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초선 의원은 “대통령에게 세간의 여론을 ‘제대로’ 전하는 게 당의 중요한 일이다. 후보자 3인 모두를 밀어붙이면 재보선에서 나타난 성난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 정권 재창출을 위한 차원이다. 송영길 대표가 뽑힌 것 역시 이 역할을 하라는 주문 아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친문 내부에선 초선 의원들 움직임 뒤에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 당 중진들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팽배하다. 전당대회 기간, 대표 취임 후 줄곧 당청 관계 재정립을 강조해오고 있는 송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여의도에선 송 대표가 청와대 정무라인을 통해 특정 후보자 지명철회를 건의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5월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상암연구센터에서 열린 민주평화광장 출범식&정책토크쇼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송 대표는 5월 11일 재선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자신의 기조를 명확히 드러냈다. 그는 “당이 중심이 되는 대선을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가 명령하고 따라 가는 식은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송 대표는 “부동산 사태 원흉이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김상조는 내로남불의 극치였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친문 진영에서 송 대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경이다. 송 대표의 이런 스탠스가 차기 대선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청와대 출신 친문 의원은 “장관 발탁을 둘러싸고 물밑에서 불거진 당청 힘겨루기는 전초전 성격에 가깝다”면서 “(차기를 앞두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전쟁”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차기 레이스가 시작되면 국정 주도권은 미래 권력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당청 관계를 어떻게 갖고 가느냐다. 과거엔 현직 대통령을 ‘손절’했다. 지금 송영길 대표와 초선들의 행보도 그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문 대통령이 개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남은 임기 동안 힘을 실어줘야 한다. 또 차기 역시 문 대통령 뜻을 계승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이는 차기를 놓고 친문과 비문 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초선, 그리고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선 최근 친문계가 지피는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력 주자인 이재명 지사 역시 ‘원칙’을 강조하며 경선 연기에 반대하고 나섰다. 친문계의 경선 연기 주장이 ‘여권 차기주자 지지율 1위’ 이 지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가에선 친문계의 경선 연기론이 이재명과 여권 내 비문세력 간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이 지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기 주자들이 경선 연기에 긍정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이 지사를 견제하는 동시에 친문계 구애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즉, 경선 연기 논의를 기점으로 ‘이재명‧비문 vs 친문’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지사 측과 가까운 한 의원은 “경선 연기를 이슈화하는 순간, 당은 2개로 쪼개진다. ‘이재명에겐 정권을 줄 수 없다’는 게 친문의 뜻 아니겠느냐. 이 지사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계산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 재보선 때 당헌을 바꿔가며 후보를 냈다가 심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게 부각될 경우 오히려 ‘이재명 대세론’은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초선들은 친문계의 ‘3후보론’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모두가 경쟁력 있는 대통령감이다. 그런데 또 어디서 누굴 찾는단 말이냐. ‘적자’를 찾겠다는 것인데, 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이낙연‧정세균), 경기지사를 맡고 있는 분이 적자가 아니면 누가 적자란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