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에 예고됐던 ‘5월 보릿고개’가 현실화했다.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투싼, 넥쏘 등 주력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기아도 처음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사진=임준선 기자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17∼18일 대표 볼륨 모델(많이 팔리는 차종)인 투싼과 수소전기차 넥쏘를 생산하는 울산 5공장 2라인을 휴업하기로 했다. 에어백 컨트롤 관련 반도체 재고 부족에 따른 조치다. 아반떼와 베뉴를 생산하는 울산 3공장은 오는 18일 휴업한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 6∼7일 포터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 4월에도 아이오닉 5와 코나 생산라인이 구동 모터와 반도체 수급 문제로 휴업한 데 이어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의 가동도 4일간 중단했다.
기아도 오는 17~18일 소하 2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소하 2공장은 소형 SUV 스토닉을 생산한다.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 반도체 부족이 이유다. 기아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반도체 부족에 따른 위기를 예고했다. 당시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반도체 공급 이슈의 가장 어려운 시점은 5월이 될 것 같다”며 “4월까지는 기존에 쌓아둔 재고로 대응했으나 이제는 바닥을 보이는 상황이며 누구도 어느 정도 물량이 부족하다고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이 현실화하면서 인기 모델의 출고 지연도 잇따르고 있다. 통상 출고 기간이 한 달이 넘지 않던 아반떼는 현재 10∼11주를 대기해야 한다. 투싼은 고객에게 출고 일정을 고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현대차가 출시한 스타리아의 출고 대기 기간은 고급 모델인 라운지가 3개월, 일반 모델인 투어러는 6∼7주로 기본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전기차 아이오닉 5는 4만여 대가 사전계약됐지만 첫 달 출고 물량은 114대에 그쳤다.
현대차와 기아는 일단 기본 사양을 빼거나 일부 선택 사양을 적용하지 않으면 차량 출고를 앞당길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는 최근 대기 고객에게 유원하 국내사업본부장(부사장) 명의의 서신을 보내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부사장은 서신에서 “현재 차량 인도 지연의 주된 원인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에 있다”며 “반도체 소싱 대체 공급사를 발굴하고, 생산 운영 효율화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차량을 인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날 중장기적으로 미래차 핵심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고, 삼성전자·현대차 등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 기업 간 연대·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지만, 눈앞의 수급난 해소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