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통일부 공무원들이 북한산 농산물에 대한 원산지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 씨는 1990년대 북한으로부터 약재를 수입해 한국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2000년을 전후로도 중국 현지 보따리상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북한 무역을 해왔다. A 씨는 5월 14일 통화에서 북한이 원산지증명서를 판매하던 주요 품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북한 무역이 활발하던 시절 북한의 원산지증명서 판매는 주로 잣, 호두, 들깨, 콩 등 농산물과 녹용 등 한약재 위주로 이뤄졌다”고 했다.
A 씨에 따르면 북한이 원산지증명서를 판매하는 사무소는 중국 단둥뿐 아니라 훈춘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원산지증명서를 판매하는 금액 기준은 수·출입 품목 물량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통상적으로 원산지증명서 가격은 1톤당 얼마로 책정된다”고 했다.
그는 “상품마다 관세가 다르기 때문에 원산지증명서 가격이 각각 달랐다”면서 “예를 들어 호두를 수입하는 데 1톤당 원산지증명서 발급 비용이 1000달러라면 총 물량이 10톤이면 증명서 발급 사무소에 1만 달러를 지급한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엔 캐나다산 녹용이 북한과 중국 등을 거쳐 ‘북한산’으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다”는 게 A 씨 설명이다. 다음은 A 씨가 설명한 녹용 원산지 둔갑 사례다.
2003년 무역업자 박 아무개 씨는 캐나다산 녹용을 중국을 통해 들여왔다. 박 씨는 캐나다산 녹용에 대한 원산지증명서를 중국에서 발급받았다. 7톤에 달하는 캐나다산 녹용은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당시 캐나다산 녹용은 ‘사슴 광우병’을 우려해 전 세계적으로 수출이 금지돼 있던 상황이었다. 박 씨는 해당 녹용을 국내로 들여와 1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이후 박 씨는 경찰에 덜미가 잡혀 수사를 받았다.
A 씨는 “이 밖에도 녹용 등 약재의 원산지를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1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맞은 기업가들도 있었다”면서 “한때는 단둥과 훈춘에 위치한 북한 원산지증명서 발급 사무소가 ‘관세 환치기’를 할 수 있는 주요 사각지대로 꼽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A 씨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북한 무역 시장이 쪼그라들었는데, 그 뒤론 원산지 세탁을 활용하는 편법 사례가 확연히 줄었다”면서 “2021년 현재 영종도로 원산지증명서 발급 사무소를 유치하는 방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이럴 경우 다시 한번 북한 무역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북한 무역을 해봤었던 입장이지만, 이런 편법 사례를 굉장히 많이 봐왔다”면서 “개인적으론 북한산 물품에 대한 인식이 중국산보다 좋지 않다. 그게 진짜 북한산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