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태우고 달리는 택시, 택팡 등장
쿠팡이츠가 일부 배달 파트너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보너스 이벤트.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에 배달을 하면 음식 값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배달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 배달 대행 서비스는 전업 라이더 외에 일반인도 배달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배민커넥트, 쿠팡이츠는 쿠리어라고 부른다. 운송 수단은 도보,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인데 쿠팡이츠는 자동차를 이용한 배달도 가능하다. 사업 초반에는 용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가정주부, 은퇴족, 학생들이 주로 애용하다가 배달 대행 수수료가 높아지면서 이를 부업으로 삼는 직장인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택시를 이용해 음식 배달을 하는 택시기사까지 등장했다. 배달 업계에서는 이미 이들을 택시와 쿠팡이츠의 합성어인 ‘택팡’으로 부르고 있었다. 업계 종사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택팡은 배달 대행 수수료가 높은 강남을 중심으로 2~3월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강남에서 만난 전업 라이더 최 아무개 씨(55)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파의 한 식당에 배달을 갔는데, 택시기사가 잽싸게 들어와 음식을 가지고 나갔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포장해 가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배달할 물건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배달 대행 앱을 켜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라이더도 “모범택시기사가 치킨 배달을 하려고 조대(조리대기) 하는 것을 봤다. 짧게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데 ‘빈 택시로 다니기 힘들어서 오며가며 (배달을) 한다’고 하더라. 아마 시간대별 보너스(프로모션)를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경기도 용인에도 택팡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쿠팡이츠는 일부 배달 노동자를 대상으로 특정 시간대에 1건 이상 배달하면 보너스를 지급하는 이벤트를 거의 매일 진행하고 있다. 보너스 지급액은 5000~1만 원으로 지역별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문량이 많은 강남 지역이 가장 높았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지급액이 더 올라간다고 했다.
택팡을 바라보는 전업 라이더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국이므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불법은 불법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현행법상 택시를 배달업에 이용하면 안 된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개인택시운송사업은 국토교통부령에서 정하는 사업구역에서 1개의 운송계약에 따라 정한 자동차 한 대를 사업자가 직접 운전하여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이다. 지자체는 화물자동차, 버스, 택시 등 운송업계의 연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유가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택시를 이용해 여객이 아닌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개인택시운송사업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를 위반할 시 동법 시행령에 따라 사업일부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가 배달업에 뛰어든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로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제한시간이 밤 10시로 제한되면서 승객수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서울에서 중형 택시를 운행 중인 한 기사는 “밤 10시 넘어 영업하는 가게가 없으니 매일 9시 30분~10시 30분에만 손님이 몰리고 이후로는 손님이 뚝 끊긴다. 10시가 되면 다들 택시 잡기 바쁘고 잘 안 잡히니까 택시 벌이가 괜찮을 줄 아는데, 택시가 여러 명 태울 수 있는 버스도 아니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1~2명 모셔다 드리고 나면 10시가 넘는다. 그럼 우리도 영업 끝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은 오후에 출근했더니 3명밖에 못 태웠다. 손님이 마지막 승객일 것 같다”며 “요즘엔 진짜 부업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배달 음식 시장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조 333억 원으로 전년 동월(1조 2524억 원) 대비 62.4% 증가했다. 또 2020년 한 해 온라인 쇼핑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17조 3336억 원으로 2019년(9조 7328억 원)보다 78.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모바일 주문은 16조 5197억 원으로 전체의 96.4%를 차지했다. 전체 온라인을 이용한 음식서비스 거래 가운데 대부분이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 등 앱을 이용한 음식 주문이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몰려드는 배달 건수는 전업 라이더들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을 넘어선지 오래다.
#배달 플랫폼의 라이더 유치 경쟁에 노동자 안전은 뒷전
서울 홍대입구역 사거리를 음식배달 오토바이와 택시가 지나가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택팡 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앱은 쿠팡이츠다. 쿠팡이츠의 경우 배달원 등록 절차가 간단하며 운송수단 등록 시 차종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다. 반면 배민커넥트에 가입하려면 앱이 아닌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서를 제출한 뒤 통장 사본과 신분증을 스캔하고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시간제보험 이용자는 보험심사도 신청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적인 면에서 보면 배민커넥트가 더욱 안전하지만, 전업 라이더가 아닌 일반인이나 택시기사들 입장에서는 가입 장벽이 낮은 쿠팡이츠로 몰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달 대행 플랫폼에서는 보험기준 완화 등의 방법으로 라이더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상종합책임보험 가입이 의무였던 배달의민족마저도 최근 배달 노동자 입직 기준을 유상책임보험 가입으로 낮추는 등 노동자 안전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정책을 내놓았다. 낮은 허들을 이용해 급성장한 경쟁사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물론 쿠팡이츠에서도 택시기사의 배달 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쿠팡이츠에 따르면 노란색 번호판을 단 화물차와 택시 등 영업용 차량으로 배달을 하다 적발될 시에는 계정이 정지될 수 있다. 그러나 실시간 배달 모니터링은 운송수단이 아닌 휴대폰 GPS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말이다. 이에 대해 일요신문은 쿠팡 측에 실제 적발 사례와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해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노동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일자리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1차적으로 산업적 정비와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지난 3월 배달의민족 배달 노동자 입직 기준 변경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우아한청년들(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이 수수료 인상을 통한 라이더 확보가 아닌 보험기준 완화를 통한 라이더 확보를 택했다”며 “이들이 노동자 안전을 뒤로 한 채 더 많은 배달노동자를 모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