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는 1983년도에 석유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가격이다. 이라크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중반 배럴당 20달러선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1년 만에 무려 배 이상 올랐다.
이렇듯 국제 원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연일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예 몇몇 기업들은 ‘비상 경영태세’에 돌입한 상황. 그런가 하면 정유사, 대체에너지 회사 등에서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고유가가 매출신장과 직결되기 때문.
20여년 만에 최고 가격을 갱신하고 있는 고유가 시대에 울고 웃는 기업들은 어디일까.
지난 8일 오전, 항공사들은 일제히 경악하고 말았다. 한때 원유가격이 뉴욕 선물시장에서 53달러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날 거래는 52.4달러선에서 이뤄졌지만, 항공사들은 언제 치솟을 지 모르는 기름값에 안심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항공사들의 표정이 좋지 못한 이유는 유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항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 국내 항공사들에 추가되는 비용은 약 3백억원선.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 상반기 항공유 평균 유가는 45달러선이었다”며 “만약 평균 유가가 50달러 이상이 이어질 경우, 최소 1천5백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항공사로서는 유가 1달러 상승과 하락에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런 고유가는 회사 주가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9월 주식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항공사의 주가는 정반대였다. 대한항공의 주가는 1만7천5백50원(9월8일 종가기준)이었으나, 불과 한 달 만에 1만6천3백원(10월8일 종가기준)으로 떨어졌다.
아시아나도 마찬가지. 아시아나의 주가는 2천7백80원(9월8일 종가기준)에서 2천4백70원(10월8일 종가기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50~60 포인트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하락세는 큰 폭이다.
이렇다 보니 항공업계는 벌써부터 비상경영체제가 가동중이다. 대한항공 내에는 지난 7월부터 ‘연료관리팀’이라는 특별 부서까지 만들어 졌을 정도다. 이 부서에서는 국제 유가의 상승에 대응해 연료절감 방안 등 세부적인 플랜을 세우고 있다.
이 뿐 아니다.
대한항공은 자체적으로 만들어놓은 ‘유가위기 관리 대응 시나리오’ 중 최고 단계인 3단계에 돌입했다.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3단계는 유가가 최고점에 올랐을 때 선포되는 단계로, 사실상 초비상사태에 해당된다고 한다.
주요 내용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저장해 놓은 기름을 사용하고, 연료 낭비를 최소화하는 항로로 운항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북미 노선의 경우, 과거 시간이 좀 더 소요되도 영공 통과료가 싼 노선을 운항했다면, 이제는 시간이 단축되고 통과료를 더 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자칫 이는 항공사 간의 뜻하지 않은 불화를 자초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업게 관계자의 관측이다. 새롭게 분할하는 항공편의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단거리이면서도 운임료는 비싼, 일명 알짜배기 항공노선권에 대해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전자, 중공업계도 고유가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내수침체로 인해 수출 비중을 늘여 잡은 현대차는 고민하는 모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유가 시대에 투자 및 지출을 자제하고 유동성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나 현대중공업도 기름을 한 방울 이라도 아껴 쓰자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고유가가 오히려 반가운 기업들도 있다. 정유사, 에너지 절약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대체 에너지 회사 들이 바로 그곳이다. 석유정제사업체인 SK주식회사, S오일 등은 표정관리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들 정유사들이 유가상승분을 제품에 반영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마진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SK주식회사는 말 그대로 사상 최대의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SK(주)의 주가는 4만5천원(9월8일 종가기준)에서 5만6천9백원(10월 8일 기준)으로 폭등했다. SK의 수직상승은 각종 호재가 작용한 덕분이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실적 호전, 정유업 호황 국면 진입 등이 SK의 기분을 들뜨게 하고 있다.
S오일도 예외는 아니다. S오일은 최근 고유가로 인해 매출 이 급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주가가 5만1천원대(9월8일 종가기준)였으나, 5만8천6백원(10월8일 기준)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의 희비곡선도 고유가시대가 계속 이어질 경우 동반침몰은 불가피하다. 특히 우리의 경우 기름이 전혀 생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유가시대가 지속되면 물가폭등, 경제침체 등 악재가 이어져 모두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미 국제원유가는 50달러를 넘어 60달러선으로 육박하고 있다. 우리의 외환 중 절반 이상이 원유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처지이고 보면 향후 국내 금융시장에도 불안한 먹구름이 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