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여전히 KBO리그에 적응 중이다. 13일 기준 타율 0.214 7홈런 24안타 17타점을 기록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13일 현재 타율 0.214 7홈런 24안타 1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82를 기록 중인 추신수의 성적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희망을 갖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추신수도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의 흔적은 12일 사직 롯데전을 마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내용에 포함돼 있었다. 추신수는 “야구 선수로서 여기까지 오는 게 평탄치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텍사스 소속으로 2015년 개막 후 첫 6주 동안 타율이 채 1할도 안 된 적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을 떠올리며 극복하려 노력 중이다. 분명히 배트에 공이 잘 안 맞고 있다. 그래서 장점인 출루율을 높이고자 번트 시도까지 하는 것이다. 시즌 종료 때 분명 지금보다 훨씬 성적이 나아질 것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아직도 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부족하지만 팀이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어 정말 좋다.”
추신수의 기록은 압도적이진 않지만 효율적인 수치도 눈에 띈다. 볼넷이 24개(리그 공동 2위)로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고 있고, 몸에 맞는 볼(5개, 리그 공동 2위)까지 이겨내며 0.411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팀 성적이다. SSG 랜더스는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 속에서도 공동 2위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4월 2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추신수가 상대팀 타격코치인 김용달 코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타격 관련해서 다양한 질문을 건네고 조언을 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 ‘용달매직’으로 불리는 김용달 코치는 타격 이론에 관해선 정평이 나 있는 지도자이고, 김 코치는 미국에서 직접 추신수를 만난 적이 있는 터라 허물없는 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최근 고향 부산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수비 장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코치는 14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추신수와 주고받았던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신수가 메이저리그와 다른 KBO리그 투수들의 느린 구속과 투구시 템포 차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투구시 팔 스윙이 빠른 편이다. 구속도 10km/h 차이가 나지만 KBO리그 투수들은 포수한테 공을 받고 와인드업 한 후 공을 던지기까지의 시간이 길다. 신수는 그 부분에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 타석에 들어서면 바로 스윙과 연결돼야 하는데 볼이 느리게 오고, 투수의 템포에 타격 리듬을 맞추려 해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신수가 지난 롯데전에서 상대 투수인 앤더슨 프랑코의 빠른 공을 노려 치면서 홈런을 만들었다. 당시 프랑코 구속이 157km/h였다. 신수한테는 프랑코의 구속과 투구 템포가 메이저리그에서 상대했던 투수들과 흡사했고 그 결과 홈런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의 타격 리듬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김 코치는 대구에서 추신수와 대화를 나눌 때 고민 많은 후배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고 말한다.
“스트라이드 할 때 좀 더 길게 나가든가 아니면 타석에 설 때 앞쪽에서 치는 게 어떠하겠냐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의 다니엘 팔카도 시즌 중 합류해서 어려움을 겪은 게 지금 신수의 고민과 엇비슷했다. 빠른 공을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상대하다 구속이 느린 KBO리그 투수들을 상대하려면 자꾸 맞춰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타격폼에 변화를 주기는 어렵지 않나. 그래서 타석을 조금 더 앞에서 치라고 조언했는데 그 또한 익숙지 않다면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김 코치는 타자들이 타석을 앞으로 조정하면 투수와의 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선뜻 타석 위치를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 베이브 루스도 또 이치로도, KBO리그의 박재홍도 성적이 좋을 때 앞에서 치는 선수들이었다. 반응 속도가 빠른 추신수라면 타석 조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선 상대 투수들도 신수의 약점을 집중 공략할 것이다. 습관을 변화한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추신수가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했던 가장 큰 이유가 ‘타이밍’과 ‘스트라이크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추신수는 타격에 힘을 싣기보다는 가볍고 부드럽게 툭 치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루틴대로 툭툭 치면서 히팅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데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타격 시 자꾸 뭔가에 걸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사직 롯데전에서 1회 홈런이 나왔을 때도 가볍게 툭 친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그 타격은 메이저리그에서의 추신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스트라이크존도 미국과 한국의 갭이 클 것이다. 타격 타이밍과 스트라이크존에 고전하면서 추신수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보였는데 이 부분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종열 위원은 추신수가 안고 있는 심리적인 부담을 십분 공감한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수 아닌가. 지난 시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라 KBO리그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을 것이다. 그런 책임감이 추신수를 짓누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앞으로는 부담을 덜고 자신의 루틴대로 하나씩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정이야 힘들겠지만 이조차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추신수의 국내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송재우 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현재 추신수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직 KBO리그 투수들의 패턴을 다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타석에서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루킹 삼진도 많이 나온다. 조금씩 맞아 가면서 타격감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니 더 혼란스러워 하는 편이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투 스트라이크에선 자기 스윙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현재 추신수의 부진은 80%가 심리적인 부분이다. 공 보고 공을 쳐야 하는데 타석에서 자신의 타격폼이 어떤지, 자신의 어깨가 언제 열리는지 등등 고민을 너무 많이 한다. 150km/h가 넘는 건 잘 치는 반면에 145km/h 이하의 공은 여전히 어려워하거나 타격해도 당겨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선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건 추신수와 SSG 선수들과의 호흡이라고 말한다. 추신수가 적극적으로 선수들과 소통하고 어울리고 선수들도 추신수를 잘 따르고 있어 그런 모습들이 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김용달 코치는 야구 선배로서 추신수에게 애정 섞인 바람을 나타냈다.
“나는 신수의 KBO리그 생활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그 시기가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그가 다른 팀 선수라는 사실을 떠나 한국 야구를 위해, 또 신수 자신을 위해 KBO리그와의 동행이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