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재연 남양유업 비상 대책 위원장은 17일 대주주에게 요청했던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한 대주주의 답변을 공개했다. 정 위원장은 “현 이사회 내 대주주 일가인 지송죽, 홍진석 이사 2명은 등기이사에서 사임할 예정”이라며 “향후 전문성을 갖춘 사외 이사 확대를 이사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송죽 씨는 홍원식 회장의 모친이고, 홍진석 이사는 장남이다.
정 위원장은 또 “대주주 지분구조까지 새로운 남양으로 출범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라고 대주주측에서 알려왔다”며 “향후 비상 대책 위원회에서는 소비자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강도 높은 혁신을 위한 세부 조직 인선과 외부 자문단 구성 등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날 남양유업 비대위가 공개한 대주주 답변서에 홍원식 회장 거취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홍 회장은 지난 4일 ‘불가리스 사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녀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홍 회장이 이사회 보직도 포기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그는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사회는 회사의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다. 홍 회장은 앞으로도 남양유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동안 남양유업 이사회는 사실상 오너일가가 독점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남양유업 이사회는 총 6명으로, 4인의 사내이사와 2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는데, 사내이사는 홍 회장과 장남 홍진석 상무, 모친 지송죽 씨, 나머지 한 자리는 홍 회장에 앞서 사임한 이광범 전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8년간 남양유업에서 총무, 영업 등을 거친 정통 ‘남양맨’으로 홍 회장의 복심으로 통한다. 가족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소수 사외이사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견제능력이 상실된 남양유업 이사회는 그동안 회사 안팎에서 불거진 각종 비위,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홍 회장의 이사직 유지에 따라 남양유업 오너일가가 검토하고 있다는 지분 정리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홍원식 회장은 남양유업 최대주주로 절대적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홍 회장은 혼자 회사 지분 51.68%를 보유하고 있다. 홍 회장 아내 이운경 씨가 0.89%, 홍 회장의 형제 홍우식 씨와 홍명식 씨가 각각 0.77%, 0.45%, 손자 홍승의 씨가 증여를 통해 0.06%를 보유 중이다. 홍원식 회장의 지분이 장남, 차남에게 그대로 승계될 경우 이들은 경영권이 없어도 최대주주로서 회사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 4월 13일 ‘코로나19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 결과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남양유업은 심포지엄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77.78%의 저감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발표 이후 일부 마트 등에서 불가리스가 품절되고 남양유업 주가가 한때 폭등했지만,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발표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 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 및 고발 조치했다. 남양유업 세종공장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는 남양유업에 영업정지 2개월을 사전 통보했다.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는 지난 5월 3일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다음날인 4일 홍원식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회장직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지난 5월 7일 사태 수습을 위해 정재영 남양유업 세종공장장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비대위는 경영 쇄신안 마련과 함께 대주주에게 소유·경영 분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고 이날 답변서를 공개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