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작가 뱅크시가 2017년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 막힌 호텔’(Walled Off Hotel). 사진=호텔 홈페이지
첫 번째 접경지역 예술호텔은 영국의 유명 작가 뱅크시가 2017년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 막힌 호텔’(Walled Off Hotel)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불화를 넘어선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벽에 가로 막힌 호텔’에 이은 두 번째 접경지역 아트호텔이 국내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 문을 연다. 호텔은 DMZ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호텔 앞에 펼쳐진 청록색 명파해변은 객실에서 보면 ‘오션뷰’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은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어 실제로는 해변에서 40m 이상 걸어 나갈 수 없다. 그야말로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옛 고성명파DMZ비치하우스(왼)가 DMZ문화예술삼매경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호텔(오)로 재탄생했다. 사진=강원문화재단 제공
실향민과 관광객들이 머물던 폐숙박시설을 아트호텔로 바꾸는 이번 프로젝트는 고성군 평화지역 내 유휴공간을 예술과 접목해 새로운 문화예술관광 거점을 조성하는 ‘DMZ 문화예술 삼매경’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경기도, 인천광역시가 함께 접경지역의 기존 군사적 이미지를 예술을 통한 평화적 이미지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문화예술관광자원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했다.
건물이 높거나 크지는 않지만 공간마다 개성이 가득하다. 2층짜리 2개 건축물에 있던 8개의 객실은 평화·생태·미래를 주제로 꾸며졌다. 오묘초(미디어·설치), 류광록(설치), 스포라 스포라(설치·회화), 박경(설치·회화), 스튜디오 페이즈(설치·회화), 박진흥(회화), 신예진(설치), 홍지은(공예·설치) 등 8명의 예술가가 각각 맡아 인테리어부터 소품 하나까지 약 반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2020년 수림미술상 대상 수상자인 오묘초 작가가 맡은 ‘오묘초 룸: Weird tension’의 경우, 분단의 현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오묘초 작가의 방에서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다. 누워서만 볼 수 있는 TV, 반만 열리는 문 등이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스포라 스포라 팀은 고성을 방문했을 때 만난 무지개와 빛을 주제로 ‘스펙트룸’을 만들었다. 스튜디오 페이즈 팀은 인간과 물고기(육지 및 바다)·새(하늘)·검은색(밤)과 흰색(낮)의 5가지 요소를 모티브로 긴장의 장소 속 사색의 공간을 연출한 ‘테셀레이션’을 선보였다. 라이트 아트와 회화를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
스튜디오 페이즈 작가팀이 꾸민 아트룸 ‘테셀레이션’ 내부. 사진=강원문화재단 제공
객실 외 로비와 복도, 공용 공간 곳곳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종량 자개장인의 ‘신 몽유도원도-나전’, 주연의 설치작품 ‘Plamodel DMZ’, 김나리의 조각 ‘눈물’과 ‘검은 불꽃’, 해련의 회화 ‘미지의 숲2’, 전경선의 부조 ‘등대’, 신건우의 회화 ‘Fondazione Prada’ 시리즈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슬픈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모순을 동시에 안고 있는 아트호텔 리메이커에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도 준비되어 있다. 인근 통일전망대와 최북단 해수욕장인 명파해변, DMZ박물관 등, 안보관광차 방문하는 관람객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조성되었고, 강의와 토론도 가능하다.
총괄 기획을 맡은 홍경한 예술 감독은 “DMZ는 전세계 마지막 금단의 땅이자, 비극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소”라며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동란 이후 70년의 역사와 단단한 이념의 장벽 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혼돈의 실험실”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문화재단의 김필국 대표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아트호텔 ‘리메이커’가 고성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작은 미술관처럼 보이지만 아트호텔 리메이커는 실제 숙박시설로 운영될 예정이다. 공식 오픈일은 오는 20일 오후 2시이며 운영은 고성군이 맡게 된다. 5월 이후에는 누구나 무료 관람 및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