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서울시 산하 기관 주요 임원진 보직에 공석이 넘쳐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출자·출연한 기관 가운데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과 120콜재단 이사장은 아직 공석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사장과 대표이사를 비롯해 비상임감사와 비상임이사직이 비어 있다. 서울교통공사(5~8호선) 청소를 담당하는 자회사인 그린환경 사장도 공석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자리 2석이 공석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역시 이사장과 대표이사가 비었다.
서울연구원을 비롯해 서울시복지재단, 50플러스재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디지털재단 등도 기관장이 공석이다. 그 외에도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가 공석으로 남아 있는 기관 및 재단도 여럿 있다. 수장이 없는 곳은 현재 ‘대행체제’인 상태다.
그럼에도 오세훈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가 이 자리들을 채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보궐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에도 인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서울시 조례가 규정하는 서울시 출자·출연 기관 및 재단의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비율이 오세훈 시정 인사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고 주장했다.
4월 1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사진=서울시 제공
우선 서울시의회 의석 비율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의회 의석 수는 110석이다. 그 가운데 101석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 의석수는 7석에 불과하다. 나머지 2개 의석은 정의당과 민생당이 각각 1석씩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론 서울시 출자·출연 기관 및 재단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비율이다. ‘서울특별시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 제8조에 따르면 임원추천위원회는 서울시장 추천 2명, 시의회 추천 3명, 출자·출연 기관 이사회 추천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임원추천위원회 의결은 과반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오세훈 시장 추천 2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 추천위원 3명이 대립할 경우, 출자·출연 기관 이사회가 추천하는 2명의 위원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현재 출자·출연 기관 이사회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 임명된 이사들이 활동 중인 상황이다.
이 조항은 2015년 7월 30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뒤 생겼다. 기존 ‘서울특별시 투자·출연기관 평가 등에 관한 조례’를 폐지한 뒤 이 내용을 담은 새로운 조례를 제정했다. 당시 야권에선 “후임 시장에 대한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여권과 서울시 등은 ‘시장의 일방적인 시정 강행을 견제하려는 방안’이라고 반박했다.
2020년 7월 세상을 떠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때 일부 출자·출연 기관 및 재단에선 인사추천위원으로 시민단체 관계자를 추천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운동 대부’로 불리던 박 전 시장이었던 만큼, 그가 재임하던 당시 시민단체엔 많은 권한이 주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박 전 시장이 시민단체에 7111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한 사실을 접목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맥락”이라고 했다.
성중기 서울시의원이 제시한 ‘2014년 이후 서울시 5급 이상 개방형 직위·별정직 보좌관 및 산하기관 임원 현황’에 따르면 조사 대상 666명 중 168명이 시민단체 출신이거나 여당에 몸을 담았던 인사로 파악됐다. 25.23%에 달하는 비율이다. 27개 서울시 산하 기관 이사장과 사장·사외이사·감사 등 임원 463명 가운데선 16.2% 비율인 75명이었다. 이뿐 아니라 ‘6층 사람들’이라 불렸던 박 전 시장 별정직 보좌진 100명 중엔 55명이 시민단체와 여당을 거쳐 서울시에 몸담았다.
5월 17일 오세훈 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연구원장을 비롯해 산하단체 인사 절차를 진행 중”이라면서 “자리에 따라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임기가 1년 3개월밖에 되지 않는데 인사를 마냥 늦출 수는 없다”면서 “나름대로 신경 쓰고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에선 오 시장이 강력한 ‘인사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에 여전히 물음표를 달고 있는 상황이다. 오 시장이 가진 인사추천위원회 지분 한계 때문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임명하고 싶은 사람을 임명하고 싶어도 여당의 강력한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시장은 선거 때에도, 당선 이후에도 부동산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이 돼야 할 SH 수장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오 시장이 공약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서울시 산하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이런 기관들의 인사가 초반부터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오 시장이 시정을 하는 데 추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그는 “이런 상황을 모두 예측한 것은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박 전 시장이 재임하던 당시 바뀌었던 서울시 시스템이 신임 시장 취임 이후 행정 추진력을 약화하는 모양새가 됐다”면서 “서울시 산하 기관 주요 인사를 추진하는 것이 오 시장 임기 초반 성과를 판가름할 요소가 될 것이다. 오 시장이 ‘여권 견제’를 이겨내고 타개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