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온시스템 매각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경영권이 포함된 초대형 매물이라 누가 새 주인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한온시스템 홈페이지 캡처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온시스템 매각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에버코어는 최근 국내외 잠재 후보에 투자설명서(티저레터)를 발송했다. 매각 대상은 국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지분 50.5%,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그룹이 가진 19.49% 등 69.99%다.
한온시스템은 자동차 공조기(열관리) 전문 제조업체다. 열관리 기술은 내연기관과 달리 열이 발생하지 않는 전기차 등 미래자동차의 구동 방식에 필수요건으로 꼽힌다. 한온시스템은 일본 도요타의 자회사 ‘덴소’(DENSO Corporation)에 이어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로, 현대자동차,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올해 인수 7년 차에 접어든 한앤컴퍼니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한온시스템 매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 올해 들어 매각 작업에 대한 복선이 곳곳에서 읽혔다. 한온시스템은 지난 3월 인수금융 차환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형태의 지분 매각이 이뤄져도 차입금을 남겨둘 수 있는 구조를 짰다.
인수금융 대출 거래에선 차주가 최대주주 지위를 잃으면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게 한다. 반면 이번에 한앤컴퍼니가 짠 구조는 매각과정에서 지분 매각 선택권을 넓히고, 소수지분이 남아도 금융사들이 안정적으로 차입금을 상환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지분 일괄 매각과 쪼개 파는 상황 전부를 시야에 둔 것.
그 밖에 올해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가 특정 자문사에 매각주관사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형 자문사들이 물밑에서 잠재 원매자를 물색해왔던 점, 한국타이어의 한온시스템 우선 인수 권리가 오는 6월까지인 점도 매각이 추진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었다.
한국타이어의 한온시스템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경기 성남 본사. 사진=한국타이어 제공
한국타이어의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한온시스템은 타이어 사업에만 집중해온 한국타이어가 사업다각화를 위해 인수한 회사다. 인수 당시 그룹전략 총괄이었던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타이어 외 영역 진출 가능성을 봤다”며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지분(19.49%)을 매입하는 데 1조 1000억 원을 투입했다. 이 거래로 한국타이어의 차입금은 당시 일시적으로 2조 1000억 원까지 늘었고, 부채비율 84.7%, 순차입금의존도 22.5%를 기록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보수적인 재무기조를 유지해온 한국타이어 곳간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현재 한국타이어의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 원 수준으로 몸값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한온시스템을 인수하기엔 부족하다.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인다면 인수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국타이어가 인수 대신 손을 떼는 쪽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그룹의 사업형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는 올해 공식 출범하면서 기존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 발굴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매입 당시에도 재무 안정성이 휘청거렸던 한국타이어가 한앤컴퍼니의 지분 50%를 추가 보유하기 위해 더 큰 돈을 들이기보다 보유 지분 매각 후 자금을 새로 확보해 신사업 및 다른 M&A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타이어가 가진 한온시스템 지분가치는 2조 원으로 인수 당시보다 2배 이상 상승했다. 현 시가에서 매각할 경우 한국타이어는 약 1조 원의 수익을 낸다.
조현범 사장과 그의 형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 간 갈등도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인수를 추진하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칫 분쟁 상대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 한국타이어는 물론 한온시스템에도 최대 고객사인 현대자동차의 눈치를 봤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타이어와 한온시스템의 결합으로 인한 독립된 ‘대형 부품사’의 탄생은 현대차 입장에서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한국타이어는 한앤컴퍼니와 동반매도참여권도 갖고 있다. 그동안 1·2대 주주인 양사는 주주총회 등을 통해 한온시스템 운영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 이 때문에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도 양사가 같은 방향으로 협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지분 처리 방향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며 “결정되는 시점 또는 3개월 이내에 공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매각작업에서 관건은 10조 원까지 치솟은 몸값(시가총액)이다. 경영권과 미래차 기술력 프리미엄까지 더한 실제 매각가는 6조~7조 원 안팎이 거론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 또는 국내외 일부 대기업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통한다. 이들마저도 M&A 한 건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런 이유로 인수전에 참전할 국내 기업은 소수로 꼽히며 자동차 사업을 키워가고 있는 LG그룹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이번 인수전에 참여하려는 사모펀드들이 LG에 컨소시엄 구성과 관련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JV)을 세웠고,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을 꾸준히 높여가는 등 그룹 차원에서 자동차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M&A 전문가를 영입하며 투자 전문 지주회사로 도약 중인 (주)LG가 조력하면 인수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다만 시장 관심과 달리 LG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만도도 후보로 언급된다. 당초 한온시스템 전신인 한라공조는 만도기계와 미국 포드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라그룹은 한라공조 지분을 포드 산하 비스테온에 넘겼다. 한라그룹이 2008년 만도를 되찾았듯 한라 재건을 위해 한온시스템을 사들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한온시스템의 시가총액이 만도의 3배에 달한다는 점이 문제다.
해외에선 자체 배터리 생산 등 전장사업 확장 계획을 밝힌 폴크스바겐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 글로벌 사모펀드 등이 후보로 꼽힌다. 이들 역시 여러 투자자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지분을 인수하는 구조를 짜야만 인수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 나왔거나 나올 대형 매물들은 뚜렷한 유형자산이 없는 플랫폼 기업들인데, 한온시스템은 매년 수천억 원의 현금이 안정적으로 나오는데다 경영권까지 포함돼 있어 전통적으로 M&A 시장에서 선호하는 매물”이라며 “다만 거래 규모가 워낙 크다는 점이 문제인데, 대주주 쪽(한앤컴퍼니-한국타이어)이 지분을 쪼개 팔아 인수자 부담을 줄여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