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태생이란 무엇인가? ‘색채의 마술사’ 샤갈은 사랑의 화가답게 연인을 그리고 사랑을 그렸지만 그는 역시 구약에 뿌리를 둔 유대인이었다. 말년에 그는 다윗을 그리고, 에덴동산을 그리고, 아가서를 그리고 야곱을 그리고 모세를 그렸다. 그중에 내 시선을 끈 것은 파란 바탕이 인상적인 ‘불타는 나무 앞의 모세’였다.
저 볼품없이 그려진 불타는 나무는 바로 떨기나무일 것이었다. 모세가 미디안 사막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고 있었을 때 신의 음성을 들은 그 나무! 우리에게 떨기나무는 진달래, 개나리처럼 땅속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올라오는 작은 나무의 통칭이지만,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자라는 떨기나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가시나무다. 느티나무처럼 휴식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진달래처럼 화사하지도 않다. 그저 덤불로 엉켜 사는, 메마르고 거친 광야의 증거일 뿐이다. 제 눈물을 먹고 겨우 사는 그 떨기나무에 신이 임하신 것이다.
그 떨기나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도 주목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모세의 삶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나는 떨기나무가 당시 모세의 마음밭이었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힘은 존재감이라곤 전혀 없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다 거기서 자신의 신을 만난 것이었다고.
마음은 쉽게 왜곡된다. 마음은 많은 것을 얻었을 때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도, 정직할 때, 스스로 움직여 세상을 품는다. 그러니까 마음에서는 자기기만이 없는 정직이 중요하다. 우리는 거짓말쟁이와 살 수는 없다. 실수는 용서할 수 있고, 실패는 격려할 수 있어도 믿을 만하지 못한 사람과는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실패를 통해 배우지만 자기기만이나 자기방어를 통해서는 편견의 벽만 두터워진다.
나는 샤갈의 모세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불타는 나무도 존재감이 없고 모세도 존재감이 없는데 왜 나는 저 그림에 존재감을 싣는가?
모세는 체념과 절망으로 황폐해져 존재감이라고 전혀 없는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무력했던 그의 마음밭을 외면하지 않고 어린왕자가 노을을 지켜보듯이 고요하고 정직하게 지켜보다 거기서 자신의 주님을 만난 것이었다. “내 민족, 내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라”는 주의 음성을 들은 것이었다.
나는 민족이란 확대된 자아의 상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모세의 임무는 분명해졌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광야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가는 것! 올 한 해 당신의 마음밭에서 출발해야 할 당신의 가나안은 어디인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