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영업 현금흐름 다시 적자 전환
5월 12일(현지시간) 쿠팡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한 42억 달러(약 4조 7271억 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2억 9503만 달러(약 3300억 원)로 지난해 1분기(1억 535만 달러)의 3배 가까이 불어났다. 누적 적자는 약 5조 원에 이른다. 쿠팡은 적자 확대 배경으로 8700만 달러(약 979억 원) 규모의 일회성 주식보상비용, 투자·고용 확대로 인한 관리비 증가 등을 꼽았다. 이 중 상장에 따른 일회성 주식보상비용은 6600만 달러(약 743억 원)다. 앞서 3월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하지만 일회성 주식보상비용을 제외해도 적자규모는 2억 2900만 달러(약 2592억 원)에 달한다. 매출액 대비 당기순손실률은 마이너스(-) 5.4%로 전년 동기(-4.3%)보다 악화됐다. 영업손실은 더욱 확대됐다. 올해와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은 각각 2억 6731만 달러(약 3027억 원), 7363만 달러(약 834억 원)로 그 차이는 3.6배에 달한다. 매출액 증가 이상으로 적자폭이 커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영업 현금흐름이 적자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쿠팡은 1억 8335만 달러(약 2070억 원)의 영업활동 현금흐름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억 1472만 달러(약 3559억 원)의 흑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4억 9807만 달러(약 5632억 원)가 줄어든 셈이다. 올해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류에 “2020년 영업활동 현금흐름 흑자 주요 배경은 공급망의 규모 효율성과 제조업체의 직접 소싱으로 인한 판매 마진 비용 개선”이라며 “3억 달러 이상 손실을 낸 2019년보다 6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고 기재한 바 있다.
영업 현금흐름 적자 배경으로 재고자산 증가와 매입채무(외상값) 감소가 꼽힌다. 올해 1분기 재고자산 손실은 2억 944만 달러(약 2372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입채무는 1억 6653만 달러(약 1886억 원)로 집계됐다. 전년(3억 5327만 달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이를 종합하면, 재고로 쌓아둔 상품이 판매되지 않은 가운데 외상값을 갚으면서 실적이 악화된 셈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쿠팡의 매입채무 규모는 10억 6585만 달러(약 1조 2071억 원)로, 2019년(4억 1651만 달러)보다 155%나 늘었다”며 “코로나19 수혜로 매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매입채무까지 늘리면서 영업 현금흐름을 개선했고, 사업의 수익화 모델이 정착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 확대, 경쟁 과열화 등의 요인을 고려하면 수익화 모델 정착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쿠팡은 적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거라브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배경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적자는 주로 재고자산과 매입채무 때문에 발생했다. 가까운 미래에 정상화되길 바란다”고만 말할 뿐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앞서 3월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도 상장을 끝마친 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뉴스진행자가 3차례에 걸쳐 수익화 시점을 물을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면서 논란이 인 바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사업 모델에 대한 ‘리스크’ 끊이지 않아…
이런 가운데 쿠팡의 주력 사업 모델인 직매입·자체배송(로켓배송) 시스템에 대한 리스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 판매자(셀러)들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쿠팡이 60일 기준으로 판매 대금을 지급하면서 셀러들의 자금 운용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온라인몰의 상품 대금을 한 달 이내에 지급하는 ‘로켓정산법’이 발의될 정도다.
반면 네이버는 빠르게 대금을 정산해주고 수수료까지 낮추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중소사업자(SME)를 대상으로 배송 완료 다음 날 대금의 100%를 정산해주고 있다. 해당 시스템을 통해 올해 3월 말 기준 4개월 누적 정산 대금은 약 1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신규 SME에게는 수수료 1년을 면제해주고 있다. 쿠팡은 네이버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조 원 규모의 매입채무를 빠르게 정산해주면 유동성이 크게 악화돼 적자폭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칼날도 쿠팡을 겨누고 있다. 지난 5월 4일 참여연대 등은 쿠팡이 아이템위너 판매자들의 승자독식·출혈 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를 기만해 공정거래법·전자상거래법·약관규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실제 2019년 대기업인 LG생활건강은 납품가격 인하, 판촉비 강요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쿠팡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올해 7월쯤 과징금 부과와 고발 여부 등 제재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연대는 “쿠팡은 약관을 통해 판매자들에게 상표, 상호, 로고, 텍스트, 이미지 등 콘텐츠 자료에 대한 저작권 포기·양도를 요구하고 저작물을 무상으로 탈취했다”며 “지난해 7월 쿠팡의 불공정한 약관에 대해 공정위에 약관심사가 청구된 바 있으나, 1년 가까이 심사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광고비 경쟁 중심의 불공정 판매 구조를 해결하고자 가격과 배송, 응대 등 고객 경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우선 노출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을 향한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 3월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업자가 입점업체와 연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앞서 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