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은 올해 1분기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달성했다. 대우건설 푸르지오 홍보 이미지. 사진=대우건설 제공
이동걸 산업은행(산은) 회장은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대우건설 재매각과 관련해 “2년 정도를 거쳐 시기가 좋아지면 기업가치를 높여 판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동걸 회장이 약속했던 시기가 다가오면서 산업은행은 매각진용을 구체화했다. 지난 1월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대우건설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자 업계에서는 대우건설 매각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 4월 대우건설의 대표이사 인선도 매각이 본격화됐음을 짐작케 한다. 대우건설은 4월 23일 김형 사업부문 대표이사와 정항기 관리부문 대표이사의 각자대표 체제 전환을 밝혔다. 정항기 신임 대표는 산업은행 추천으로 2019년 9월 대우건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부임했다. 대우건설은 “매각이 본격화될 경우 관련 기능을 재무통인 정항기 CFO에 집중함으로써 매각 프로세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정항기 CFO는 일찌감치 매각을 위한 몸만들기에 나섰다. 자산 매각에 속도를 올리며 몸집을 줄이고 재무제표 수지를 개선하는 것. 대우건설은 2019년 말 춘천 파가니카컨트리클럽을 사모펀드에 매각했고, 지난 1월 서울 영등포구 소재 건물 대우로얄프라임을 매각했다. 또 인천 송도 쉐라톤그랜드인천호텔과 송도 IBS타워, 라오라오베이 골프리조트 등을 매물로 내놨다. 대우로얄프라임은 서울 내 초역세권에 위치한 만큼 매각 당시 안팎에서 ‘알짜 부동산’ 개발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대우건설의 견조한 실적도 매각에 긍정적이다. 대우건설은 올해 1분기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 하락한 1조 9000억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294억 원으로 같은 기간 89.7% 증가했다.
윤승현 하나금융투자 선임연구원은 리포트에서 “대우건설은 지난 4분기에 이어 1분기에도 실적 서프라이즈를 시현, 높은 이익 체력을 증명 중”이라며 “향후 분기에서도 국내외 양호한 수익성이 지속되는 한 매각에 대한 기대감은 꾸준히 높아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시기도 나쁘지 않다. 올해 1분기 국내 건설 수주액은 전년 대비 31.8% 증가한 36조 3325억 원을 기록했고, 같은 시기 해외 건설 수주액은 80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수주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71% 수준이지만, 산업설비 공사 수주 확대로 월별 수주액이 급증한 만큼 업계에서는 2분기 선전을 예상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 연구원은 “건설경기의 호조로 대우건설 매각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은 맞다”며 “다만 건설업이 경기를 타는 산업이다 보니 매각 가격을 크게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좋은 분위기에서도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 추진 과정에서 ‘밀실매각’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앞서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등 관리하던 기업들을 매각할 때마다 밀실매각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대우건설 노조)는 대우건설이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한다고 밝혔을 때부터 밀실매각 가능성을 우려했다.
노조는 지난 4월 27일 성명서를 통해 “지금 대우건설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타파할 진취적이면서도 직원들과 동고동락할 CEO”라며 “전리품만 챙기며 먼저 뛰어내릴 CEO가 필요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 추진 과정에서 ‘밀실매각’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17일에도 성명서를 내고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의 본분을 망각한 채 밀실매각을 통해 투기성 자본인 사모펀드에 대우건설을 매각해 또 다시 흑역사를 반복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대우건설 노조에 따르면 KDB인베스트먼트는 올해 3분기 중 인수자를 결정하고 연내 매각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노조는 현재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사모펀드들에 대해 ‘단순 투기자본’이라고 지적했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DS네트웍스, 한앤컴퍼니 등이 인수 의사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는 지난 18일에도 매각 관련 사실 확인을 위해 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에 공문을 보냈다. 대우건설 노조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가 사모펀드 두 곳과 접촉한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해 대우건설 구성원들에게 알려진 내용은 없다”며 “지속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매각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산업은행의 지난해 실적을 두고 분식회계 의혹도 제기됐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8조 1367억 원, 영업이익 558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2019년 8조 6518억 원보다 낮지만, 영업이익은 2019년 3640억 원을 웃돈다.
그러나 재고자산 문제는 대우건설의 회계투명성을 의심케 한다. 재무상태표상 대우건설의 재고자산 규모는 2019년 7294억 원에서 2020년 1조 2551억 원으로 5257억 원가량 급증했다. 대우건설이 밝힌 재고자산의 구성내역을 살펴보면 용지가 7826억 원으로 2019년 말 3873억 원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미완성공사도 2019년 말 1273억 원에서 2020년 3627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완성주택과 원자재 등 나머지 재고자산 내역은 모두 전년보다 줄었다.
건설사의 재고자산 용지는 사업화가 진행되지 못한 땅을 말한다. 이와 관련, 김영태 분식회계추방연대 대표는 “공사가 시작되고 회계처리가 적용되면 해당 토지는 더 이상 재고자산이 아니라 공사원가에 포함돼야 한다”며 “대우건설의 재고자산 증가는 2020년 뛰어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만들기 위해 거짓 매출을 만든 결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020년 사업보고서에서 5246억 원의 재고자산 용지를 기록했던 GS건설의 경우 지난 1분기 분기보고서에서 해당 내역이 모두 사라졌다. 반면 재고자산 가운데 주택건설계정이 2020년 말 3433억 원에서 1분기 8260억 원으로 증가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송도 크리스탈 오션자이의 토지를 잡아뒀던 것이 지난해 말 재고자산으로 잡혔고, 1분기에 분양하면서 수익인식이 시작돼 주택건설 계정으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7826억 원이던 재고자산 용지가 지난 1분기 1조 73억 원으로 증가했다.
재고자산과 관련, 회계투명성 지적에 대우건설 관계자는 “전체 주택사업 중에서 자체사업 비중을 높이고 있어 토지매입을 계속하고 있다”며 “착공이 되지 않은 부지는 모두 재고자산 용지에 속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부산 범일동 부지도 지난해 매입했고, 수원망포지구와 인천 루원시티 등 대형 사업이 많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