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피해자 국가 상대 80억원 청구 손해배상 소송 기자회견에서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피해자 13명은 2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84억 3000만 원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권력 비호 아래 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가 사람다운 삶을 박탈당했다”고 호소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부랑자 선도’를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 시키며 인권을 유린한,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국가폭력으로 꼽힌다. 10여 년간 수용 인원이 3만 8000명에 달했고, 수용자에 대한 학대와 성폭행 등이 지속적으로 자행됐다. 복지원이 공식 집계로만 500명 이상의 사람이 사망했다.
이날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복지원에서 사람다운 삶을 박탈당하고 폭력과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은 우리는 지워지지 않은 상처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며 “심각한 트라우마와 정신장애로 남아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소송을 준비하며 자필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겐 악몽과 같아 끝내 쓰지 못한 피해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87년 형제복지원 폐쇄로 피해자들이 빠져나왔을 당시에도 ‘국가의 보호’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는 수용자들을 위한 어떤 조치도 없이 달랑 토큰 한 개씩 던져줬다”며 “기술교육은 물론 기초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가족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수용자를 국가가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동원의 안창근 변호사는 소장 접수에 앞서 “원고들은 공무원들에게 수년간 감금과 인권탄압·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국가배상법을 근거로 국가에 책임을 묻고자 소송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소송에서 피고의 책임이 인정돼 원고들은 물론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도 배상의 길이 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3월 검찰총장이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 씨에 관해 신청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앞서 법원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박 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로 보고 횡령 혐의만을 인정했다. 박 씨는 지난 1989년 징역 2년 6월을 확정받아 출소한 뒤 2016년 6월 27일 사망했다. 현재 해당 사건은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우리 협의회 소속 피해자들은 끝없이 삐걱만 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피해자들은 이날 1차 소송을 제기한 뒤, 피해자들을 추가 모집해 2차 소송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