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가 또 다시 빈손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다음 시즌 대대적인 리빌딩이 예상되고 있다. 리그컵 결승 패배 이후 라커룸으로 향하는 손흥민의 뒷모습. 사진=토트넘 홋스퍼 트위터
토트넘의 마지막 트로피는 2007-2008시즌 리그컵 우승이다. 당시 중상위권에서 상위권 진입을 노리던 토트넘은 이때 우승으로 탄력을 받았다. 2010년대 들어서 4위권 이내에 들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체제에서는 4년 연속 4위 이내 성적을 기록하며 강팀 반열에 올라섰다. 2019년 6월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구단 역사를 새로 쓴 2019년 이후 토트넘은 부진에 빠졌다. 결국 구단을 강팀으로 성장시킨 포체티노 감독과 결별하고 ‘우승 청부사’ 조세 무리뉴 감독을 데려왔다. 무리뉴 감독과 동행도 실패로 끝났다. 2019-2020시즌 중반 지휘봉을 잡은 무리뉴 감독은 잔여 시즌을 수습한 이후 이번 시즌 우승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그 역시 경질되며 실패로 마무리됐다. 그는 팀을 리그컵 결승에 올려놨지만 결승전을 치러보기도 전에 경질됐다. 영국 현지에서는 라이언 메이슨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토트넘이 다음 시즌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이어지고 있다.
#새 감독 후보는?
선수단 리빌딩에 앞서 토트넘은 감독 선임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대행직을 맡고 있는 메이슨이 정식 감독으로 올라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잉글랜드 축구 무대에서 손흥민보다 불과 한 살 많은 1991년생 감독이 토트넘을 지휘할 확률은 높지 않다. 그가 토트넘 대행직을 맡은 이후 성적(리그컵 결승전 패배 포함 3승 3패)도 신통치 않다.
팀의 성공을 만들 새 감독을 찾아야 한다. 현지 언론에서 물망에 올랐던 인물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퇴단이 결정된 한지 플릭 감독이다. 그는 1년 전 뮌헨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독일 분데스리가를 포함해 DFB 포칼까지 거머쥐며 트레블(3관왕)을 달성한 인물이다.
어떤 구단이든 탐낼 만한 감독이기에 토트넘이 그를 데려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토트넘 이외에도 다수 팀이 ‘트레블 감독’인 그와 연결되고 있다. 뮌헨과 작별을 하며 플릭의 차기 행선지는 독일 국가대표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오는 6월 개막하는 유로 2020 대회를 마치고 요아힘 뢰브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슈퍼클럽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등도 플릭 감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릭 이외에 브랜든 로저스(레스터 시티), 에릭 텐 하그(아약스), 그래이엄 포터(브라이튼), 스콧 파커(풀럼) 등이 토트넘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들 모두 현재 맡고 있는 팀이 있다.
지난 20일 아스톤빌라전 패배 이후 중계 카메라는 토트넘 에이스 케인의 모습을 오랜 시간 담았다. 이날 경기는 이번 시즌 토트넘의 마지막 홈경기였다. 사진=연합뉴스
#해리 케인, 손흥민과 작별하나
현재 토트넘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는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다. 둘은 이번 시즌 팀의 공격을 대부분 책임졌다. 해리 케인은 토트넘을 넘어 리그 전체,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16년과 2017년 연속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이후로도 꾸준히 득점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시즌에는 도움 1위에도 오르며 찬스 메이킹에도 눈을 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흥민도 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공격수로 올라섰다. 36경기 17골 10도움으로 득점과 도움 모두 리그 4위에 올라 있다. 공격 포인트를 종합하면 리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케인은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토트넘 1군 무대에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335경기 220골을 기록했다. 2015년부터 토트넘에 합류한 손흥민도 279경기에서 107골을 넣었다. 이들이 넣은 골을 합치면 300골이 훌쩍 넘지만 들어 올린 트로피는 0개다.
실패가 반복되자 이들의 이적설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케인과 손흥민 각각 만 27세와 28세로 전성기에 접어든 나이기에 우승 트로피 획득을 위해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리그컵 결승 무대에서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자 그라운드에 앉아 눈물을 쏟기도 했다.
토트넘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팀을 성장시킨 동료들의 행보에 이들의 마음이 더욱 급해질 수 있다. 토트넘에서 DESK(델레 알리-에릭센-손흥민-케인) 라인으로 불리던 일원 중 한 명인 에릭센은 지난 시즌 도중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밀란으로 이적, 1년 6개월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손흥민과 함께 방한까지 하며 절친한 관계를 자랑했던 카일 워커도 토트넘을 떠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그는 번번이 우승에 실패하던 토트넘을 떠나 2017년 여름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 4시즌 동안 리그컵, FA컵, 리그 등에서 8회 우승을 달성했다. 커뮤니티 실드 트로피도 2회 들어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케인의 이적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리그 37라운드 경기에서 토트넘이 아스톤 빌라에 패하자 현지 중계 카메라는 오랜 시간 케인의 실망한 표정에 집중했다. 케인은 시장에 나온다면 2000억 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이적료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자원이다.
손흥민(오른쪽), 케인(왼쪽)과 함께 토트넘 전성기를 만들었던 에릭센(가운데)은 인터밀란으로 이적 후 이번 시즌 첫 빅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사진=연합뉴스
케인이 팔린다면 공격수 공백을 채우는 것이 급선무다. 세계 어느 구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케인의 존재감에 토트넘은 그간 이렇다 할 백업 공격수를 키워내지 못했다. 빈센트 얀센, 페르난도 요렌테 등이 팀을 거쳐 갔고 현재 카를로스 비니시우스는 주전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케인을 대체할 공격수로는 멤피스 데파이(리옹), 세르히오 아구에로(맨시티), 파울로 디발라(유벤투스), 도미닉 칼버트 르윈(에버튼)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팀을 떠나는 것이 확정된 아구에로를 제외하면 기존 구단과 계약이 남아 있기에 이적이 성사될지는 미지수.
공격 이외 포지션도 보강이 필요하다. 토트넘의 수비진은 토비 알더베이럴트를 제외하면 믿고 맡길 만한 자원이 없다. 지난해 여름 이적설이 불거진 김민재가 올 여름 다시 한 번 영입 물망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원에서도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손흥민이 책임지는 왼쪽과 달리 오른쪽 공격수도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다.
케인을 판매한다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토트넘 입장에서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유럽 축구 이적 시장은 연쇄 작용으로 작동돼 왔다. 토트넘이 큰돈을 갖게 됐다는 것을 다수의 팀들이 알게 된 이상, 선수를 판매하는 구단 입장에선 시장가보다 더 많은 금액을 토트넘으로부터 뜯어내려고 할 공산이 크다. 네이마르, 에당 아자르, 페르난도 토레스 등을 판매하며 큰돈을 벌었던 과거 바르셀로나, 첼시, 리버풀 등은 이들의 기량에 미치지 못하는 대체자를 영입하면서도 수익 못지않은 지출을 해야만 했다.
손흥민의 선택에도 눈길이 쏠린다. 손흥민은 지난해 9월부터 토트넘 구단과 재계약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새로운 에이전트와 손을 잡는 등 거취와 관련된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은 수개월째 들리지 않는다. 현재 계약기간은 오는 2023년 6월까지다. 이적을 원한다면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케인이 토트넘을 떠난다면 손흥민도 이적을 원할 수 있지만 토트넘이 핵심 선수 2명을 모두 떠나보내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중위권을 전전하던 토트넘은 2010년대 들어 전에 없던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그 사이 이들은 세계적 인기구단으로 성장했고 수용인원 약 6만 2000석에 달하는 대형 경기장도 건설했다. 하지만 이들의 손에는 단 한 개의 트로피도 없다. 토트넘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내 빅클럽으로 발돋움한 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