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매스컴을 통해 ‘8050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요약하자면, 80대 노부모가 50대 미혼 자녀의 생계를 뒷바라지하는 현상이다. 배경 중 하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가 꼽힌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즈음 히키코모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경쟁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젊은 층에 한정된 문제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경기침체와 함께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래를 잃어버린 청년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게 된 것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청년은 50대가, 부모 세대는 80대가 됐다. 이제 히키코모리는 고령화 단계에 진입해, 일본 사회의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의 인구수는 1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계된다. 더욱이 “그 절반을 훌쩍 넘는 61만 명이 중장년층(40~64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8050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이들 가정은 대부분 소액 연금생활에 의존하고 있어 가족 전체의 빈곤 문제로도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늙은 부모가 세상을 뜨자 ‘중년의 아이’가 궁핍 속에 목숨을 잃는 사건도 잇따른다. 죽음까지 내몰리는데도 어째서 이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걸까.
NHK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NHK스페셜’이 56세 히키코모리 남성의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다. 남성은 10년 전 부모가 사망한 뒤 홀로 집에 남겨졌다고 한다. 부모가 남긴 적금으로 근근이 살아왔지만, 가스와 수도가 끊겼고 마당은 쓰레기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남성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가고 있었다.
“병원에 가셔야죠. 이대로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지자체의 사회복지과 직원이 찾아올 때마다 남성은 한사코 지원을 거절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하겠다”는 얘기였다. 이윽고 남성은 직원이 방문해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게 됐다. 어느 날 직원이 경찰과 함께 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쓰레기더미에 파묻힌 채로 숨져 있던 남성을 발견한 것. 영양실조로 인한 ‘쇠약사’였다.
일본 전역에는 1400여 개의 히키코모리 지원센터가 있다. NHK가 관련 센터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은둔형 외톨이로 고독사할 위험군이 존재한다”고 답한 곳은 333개나 됐다. 또한 “지원에 나섰지만 고독사를 막지 못한 사례”도 72건이나 됐다. 지원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들이 외부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반대로 본인이 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해오는 경우는 15%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의 고령화로 인해 80대 노부모가 50대 미혼 자녀의 생계를 뒷바라지하는 ‘8050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진=NHK 스페셜 캡처
이런 사건도 있었다. 20년 이상 칩거해오던 야마모토 씨(가명·55)는 생계를 책임지던 86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궁지에 몰리게 됐다. 하지만 야마모토 씨는 누구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을 말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연금이 끊기는 것이 두려워서다. 어쩔 수 없이 야마모토 씨는 반년 간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부친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시청 직원이 자택을 방문해 사태가 발각됐다. 야마모토 씨는 사체유기 죄를 추궁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동시에 처음으로 복지지원센터와도 연결됐다.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하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야마모토 씨는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매번 ‘손이 느리다’며 핀잔받기 일쑤. 약삭빠른 후배는 하나씩 단계를 올라가는 반면, 자신은 허드렛일만 계속됐다. 자책감이 쌓여갔고 결국 퇴직하기에 이른다. 이후 직장을 전전했으나 차츰 재취업 때까지의 기간이 길어졌다. 서른이 됐을 땐 거품경제가 붕괴, 이른바 취업 빙하기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집안에 틀어박히게 됐다.
야마모토 씨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어머니의 지인이 놀러 와 ‘아들은 왜 일을 안 하냐’고 묻더라. 듣고 있던 나 자신조차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사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는데…. 이후 부모님은 주변에 내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나 역시 친척이나 이웃을 멀리하고 더욱 방에만 갇혀 지내게 됐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도와달라고 상담한다면 정말 도와줄지 의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왜 일을 안 하지?’라며 한심해하지 않을까. 자책감이 강해서 그런지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정신과 의사 사이토 료 씨는 “히키코모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는 당사자 스스로가 편견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례로 본인에 대해 ‘부모를 괴롭히는 기생충’이라며 혐오감을 갖기도 한다는 것. 근면함을 우선시하는 일본인의 경우 ‘일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사고방식이 강하다. 사이토 씨는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은 취업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감을 갖는 데 있다”고 조언했다.
쓰레기더미에 파묻힌 채 숨진 남성의 집. 사진=NHK 스페셜 캡처
특히 “8050 문제에 해당되는 사람은 사회보장 제도 이용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사이토 씨는 “곤궁해지면 생활보호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면서 “내 처지를 알리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삶의 영위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사망하는 은둔형 죽음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8050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2018년 일본 정부는 40세부터 64세까지 전국의 중년층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히키코모리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히키코모리가 된 계기로는 퇴직이 36.2%로 가장 많았으며, 인간관계 및 질병(각 21.3%) 등의 순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히키코모리의 고령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히키코모리 지원’ 방향은 취업이나 경제적 자립을 전제로 했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회에서 상처를 입고 칩거하게 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전제는 매우 어려운 목표”라고 지적한다. 히키코모리 경험자들로 구성된 ‘히키코모리UX회의’의 하야시 교코 대표이사는 “삶에 대한 의욕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를 사회 속에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취업이라는 목표가 달성된다 해도 고충이 해소되지 않아 다시 칩거하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