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최준필 기자
#여권, 축적된 정보 통해 프레임 씌우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에서는 ‘윤나땡(윤석열 전 총장이 나오면 땡큐)’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돼있는 만큼, 본선 링에 오르기도 전 주저앉힐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3월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본인 뜻에 의하든 아니면 주변 여건 때문이든 대선 출마로 가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윤 전 총장 출마 불가를 단언했다.
‘이거는 꽤 센데’라는 평가가 나온 ‘프레임’ 역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가 들고 나왔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5월 18일 자신의 SNS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기 메시지를 낸 윤 전 총장을 향해 “윤 전 총장이 5·18을 언급하니 젊은 시절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며 윤 전 총장을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빗댔다.
김 의원은 “전두환 장군은 12·12와 5·17 ‘2단계 쿠데타’를 거쳤다”며 “윤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조국만 도려내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하니, 당시만 해도 ‘역심’까지 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거치며 이명박 박근혜 세력의 ‘떠오르는 별’로 오르자 울산시장·월성 원전 사건 등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돌진했다. 명분을 축적한 뒤 ‘전역’해 본격적으로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전두환 씨가 육사 졸업 성적 126등을 기록한 것과 윤 전 총장이 9수 끝에 검사가 된 것도 비교하며 “둘 다 사람을 다스리는 재주가 있어 조직의 우두머리가 됐다”고 언급, 윤 전 총장 지휘력을 확 끌어내렸다.
김 의원은 “4년 전 박근혜 탄핵 무렵 검사 윤석열과 두 차례 술자리를 했는데 검사 후배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건 이들은 아마도 ‘윤석열 사단’일 것”이라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검찰의 의리, 그 실체가 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고 윤 전 총장을 ‘특정집단 보스’로 몰아세웠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5월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를 비판하면서 “검찰주의자가 민주주의를 말하다니 여름에 솜바지 입고 장에 가는 꼴”이라며 “윤석열 씨는 어쩐지 정치와 민주주의 이런 종목에는 안 어울리는 선수 같다. 차라리 UFC가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이미지”라고 비꼬았다. 더 나아가 “정치인으로 성공할 캐릭터는 아닌 듯 보이고 제2의 반기문이 될 공산이 크다”고 새가슴 프레임에 윤 전 총장을 가둬놨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5월 19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을 ‘칼잡이’ 프레임에 엮었다. 김 의원은 “수십 년 동안 범죄인이냐, 아니냐를 갈음하는 역할들을 해왔고 형법에 의해서 여러 사람들 구속하고 했다. 그래서 흔히 윤석열 총장을 칼잡이라고 한다”며 “이것이냐 저것이냐, 칼로 딱 자르는 일과 달리 국정은 국민 전체의 행복, 안전, 복지, 외교 안보, 이런 다양한 종합적인 국정을 수행하는 자리”라고 윤 전 총장의 국가지도자로서 능력을 평가 절하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거들고 나섰다. 이재명 지사는 5월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성공포럼’ 창립식에 참석해 윤 전 총장에 대해 “내가 포장지밖에 못 봐서 내용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며 빈털터리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위력이 겁나서 일부러 ‘윤나땡’이라는 방어막을 친다는 말도 있는데 그 반대가 정설”이라며 “윤 전 총장만큼은 자신 있다는 것이 당내 분위기다. 정치적 약점이 많아 다양한 네거티브 프레임을 씌울 수가 있다. 지금 나오는 프레임은 양념일 뿐이고 곧 메인요리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5월 19일 윤 전 총장이 집권세력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네거티브 공격이 드디어 시작됐다. 매에 장사가 없다. 네거티브의 총성이 울린 이상 윤석열 전 총장은 되도록 빨리 국민의힘에 들어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네거티브 전법은 윤 전 총장이 개인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귀국 20일 만에 백기 들고 항복한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허허벌판에서 혼자 화살 맞다가 쓰러지지 말고, 빨리 들어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보수야권 ‘다른 옵션’ 늘어나
제1야당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을 보수야권의 대권주자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당 내부 ‘검증론자’들은 범여권 못지않은 프레임을 윤 전 총장에게 씌우고 있다. 혹독한 ‘프레임 검증’을 거쳐야 대권후보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처음으로 윤 전 총장을 공개 비판했던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5월 17일 또다시 논평을 내며 윤 전 총장에 대한 ‘적폐수사 지휘관’ 프레임 공세를 이어갔다. 김 의원은 보수진영의 ‘윤석열 영입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지금 대선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은 윤 전 총장을 영입하면 정권교체는 간단히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런 단견으로 어찌 살아 움직이는 험악한 대선판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라며 윤석열 대세론에 선을 그었다.
특히 김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다시 한 번 “과물탄개(과실을 범했으면 즉시 고쳐야 함)의 전환과정을 거쳐야만 훌륭한 (대선)후보군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의원은 서울경찰청장 재직 때인 2013년 6월 윤 전 총장이 이끄는 수사팀에게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2심과 대법원(2015년 2월)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에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수사를 지휘했던 윤 전 총장은 ‘친검무죄, 반검유죄’인 측면은 없었는지, 자신할 수 있는가”라고 윤 전 총장을 비판한 바 있다.
‘윤석열 올인’ 분위기였던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프레임 테스트’가 시작된 이유는 ‘다른 옵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존 당 안팎 대권주자들(홍준표·유승민·원희룡) 외에 최재형 감사원장이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새로운 주자들을 영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과도 연결된다.
박근혜 정부에 몸을 담았던 국민의힘 한 현역의원은 “윤 전 총장이 과거를 갖고 있어서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 전 총장에 대해 설명을 바라는 부분에 대해 잘 대답하고 이해를 구하면 되는 것”이라며 “대답을 잘 정리해서 각종 프레임을 슬기롭게 넘어서야 본선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프레임 탈출은 정공법뿐?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주특기인 ‘공정과 정의·상식’ 이미지를 앞세우면서 눈치 보지 않는 특유의 솔직·담백·직선 화법으로 나가야 각종 네거티브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상처를 전혀 입지 않으려고 미꾸라지식으로 빠져나가기보다 잔 펀치는 여러 방 맞더라도 정공법을 구사해야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 효과에만 기대면서 ‘공주 프레임’에 시달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는 이미지’로 대권을 거머쥔 것도 정공법 본보기 사례로 제시된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세종시로의 중앙부처 이전 계획을 변경, 경제도시로 바꾸는 안을 국회에 상정시키자 박근혜 당시 의원은 2010년 6월 29일 국회 표결에 앞서 토론자로 연단에 섰다. 박 의원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행정중심도시 원안에 쐐기를 박았다.
당시 보수진영 내부, 특히 가장 표가 많은 수도권에서 행정도시는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박 의원도 이런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공법을 택했고 결국 재적의원 291명 중 275명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참석, 수정안 찬성은 105표에 그친 반면, 반대는 무려 164표(기권 6표)에 달했다. 박 의원의 승부수가 먹힌 것이다.
국민의힘 전직 3선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잘못한 것은 솔직히 부족해서 그랬다고 털어놓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면 된다”며 “정의와 공정, 상식이라는 그의 가치에 집중해나가야 네거티브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