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상암연구센터에서 열린 민주평화광장 출범식&정책토크쇼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매달 발표하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지사는 올해 1위로 출발했다. 23.4% 지지율로 윤석열 전 총장을 5.5%포인트(p) 앞섰다. 이낙연 전 대표는 13.6%였다. 2월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23.6%로 큰 변동이 없이 1위였다. 다만, 윤 전 총장은 15.5%로 조금 하락하며 이낙연 전 대표와 동률이었다. 대부분 여론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지사가 선두, 윤 전 총장과 이 전 대표가 뒤를 이었다.
‘1강 2중’ 구도는 3월 들어 요동쳤다.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 전 총장 지지율이 크게 오르면서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사면론’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전 달 대비 18.9%p 오르며 34.4%를 기록했다. 이재명 지사(21.4%)보다 13.0%p 앞서면서 1위로 치고 나갔다. 이낙연 전 대표는 11.9%로 3위였다. 4월 조사에서도 윤석열 전 총장(32.0%) 이재명 지사(23.8%) 이낙연 전 대표(9.0%) 순이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안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하면 된다).
이낙연 전 대표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차기 구도는 윤석열 전 총장과 이재명 지사, ‘2강’으로 압축됐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역대 대선에서 선거 10개월 전 지지율은 남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지지율 2위 안에 들었던 후보 중 한 명이 모두 청와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예외는 없었다.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전 총장은 세 확산에 나서며 각자 진영에서 대세론을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이 지사는 5월 12일 외곽조직 ‘민주평화광장’의 돛을 올린 데 이어, 5월 20일엔 민주당 의원들 모임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성공포럼)’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캠프 구성에 나섰다.
물밑에서 ‘대권 수업’에 한창인 윤 전 총장도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 5월 21일 탄생한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은 사실상 윤 전 총장 지지포럼이자 대선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 관계자는 “(윤 전 총장과는) 상관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포럼 출범을 두고 양측 간 긴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재명-윤석열 양자대결이 상수는 아니다. 이재명 지사와 여권 주류 친문 간 관계, 윤 전 총장 행선지에 따라 차기 레이스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신당 후보가 맞붙는 다자구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지사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한 정치권 인사는 “신당의 깃발을 세울 대선후보가 윤석열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점치기 힘든 대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는 여권에서 대권 고지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평가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과연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따라 붙었다. 친문 진영 비토 기류 때문이다. 최근 들어 친문 인사들은 이재명 지사를 견제하기 위한 ‘대선 경선 연기론’ 추진에 힘을 모으는 모양새다. 여기에 이 지사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경선 연기를 둘러싼 ‘이재명 vs 반이재명 전선’이 형성됐다.
이 지사를 지지하는 민주당 초선 의원은 “많은 논란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론과 후보 지지율이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승리할 수 있는 후보인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느냐”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연기를 밀어붙이는 등의 시도를 하면 당은 쪼개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의힘 좋은 일만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이 초선 의원은 “최악의 수단이겠지만 친문에서 자꾸 억지를 부리면 이 지사가 중대결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대결심’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자 그는 “지금 일부 친문 의원들은 공공연히 ‘이 지사가 이기면 정권 교체나 다름없다’면서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정권을 뺏기는 한이 있더라도 이 지사를 대선 후보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경선이 가능하겠느냐. (중대결심은) 탈당도 불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지율이 가장 높지만 주류 세력과 대립각에 서 있는 후보.’ 바로 이 점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의 민주당 탈당 가능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앞서의 이재명 지사 측 정치권 인사도 “당을 나오는 순간, 사지가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친문 쪽에서 판 자체를 이길 수 없는 구조로 만든다면, 이것은 곧 나가라는 소리 아니냐”면서 “승부사인 이 지사도 참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 (탈당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이라고 했다.
3월 4일 사퇴를 표명하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최준필 기자
친문계는 이 지사가 예선을 통과하더라도 과연 본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문 전재수 의원이 “경선을 연기했는데, 이 지사가 후보가 안 됐다면 (경선을) 연기 안 해도 후보가 안 되는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친문 중진 의원은 “아직 등판도 안 한 윤석열 전 총장과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데 무슨 대세론이냐”라고 반문하면서 “과연 이 지사가 대선에 나가 이길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향후 여권 차기 레이스가 이재명 지사를 축으로 친문과 반문 간 대결이 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지사가 과연 어느 정도 세를 모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친문계의 이탈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경선 연기를 포함한 룰 싸움은 그 전초전이 될 전망인데, 앞서 말했듯 이 지사가 탈당을 결심하면 내년 대선은 3자구도, 또는 그 이상으로 치러질 수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가야 할 길은 이 지사보다 더욱 험난하다.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윤 전 총장은 대권 수업에 몰두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단체, 언론인들을 만났다는 윤 전 총장 목격담이 속속 들렸다. 윤 전 총장은 사퇴 후 지지율이 30%대로 치솟으며 명실상부 보수 야권 유력 주자로 자리 잡았다. 여권 후보들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윤 전 총장은 대부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조차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비관론이 분출했다(관련기사 ‘프레임 정치’에 갇힌 윤석열, 박근혜의 ‘약속’을 기억하라?).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6월 무렵 만들어질 ‘새로운 정치세력’에 몸담은 뒤 차기 레이스에 뛰어든다는 계획을 세워놨다고 한다. 그 중심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있었다. 국민의힘 시절 윤 전 총장에 대해 호의적 평가를 내렸던 김 전 위원장과 손을 잡고 대권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국민의힘의 4·7 재보궐 선거 압승이다. 1야당 중심의 정권 교체론에 힘이 실렸고, 신당 추진은 지지부진해졌다. 동시에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여론이 확산됐다. 윤 전 총장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공교롭게도 김종인 전 위원장은 ‘플랜B’를, 국민의힘은 ‘자강론’을 꺼냈다.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부총리 등이 윤 전 총장 대안으로 거론됐다.
입지가 좁아지자 윤 전 총장은 대권 일정을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지지율만 놓고 보면 여전히 유력 주자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정치 경험과 소속 정당이 없다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윤 전 총장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신당뿐 아니라 기존 정당에도 합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당 참여를 유일한 선택지로 했던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도 열어놓았다는 발언으로 읽힌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윤 전 총장 거취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꾸려지는 지도부가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생긴 ‘윤석열 신드롬’에 걸맞은 정당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부합한다면 결심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늦어도 6월 말 안엔 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 전 총장은 ‘특혜’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후보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