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이다. 그리고 그 사유가 시선을 끈다.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더 이상 부부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함께 사는 일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서로 ‘성장’할 수 없어 이혼을 결정했다니, 그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진실이라면 멋있는 이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가끔씩 묻게 된다. 가족은 우리의 성장을 도와주는 힘일까, 아니면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짐일까. 살면서 가장 깊은 정을 나눈, 힘이 되는 공동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나’ 아닌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쑥불쑥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들어와, 판단하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 삶 전체를 통제하려들기까지 했다며 짐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짐이 힘이 되는 과정이 ‘성장’일 텐데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아 그 짐을 내려놓는 과정이 성장이기도 해서 때론 이혼을 하기도 하고, 때론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학교 따라 직장 따라 자연스레 분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는 한 부모 가족의 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53만 가구가 한 부모 가구라고 한다. 엄마 혹은 아빠와만 사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거기에 부모가 아닌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와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까지 합산해보면 ‘가족’이 달라지고 가족의 개념이 변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이 가족이었던 시대는 아스라이 사라져갔고 엄마, 아빠, 동생과 ‘나’로 이루어진 가족이 소위 가족의 이데아였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1인 가구. 1인가구가 900만을 넘어 1000만을 육박한다는 뉴스는 현대사회의 가족해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가족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대부분 홀로 보내게 된 사람들이거나 홀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홀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이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내 혹은 남편이라고 해서, 자식이라고 해서 ‘나’의 삶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 개인주의 사회의 도래인 것이다. 알려졌듯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다. 이기주의는 ‘나’의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지만 개인주의는 삶의 중심으로서의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서 출발하지만 ‘나’에 고립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믿을 수 있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리워하고 일군다. 그들은 안다. 비록 피를 나누지 않고 몸을 섞지 않아도 함께 살며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관계가 가족임을. 그것은 때로 친구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다. 물론 혈연일 수도 있다.
모두 다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는 가족이다.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타인의 질타와 연민 혹은 시선에 상처받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중심의 힘이 있어야 하지만 타인의 삶의 형태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타인의 삶을 침범해가는 것임을 인지케 하는 분위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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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