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는 최근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아트테이너들이 실력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유명한 작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한 작품당 10억 원 넘게 팔렸을 때보다 연예인 출신 작가가 한 작품을 1000만 원에 팔았다고 하는 기사가 더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구혜선, 솔비, 하정우 등 특정 아트테이너를 언급하며 ‘취미 미술 수준’ ‘21학번 정도’ ‘작품만 두고 평가할 정도는 안 된다’ 등의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작가의 발언이 보도되자 구혜선은 직접 “예술은 판단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며 “세상 만물과 더불어 모든 이의 인생이 예술로 표현될 수 있으면 마음먹은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응원한다”고 반박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작가의 발언에 대해 “작가님 작품도 후지다”며 “누가 그리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된 거다. 좋아하는 그림은 돈 주고 살 수도 있는 문제. 팔리는 작품이 꼭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팔리는 작품이 꼭 훌륭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표적인 아트테이너 조영남도 말을 얹었다. 조영남은 최근 ‘스포츠경향’ 인터뷰에서 “나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며 “작가님이 보기에 연예인들의 작품이 유치하다 생각한다면 잘 그리는 법을 알려 달라. 레슨비는 줄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지금 막 의욕을 갖고 그림 그리는 아이들에 대한 비평은 적절히 부탁한다. 캔버스 하나 사주지 못 할망정 기죽이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정우, ‘Work (5)’ , ‘Work (23)’. 사진=하정우 작품 홈페이지
아트테이너를 향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아무나 작가 하냐’는 입장과 ‘예술에 자격이 어디 있냐’는 입장이 맞선다. 일단 대중 여론은 후자에 더 많은 공감을 보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비전공자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미술계의 엘리트주의”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미술계는 정말 아트테이너를 미워할까. 논란이 불거진 직후 일요신문은 전공생 및 작가, 미술평론가 등 미술을 전업으로 하는 현직 종사자들을 찾아 아트테이너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작가라는 호칭이 붙은 지 8년 되었다는 A 씨는 “학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멀리는 빈센트 반 고흐, 가까이는 장 미쉘 바스키아도 미대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세계적인 화가다. 반 고흐와 바스키아가 미대 안 나왔다고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욕하는 미술인은 없다. 자신만의 세계관과 미학적 태도가 확고했기 때문”이라며 “결국엔 아이덴티티”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에서 누군가의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미술도 학문이다 보니 처음엔 대학생이 과제하듯 여기저기서 베껴다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연구를 반복하다보면 자신의 스타일이 생긴다. 모방에서 완전히 탈피해 자기 세계를 구축한 상태를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만약 내 그림에서 ‘거장 아무개’가 보인다면 그건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된 아트테이너의 작품들을 보면 어디서 본 듯한 거장의 느낌이 드러난다. 하정우의 작품에서는 바스키아의 화풍이, 하지원의 작품 대부분은 낙서화인데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 싸이 톰블리의 작품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에 대해 A 씨는 “표현법에서 개성을 갖지 못한다면 내용에서라도 독창성이라도 가져야 하는데 화가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내놓은 작품을 보면 90% 이상 주제가 같다. ‘내면의 치유’ ‘연예인이 아닌 인간 그대로의 나’ 정도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다. 작품만 단독으로 두고 봤을 때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하지원, ‘슈퍼카우3’. 사진=‘우행’ 전시 인스타그램
한편 회화과 졸업 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B 씨는 ‘캔버스 하나 사주지 못 할 망정 기죽이지 마라’는 조영남의 발언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B 씨는 일요신문과 만나 “캔버스 사주고 기 살려주는 건 지망생이나 아마추어에게나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본인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한 순간부터 작가 칭호를 받는다. 프로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문단에서 말하는 등단, 연예계로 치면 데뷔다. 그때부터 내 작품은 누구의 입에도 오를 수 있다. 크리틱(비평)은 작품의 검증 과정이자 작가의 숙명이다. 기를 죽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설가의 문체에 대한 평가,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유독 아트테이너의 작품에 대한 비평만 열등감으로 혹은 무례함으로 비춰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물론, 아트테이너의 작품 활동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공대를 졸업하고 15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C 씨는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그림으로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프로 작가 칭호를 붙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C 씨는 “연예인 화가와 일반 작가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장이 겹칠 일이 없다. 그들의 작품을 사는 분들은 팬 혹은 지인들이라고 알고 있다. 애초에 파이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들의 작품이 덜 팔린다고 내 작품이 더 팔리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미술의 추상성과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자신의 작품 활동에 내세워 비평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예술에는 정의도 없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라이선스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완성도와 작품성은 분명히 있다. 작가라면 자기만의 미학적 태도를 가지고 관객 또는 세상과 소통해야 하며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트테이너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이 작품보다 앞에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빼고 작품만을 봤을 때,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혹자는 ‘앤디 워홀 같은 아티스트도 그렇지 않냐’고 묻는데 애당초 그의 명성은 작품으로 얻어진 것이다. 순서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홍경한 평론가는 “미술시장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구매자의 취향과 욕망이 즉시 작동하는 곳이다. 혹평을 받은 작품이어도 구매자의 의사와 화랑의 능력에 따라 가격이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작품의 우수성은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 비평가들은 작품에 내재된 미술사적 선구성 및 미학적 가치, 사회적 역학성 등을 통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한다. 비평할 내용이 없는 작품은 아무래도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