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토이, 윤하, 이승철 등 국내 가수들의 곡이 중국 가수의 곡으로 뒤바뀌어 유튜브에 등록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현재까지 ‘중국인 아티스트’가 훔쳐간 것으로 파악된 국내 곡은 △아이유-아침눈물 △토이-좋은 사람 △윤하-기다리다 △이승철-서쪽 하늘 △브라운아이즈-벌써 일년 △프리스타일-Y △다비치-난 너에게 △god-길 등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저작권 이슈가 불거진 뒤 원 저작권자로 변경되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 다수에 중국인 아티스트 저작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중국의 음원 유통 레이블이 조직적으로 이 같은 행태를 벌여온 것에 주목한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저작권 훔치기’가 더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아이유의 ‘아침눈물’은 중국인 가수 루오샤오한(落小寒)&난링즈(南鈴子)의 ‘루오러이창한’(落了一場寒)으로 저작권이 등록됐다. 이 곡은 중국에서 2017년에 발매된 반면, 아이유의 ‘아침눈물’은 2009년 발매됐다.
다른 피해 가수들의 사례도 같았다. god의 ‘길’은 중국인 가수 첸원치엔(陳文謙)&첸신위(陳興瑜)의 ‘구오샨처’(過山車)로 유튜브에 저작권이 올라가 있다. ‘구오샨처’는 2015년 11월 이들이 발매한 앨범(別恨你愛過的人)에 수록된 곡이다. god의 원곡이 2001년에 발매됐던 만큼 14년이 지난 뒤에 돌연 중국 가수의 저작권이 원곡 가수에 우선한 셈이다.
god의 2001년도 곡 ‘길’ 역시 중국 가수들의 2015년 곡으로 유튜브에 올라왔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 외에도 이승철의 ‘서쪽 하늘’은 가수 샤오미미(小蜜蜜)의 노래 ‘쉐후이전시’(學會珍惜)로,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년’은 쑤이인(蘇一音)의 노래 ‘인시엔덩다이’(隱身等待) 등으로 등록돼 원곡에 우선해서 저작권이 명시돼 있는 상태다. 이들은 모두 유튜브에 ‘콘텐츠 아이디’(Content ID)를 선점한 뒤 한국 원곡의 저작권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유튜브에서 운영 중인 자동 저작권 관리 시스템인 콘텐츠 아이디는 유튜브만의 기준에 따라 자격이 부여된다. 유튜브 측은 이에 대해 “저작권 소유자가 콘텐츠 아이디를 얻기 위해서는 독점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해당 저작권 보호 콘텐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디가 부여되고 또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유튜브 커뮤니티에 자주 업로드되는 원본 자료의 상당 부분에 대한 독점권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에 이슈가 된 중국인 가수와 그들의 소속사는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뮤직 플랫폼과 스트리밍 사이트에 앨범을 등록해 이 같은 ‘음원 독점권’ 관련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유튜브 측에 콘텐츠 소유권을 주장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누려온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음원 배포·공급 및 저작권 분쟁을 담당하는 ‘빌리브 뮤직’(Believe Music)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유튜브에 음원을 게시해 왔다. 빌리브 뮤직은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레코드 레이블이다. 실제로 중국인 가수의 곡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곡들의 대다수에는 빌리브 뮤직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또 중국인 가수가 유튜브에 자신의 원곡으로 등록한 표절곡의 경우도 빌리브 뮤직의 모회사인 ‘빌리브 SAS’(Believe SAS)의 배포 및 공급으로 표시돼 있다.
빌리브 뮤직은 이렇게 사실상 저작권이 없는 곡들을 유튜브에 대량으로 배포·공급한 뒤, 이 곡을 영상에 사용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상대로 저작권을 주장하며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요구해 왔다는 의혹을 받은 회사이기도 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2018년부터 빌리브 뮤직의 이러한 행태를 지적해 왔고 2020년에는 미국 뉴욕시에 위치한 레이블 ‘라운드 힐 뮤직’으로부터 대규모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당하기도 했다. 거짓으로 음원을 등록한 중국 가수·그의 소속사와, 소유하지 않은 저작권을 주장해 수익을 요구하는 회사의 컬래버레이션이 된 셈이다.
윤하도 자신의 곡인 ‘기다리다’가 중국 가수의 곡으로 등록된 사실을 알고 조치에 나섰다. 사진=윤하 인스타스토리 캡처
이에 협회 측은 유튜브에 중국 음반사들이 취득한 저작인접권료의 정상 배분을 요구하고 이와 더불어 과거 사용료 소급도 요구할 방침을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저작권 실권리자들의 피해 증거 자료를 취합하는 한편, 유튜브 코리아에 콘텐츠 아이디 도용이 발생한 경위를 확인하고 중국 판권국과 협력해 문제의 중국 음반사 측에 취할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중국은 이른바 ‘황금방패 프로젝트’로 불리는 당의 지침에 따라 유튜브 사용이 사실상 금지돼 있는 국가다. 중국에서 인터넷은 국가 주권의 일부로 판단해 중국 공산당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접속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음원 사용 수익을 노려 조직적으로 K팝 저작권을 훔쳐 온 행태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네티즌들이 제보해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정도로 중국 레이블들이 치밀하게 움직였다”며 “저희 공식 계정에 올라온 ‘공식 원곡’에는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팬들이 올린 이른바 ‘팬 메이드’ 영상처럼 조회수는 많이 나오되 시청자들이 굳이 저작권까지 훑어보지 않는 영상에만 몰래 자기 이름을 올려놨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런 방식으로 K팝을 찾는 외국인 팬들에게 ‘추천 영상’으로 자신들의 ‘훔친 곡’을 띄워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을 만들어내고, 광고 수익도 고스란히 가져가는 식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전에는 이런 피해를 입으면 마땅한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소속사만 속앓이를 했는데 정부에서 나서준다니 다행”이라면서도 “다만 중국 내에는 수많은 엔터사가 짧은 기간에도 몇십, 몇백 개 씩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하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 빨리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해당 중국 회사가 폐업해버리면 피해 회복은 어려울 수 있다. 그보다 유튜브 측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좀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