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에 위치한 SEG 빌딩 전경. 사진=연합뉴스
선전 화창베이 전자상가에 위치한 SEG빌딩은 이 지역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지상 75층 지하 4층, 높이 356m로 지금은 이곳보다 높은 빌딩들이 속속 들어섰지만 1999년 완공될 때만 하더라도 ‘세기의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빌딩 소유주인 전자제품 업체 SEG사는 시가총액 73억 위안(1조 2700억 원)가량에 달하는 굴지의 회사다.
입주민들, 상인, 고객 등에 따르면 5월 18일 정오 무렵 빌딩이 갑자기 흔들렸다고 한다. 한 상인이 촬영한 장면을 살펴보면 실내 창문이 흔들렸고, 대피를 알리는 긴급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뛰어 다니는 장면도 보였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신고를 받은 선전소방서가 출동해 사태를 정리했다. 외부로부터의 출입은 원천 금지됐다. SEG빌딩 관계자는 “흔들린 것은 사실”이라면서 “원인은 지금 조사 중”이라고 했다. SEG 측은 “강력한 바람 때문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날 풍력은 그리 세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진 여부에 대해선 관측소가 “선전 일대에 지진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공안부서가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원인 파악에 나선 상태다.
다음 날인 5월 19일 SEG빌딩은 1~10층에서 일하는 상인들에 한해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5월 20일 지역의 한 신문기자는 빌딩을 직접 방문했다. 정문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요원이 있었고, 이를 통과하면 안에서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업무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기자는 11시 55분쯤 갑자기 건물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5월 18일 진동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탁자 위 컵에 들어 있던 물이 흔들린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철수하기로 했다. 바로 옆 여성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자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긴 하네요”라고 대답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기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건물을 나가려는 낌새가 없었다. 한 상인에게 “왜 도망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익숙해졌다”고 답했다. 다른 상인은 “(최근 건물 폐쇄로 인해)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 생업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건물 상인들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다. 건물이 흔들리는 위급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일을 계속해 나갔다.
12시 20분 2차 진동이 시작됐다. 기자는 정수기 물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는 어지러워졌고 속이 불편했다. 벽에 붙어봤더니 진동은 더욱 확실해졌다. 마침내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도 상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12시 55분 세 번째 흔들림이 시작돼서야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빌딩 관계자는 “오늘 또 몇 번 흔들렸는데, 안에서 일하는 것은 늘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
한 안전 전문가는 “SEG 빌딩은 6~7년 전에도 흔들려서 안정성 논란이 있었던 곳이다. 진동이 알려진 5월 18일보다 5일 앞선 13일에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고, 18일 이후에도 또 흔들렸다는 게 기자 체험으로 전해졌다”면서 “빈도가 갈수록 규칙적이고 시간이 앞당겨지면 위험도 점점 커진다. 서둘러 빌딩을 폐쇄한 뒤 대대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EG빌딩 흔들림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내부 상인들, 누리꾼들은 기초 공사 부실이 진동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화중과기대의 한 연구원이 2001년 발표한 ‘SEG 건설 프로젝트’ 석사 논문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연구원은 현재 선전의 현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논문에 따르면 SEG빌딩은 1996년 기초 건설이 시작됐다. 당시 공사 도면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사가 시작됐고, 이로 인해 여러 번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결국 졸속으로 서둘러 도면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9년 빌딩이 완공됐다는 것이다. 공사가 늦춰지고 불필요한 분쟁이 많아지다 보니 비용이 늘었고, 이로 인해 질 낮은 품질이 사용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보고서에 따르면 SEG빌딩의 흔들림은 결국 기초 품질 저하와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빌딩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 관계자는 “고층 빌딩은 미세한 떨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건물 안전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과 많은 언론들이 이슈를 끌기 위해 부실한 정보들을 쏟아내 공포를 야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물 폐쇄로 발생한 휴업 손실 보상 문제는 “당분간 그럴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안과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말이 말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화폐 채굴과 빌딩의 진동이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그중 하나다. 한 블로거는 “전자제품을 거래하는 화창베이 거리의 사장들이 컴퓨터를 총동원해 채굴을 하고 있다. 수많은 컴퓨터를 고속으로 돌린 게 SEG빌딩의 진동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화창베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가상화폐를 채굴하려면 24시간 컴퓨터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SEG빌딩 주변 상가는 밤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서 이를 일축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