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다큐멘터리 3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까지 무박 2일의 삶을 하루로 살며 새벽을 달리는 그들. 잠자는 몇 시간마저도 아까운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자영업자, 아이가 자는 밤 시간을 이용해 일하는 어머니 등 각양각색 사연을 안고 한밤을 달린다. 그들에게 동트기 직전 새벽은 가장 조급해지는 시간. 아침 7시를 넘기면 새벽 배송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해 뜨기 전 자기 인생의 태양을 밝히기 위해 어둠을 달리는 이들의 치열한 72시간을 기록했다.
내리쬐는 태양 빛이 힘을 잃어가는 오후 4시 30분, 물류센터 야간 조의 출근이 시작된다. 물류센터 사람들의 주된 업무는 ‘집품(픽킹)’과 ‘포장(팩킹)’이다. 일명 ‘픽킹맨’이라 불리는 집품팀이 주문 상품을 장바구니에 모으면 포장팀은 배송할 상자에 차곡차곡 깔끔하게 담아낸다.
고객의 주문대로 한 번에 15가구의 장을 대신 보는 ‘픽킹맨’이 물류센터 곳곳을 돌며 집품을 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분에서 30분. 하루 평균 2만 건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약 150명의 집품팀은 쉴 틈 없이 장바구니를 밀며 돌아다닌다.
포장은 단순히 물건을 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피킹 완료된 바구니에 물품과 송장이 담겨오면 주문목록과 실제로 바구니에 담긴 물품을 비교하여 빠진 물품은 없는지 찾아내야 한다. 또 물품을 가까이서 본 후 상태가 좋지 않은 식료품은 없는지도 확인한다. 냉동, 냉장, 실온 제품을 한 박스 안에 함께 담아 이른바 합포장을 하기 때문에 포장방법도 중요하다. 냉동상품에 채소나 과일이 맞닿아 포장되면 과채류가 냉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물류센터에서 새벽 배송을 위해 일하는 인원은 약 450명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밤낮이 바뀐 생활, 물류창고의 낮은 온도,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서 있어야 하는 체력적 한계 등의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래서 여기서는 약 한 달 정도를 수습 기간으로 두고 수습을 마친 직원들에게 패딩을 지급한다. 이곳에서의 패딩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약 한 달을 버텨낸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일종의 증표이다.
밤 11시가 되면 새벽 배송을 담당하는 냉동 탑차들이 하나둘씩 주차장에 들어온다. 기사 1명당 하루 평균 50건을 배송해야 하지만 주문이 많은 주말과 월요일 밤은 배송 건수도 늘어난다. 특히 물량이 늘어난 날은 출고도 늦어지기 때문에 물건이 나오는 대로 분류하고 빠르게 싣는 것이 관건. ‘아침 7시’라는 마감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기사들은 저마다의 노하우를 발휘한다. 쌓아둔 물품 상자를 배송하기 쉽도록 탑차에 구역을 나누어 싣고 이동시간을 줄이 기위해 세밀하게 배송 루트를 짜는 등 해뜨기 전 배송을 마치기 위한 시간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밤을 꼴딱 새워야 하는 일이지만 배송 기사들이 새벽 배송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배송 한 건당 800~900원 하는 일반 택배에 비해 약 3배가량 높은 배송 단가,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을 선호하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대부분이 낮 시간 다른 일을 하는 투잡 혹은 쓰리잡 기사들이다.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이틀 같은 하루를 사는 사람들. 분초를 다투며 뛰는 이들의 새벽은 누구보다 뜨겁고 치열하다.
배송 일을 오래 한 베테랑들도 배송이 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예측하기 힘든 문제가 생긴다. 고객이 적어준 현관의 비밀번호가 잘못돼서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을 때도 있고 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배송해야 할 물품이 한참 남은 차가 멈춰버릴 때도 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 마음 급한 상황에서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그들은 손에 땀을 쥔다.
고요한 새벽의 아파트에서는 적막을 깨고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새벽 배송을 하는 다른 업체의 배송 기사거나 우유나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친분은 없는 사이지만 새벽의 짧은 대면은 서로의 유대감을 쌓아 올린다. 촉박한 시간에도 엘리베이터에 순서를 양보하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 음료를 나눠주기도 하며 따뜻한 사람의 정을 나눈다. 가끔은 배송을 기다리던 고객을 만나기도한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온정에 그날 하루가 행복해진다.
이른 아침 누군가의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있을까. 깜깜한 밤, 환하게 빛나는 물류센터의 사람들과 불 꺼진 거리에서 당신의 아침을 향해 달려가는 배송 기사들의 3일을 담아보았다. 그들은 조금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택배를 기다릴 당신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태양을 향해 달린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