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4월 영국 방역당국이 북부 지역에 창궐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된 소떼를 소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2000년 3월 구제역이 발생한 후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가 1년 6개월 만인 이듬해 9월 다시 청정국 지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2002년 5월 구제역이 재발하자 다시 지위를 상실했으며, 그해 12월 다시 인정을 받았다. 구제역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일단 발병하면 최대한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응 방법으로는 가축 이동 제한,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가축 도살, 백신 접종, 해당 지역을 출입한 사람과 차량 등의 철저한 소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백신 접종은 최후의 선택으로써 사실상 나라마다 꺼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구제역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적절한 백신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백신을 사용할 경우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OIE 규정에 따르면 접종 후 1년 동안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만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소각하거나 매몰 처리할 경우에는 빠르면 3개월 후에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백신 접종을 한 나라의 축산품은 접종 후 1년간 수출이 금지되거나 제한을 받게 되므로 이에 따른 농가의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게 된다.
이밖에도 백신 접종을 한 가축들에게는 항체가 생기기 때문에 이 가축들이 구제역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일반적인 혈액 검사만으로는 감염된 가축과 백신을 접종한 가축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 수입국에 자칫 구제역이 전파될 위험이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50년대부터 살처분과 백신접종을 병행하다가 한동안 구제역이 잠잠해지자 90년대 들어서부터는 백신접종을 전면 중단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다시 발생하자 백신을 탄력적으로 접종하기 시작했다.
두 차례 뼈아픈 구제역 사태를 겪었던 영국의 경우에는 지난 2006년 상황, 지역, 기간 등을 규정한 ‘구제역 비상계획’에 따른 제한적 백신 사용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살처분이 기본 원칙이다. 단,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의 가축에 한해서만 살처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발생지로부터 반경 10㎞ 이내 가축 이동 금지 반경 10~20㎞ 이내 이동 제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백신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 때에는 백신 접종을 한 후 살처분하기도 했다. 대만은 살처분과 백신 접종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1997년 대규모 사태 이후부터는 필히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구제역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던 외국의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나라로는 영국을 빼놓을 수 없다. 1967년 10월 영국 중서부의 슈롭셔에서 한 농부가 다리를 절룩이는 돼지를 당국에 신고했다. 이 돼지는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후 구제역 바이러스는 인근 지역에 삽시간에 퍼져서 결국 총 44만 2000마리의 가축이 도살됐다. 당시 경제적 손실액은 3억 7000만 파운드(약 6500억 원)에 달했다.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구제역은 추측컨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수입된 감염된 양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구제역이 다시 창궐한 것은 2001년 2월이었다. 한 달간 총선이 연기됐을 정도로 심각했던 당시 사태로 인해 700여 만 마리의 양, 소, 돼지 등이 도살됐다. 구제역의 발단은 충분히 열처리가 되지 않은 감염된 사료를 먹은 돼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초기에 발생 지역으로부터 반경 3㎞ 이내의 가축을 살처분했지만 확산을 막지 못했고, 결국 장장 8개월 동안 수백 만 마리의 가축이 도살되는 등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살처분만으로는 확산을 막지 못하자 백신 사용을 허용했으며, 우제류 가축 매매 금지, 사람 및 차량의 철저한 소독 작업, 농부들이 참가하는 행사 전면 취소 등을 실시한 끝에 겨우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10월이 돼서야 가까스로 종결됐던 당시 사태는 80억 파운드(약 14조 원)의 경제 손실을 가져왔을 정도로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당시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진 것은 정부의 늑장 대응 탓이었다. 처음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부터 이동 금지, 차량 및 사람에 대한 소독 등 구체적인 대응을 실시하기까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하지만 2007년 구제역은 또 다시 발생했다. 이번에는 서레이 노르망디 농장 두 곳에서 소들이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시작으로 120여 마리의 가축들이 매몰됐고, 해당 지역은 격리 조치됐다. 전국적으로 모두 11만 1000곳의 농장에서 가축 이동이 금지됐으며 감염 농장 반경 3㎞를 보호구역으로, 그리고 10㎞를 감시구역으로 설정해서 철저한 방역을 실시했다.
감염 경로를 추적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견된 바이러스는 ‘01 BFS67-like’ 종으로 1967년 이후 격리되어 있던 종이었기 때문에 실제 동물 개체에서는 거의 발견될 확률이 없었다. 이에 같은 종의 바이러스를 취급하고 있던 인근의 연구소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4㎞ 떨어진 곳에 있던 구제역 백신을 연구 및 생산하는 ‘머리얼 애니멀 헬스 주식회사’에서 유출된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 당시 밸브에서 누수가 발생해 바이러스가 배수 시설을 통해 외부로 흘러 나갔고, 인근을 오가던 건설 차량이 바퀴에 진흙을 묻혀 인근 농가로 옮겼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동안 논란이 됐었다.
1929년을 마지막으로 70년 가까이 잠잠했다가 1997년 한 번에 무너진 대만의 경우는 어떨까. 돼지 한 마리의 감염으로 시작된 구제역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으며, 결국 385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한 뒤에야 가까스로 종결됐다. 경제적 손실은 무려 69억 달러(약 7조 70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확산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매일 200~300곳의 농가에서 구제역 신고가 새로 접수됐고, 가장 심한 기간에는 군부대까지 동원되어 매일 20만 마리의 돼지가 무더기로 도살되기도 했다. 도살 방법은 주로 감전시킨 후 매몰하거나 소각하는 방식이 사용됐으며, 4월에는 산업용 소각로가 거의 하루 종일 돌아갈 정도로 사체 처리가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밖에도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3000만 개의 백신을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확산을 막지 못했던 대만 정부는 결국 추가로 1000만 개를 추가 접종한 끝에야 간신히 사태를 종결시킬 수 있었다. 감염 경로로 추정됐던 것은 당시 대부분의 돼지 농가들이 돼지 밀수로 유명한 항구도시에 인접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근처에 불법 돼지 도살장이 즐비했었다는 점 등이었다. 제대로 된 검역을 거치지 않고 밀반입된 돼지들이 바이러스의 근원지였을 것으로 추정됐던 것.
이처럼 유독 대만에서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좁은 우리 안에 돼지를 밀도 높게 몰아넣어 키우는 사육 방식이 문제였다. 당시 대만 농가에서는 평균 1.6㎢당 6500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고온 살균처리 되지 않은 사료를 사용했던 것도 구제역 확산에 기여했다. 일부 농민들이 의도적으로 돼지들에게 구제역을 감염시키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문제였다. 당시 살처분된 돼지에 대해 정부가 지불하는 보상금이 가축시장에서의 돼지 시가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구제역 사태 발생 후 대만의 축산업은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다. 구제역 발생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주된 돼지고기 수입국이었던 대만은 세계 15대 돼지 생산 국가였지만 지금은 백신 접종으로 인해 수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일본 역시 지난해 발생한 구제역으로 혼쭐이 났다. 미야자키현에서 10년 만에 구제역이 재발하자 일본 전역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0년에 발생했던 구제역은 세 달만에 종결됐으며 소 700마리가 도살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발생한 구제역은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았다. 농가 1086곳에서 33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들이 살처분됐으며, 이는 전체 소와 돼지의 20%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손실도 28억 달러(약 3조 1500억 원)에 달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일본 최고급 와규 가운데 하나인 ‘미야자키’우까지 구제역으로 위협을 받았다는 데 있었다. 씨수소 55마리 중 6마리를 제외한 49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이러다가 미야자키우의 씨가 마르는 것 아니냐”란 우려까지 나왔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발생 4개월 만에 구제역 사태를 완전히 종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가축 이동을 철저히 제한한 덕분이었다. 또한 살처분된 가축이 21만 마리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으며, 접종된 가축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29년 이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청정국이다. 가장 심각했던 때는 1914년 미시간에서 발생한 구제역이었다. 당시 미 전역에서 소, 돼지, 양 등 모두 17만 마리가 감염됐다. 1924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구제역 때에는 10만 9000마리의 가축이 도살됐으며, 1929년 캘리포니아주 몬테벨로에서 돼지를 통해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3600마리를 도살한 후 한 달을 넘기지 않고 성공적으로 종결됐다.
구제역 상습 발생국인 까닭에 백신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는 중국은 어떨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구제역을 인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구제역을 정식 신고한 첫 번째 사례는 2005년 4월 산둥성과 장쑤성에서 발생한 구제역 때였다. 그 후로도 끊임없이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고, 농가들이 제대로 신고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신고한 횟수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감염식품 먹어도 위산에 소멸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구제역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구제역에 감염된 사례는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50도 이상에서 익혀 먹을 경우 완전히 파괴되어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위산에 약하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대부분 위에서 소멸된다.
매우 드문 경우긴 하지만 과거 사람이 구제역에 감염된 사례는 있었다. 세계동물보건기구에 따르면 “사람에게 전염된 몇몇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고 했다.
가령 1884년 구제역으로 영국에서 어린이 두 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으며, 당시 200명 정도가 구제역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들이 구제역에 전염된 까닭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유를 마신 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66년에도 영국에서 사람이 구제역에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증상은 발열, 구토, 입 주위의 붉은 궤양이 나타나는 등 감기와 비슷했으며, 얼마 후 자연 치유되었다.
2001년 <영국의학저널>은 “구제역은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지만 종간 장벽을 뛰어넘긴 어렵기 때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발표했다. 사람에게 감염될 수는 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극히 미미한 경우이긴 하지만 고기를 삼키기 전에 입안에서 감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 입안에 궤양이 있으면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