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번째 체외수정 만에 출산에 성공한 노다 세이코 의원. 그러나 미국까지 가 체외수정을 한건 국정소홀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
그간 14번이나 체외수정에 실패하며 2004년 <나는 낳고 싶어>란 책까지 내며 틈만 나면 출산 희망을 드러낸 노다 의원. 이번에 성공한 체외수정은 2010년 5월 미국에 가서 시술받았다. 노다 의원은 “난자를 기증받아 자신보다 7세 연하의 애인이자 현재 사실혼 관계에 있는 식당 경영자의 정자와 수정시켜 임신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편은 현재 오사카에서 불고기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데 2008년부터 교제를 해왔다고 전해진다. 일본 언론은 ‘노다 의원이 피부색은 관계없다. 남편과 혈액형은 맞췄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주간지 <여성세븐>은 난자를 기증한 백인 여성이 “줄리아 로버츠를 닮았다”는 노다 의원의 말을 실었다. 이 출산에 대해 ‘법률상 미혼상태인데 아이를 낳아서 되겠느냐’는 의견과 동시에 ‘의원 일을 내팽개치고 미국까지 가서 체외수정을 한 건 국정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웹뉴스 <Jcast> 보도에 따르면 노다 의원은 TV 와이드 쇼에 출연해 “일본에 난자제공, 체외수정 등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현황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일본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해온 노다 의원이더라도 ‘의원 특권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1월 출산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출산휴가를 써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국회의원 월급 129만 7000엔(약 1700만 원)과 월 약 100만 엔(약 1300만 원) 상당의 ‘문서통신교통체재비(공적 업무를 위해 쓰는 제반 경비)’ 등을 이미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다 의원은 1987년 26세에 기후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며 이름을 알렸다. 어린 나이에 정치 경험이 전무한 그녀가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기후현 출신 거물 정치가이자 노다 의원의 할아버지인 노다 우이치의 후광 덕택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노다 우이치 전 의원은 대장성 차관, 건설상을 역임한 관료이자 자민당 거물급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79년 은퇴 후에도 1997년 93세로 숨지기까지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다 세이코는 2005년 우정 민영화를 외치던 당시 고이즈미 총리에 반기를 들고 기후현에서 무소속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여성 라이벌 의원 사토 유카리와 접전을 펼치며 승리했다.
이때 노다 의원의 학창시절 비행을 담은 괴문서가 떠돌아 곤욕을 치렀다. 그녀가 미국 미시간주 존스빌 고등학교로 유학가기 전 도쿄의 유명한 사립여고 ‘후타바 가쿠엔’을 자퇴했는데, 실상 동급생들을 괴롭혀 강제퇴학당했다는 소문이다.
괴문서에는 노다 의원이 ‘유부 초밥 싸기’라는 방식으로 이지메를 주도했다고 쓰여 있었는데, 상대방의 치마 자락을 머리 위까지 걷어 올려 정수리에서 묶어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노다 의원의 성질을 한 번 건드리면 학교생활 내내 유부 초밥 싸기를 당해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유부 초밥 싸기 상태에서 팬티를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학부모회에서 항의가 빗발치자 노다 의원의 할아버지 눈치를 보던 학교는 교칙에 금지되어 있던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했다는 이유로 노다 의원에게 퇴학 권고를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노다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약력에는 일본국제교류재단의 파견학생장학금 시험에 합격해서 후타바 가쿠엔을 중퇴하고 미국에 간 것으로 되어 있다.
2006년엔 우정 민영화에 반대를 하던 그녀가 갑자기 노선을 바꿔 자민당으로 복당해 ‘변절자’란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7년에 다시금 라이벌 사토 유카리와 기후현 중의원 선거에 누가 자민당 후보로 나올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는데 8월에 사무실에 돌연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전 선거 연설에서 노다 의원이 자주 “비겁한 행동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해 처음에는 사토 유카리가 방화 의심을 받았다. 그런데 <주간겐다이>의 보도에서는 당시 불에 탄 것이 모두 할아버지 때부터 근무해 오던 경리 비서의 정치자금 관련 서류라는 점에서 결국 자작극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됐다. 범인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사생활 추문도 불거졌다. 2001년 사실혼 관계라고 밝힌 연하의 자민당 의원 쓰루호 요스케와는 2006년 이혼했다고 밝혔는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06년 ‘나이스 커플 대상’(고단샤가 주최하는 부부의 날 기념상)까지 받은 둘은 처음에 헤어진 이유에 대해 함구하다가 결국 쓰루호 의원 측에서 “2002년 1월 결혼 축하파티에서 받은 축의금 수입 900만 엔(약 1억 2000만 원) 모두 (노다 의원이) 가져갔다. 심지어 노다 의원은 45세 생일 때 임신을 못하는 건 바로 너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라며 결혼생활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명 ‘곤약젤리’ 사건도 유명해 노다 의원의 별명은 ‘곤약녀’일 정도. 노다 의원이 소비자행정담당상으로 일하던 2008년에는 만 2세, 7세 어린이 등이 곤약젤리 식품을 먹다 질식사한 사건이 잇따랐다. 노다 의원은 제품을 생산한 만난라이프제과에 대한 곤약젤리 제조 및 판매금지를 농림수산성에 요청했고, 2개월 정도 판매 중지 처분을 받았다. 문제는 동종업계 최대 기업 만난라이프제과의 곤약젤리가 판매 중지되자 노다 의원의 선거구인 기후현에 본사를 둔 나니와제과 곤약의 매출이 늘어난 것. 일본 네티즌은 “나니와제과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질식사를 가장 많이 한 떡도 규제하라”며 강하게 노다 의원을 비꼬았다.
이런 끊임없는 논란에도 노다 의원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역 국회의원이고 장관까지 지낸 이가 유산을 하며 몰래 숨죽여 울고 결국 파경까지 맞이하게 된 모습에 일반 유권자들이 감동을 한다는 것. 실제 노다 의원의 저서엔 주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보단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담은 자서전류를 펴내왔다.
지난해 5월 일본 BS방송에 출연한 노다 의원은 “자민당이 위기에 빠진 만큼 여성인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며 오는 2012년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나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