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 부자 비서로 10여 년 ‘오너 자금 관리’ 의심…물산 대표직 맡아 채무부담 속 그룹사 자산 떠안아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와 복합 쇼핑몰인 롯데월드몰의 시행운영사다. 1982년 설립된 후 잠실 개발 사업에 주력하며 롯데의 핵심 자산을 관리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롯데물산은 지난 4월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롯데월드타워몰 지분을 전량 매입하면서 단일 소유권을 획득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롯데월드타워몰의 미래 자산가치를 기반으로 자산관리 전문회사로 성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존 롯데월드타워몰은 롯데물산, 롯데쇼핑, 호텔롯데 3개사가 소유권 지분을 각각 75%, 15%, 10%씩 투자해 운영했다. 롯데물산은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월드타워 소유권과 토지, 부동산 지분 일체를 각각 8313억 원, 5542억 원에 매입했다. 이를 통해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의 숨통이 틔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히 실적이 부진했던 롯데쇼핑이 이베이코리아 인수 등을 위해 계열사에 도움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123층 555m를 자랑하는 롯데월드타워는 롯데의 숙명이자 신격호 명예회장의 역작으로 꼽힌다. 롯데물산은 초고층 빌딩 및 복합쇼핑몰 개발과 운영을 주요 사업으로 이행하면서 롯데의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자사 소유로 만들었다.
올 초에는 롯데자산개발로부터 전국에 있는 롯데몰 8곳의 관리 전권과 공유오피스 사업을 77억 원에 넘겨받기도 했다. 롯데물산이 보유한 자산과 관리사업 등의 거래 상대방이 대부분 그룹 계열사로, 이들로부터 임대료와 관리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롯데물산의 재무상황은 녹록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물산은 지난해 말 별도기준 총차입금이 2조 194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금성 자산은 8702억 원으로 전년 대비 늘어났지만 채무 부담이 가중된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4월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로부터 총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자산 매입을 결정하면서 보유 현금 전액을 투입하고 추가 차입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 등 일각에선 롯데물산이 오는 6월 최대 4000억 원의 대규모 공모채를 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동빈 회장은 롯데물산 대표 자리에 자신의 최측근을 앉혔다. 류제돈 대표다. 류제돈 대표는 지난해 8월 그룹 인사를 통해 롯데지주 비서팀장에서 롯데물산 대표로 내정됐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결단 하에 단행된 인사에서 1950~1960년대 초반이 물러나는 세대교체가 이뤄졌지만 류제돈 대표는 칼바람을 피했다.
그는 10년 이상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보필하며 롯데 자산을 관리하고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신격호 명예회장에 이어 롯데 정책본부 비서실에서 신동빈 회장의 비서 업무를 총괄했던 2017년에는 신격호 명예회장에 대한 주식 고가 매도(배임)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을 통해 류제돈 대표는 매년 200억 원 정도의 신동빈 회장 자금을 관리한 사실이 밝혀졌다. 즉, 단순히 총수를 보좌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는 신격호 명예회장 자금과 관련한 검찰 압박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롯데물산 관계자는 “비서실에서 총수의 자금을 관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류제돈 대표가 신씨 오너들의 개인 자금 관리에 연루됐을 것이란 의심은 오랜 기간 지속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기를 거쳐 류제돈 대표가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롯데 계열사에서 자산 관리를 담당하는 롯데물산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 이곳에 비서실 출신을 앉혔다는 건 신동빈 회장의 남다른 애정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며 “롯데 총수의 비서를 10년 이상 해왔다는 건 최측근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비서실 체제를 유독 중요시하는 롯데의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재계에 따르면 롯데의 비서 역할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자금을 모두 관리하고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총수 개인의 재산을 담당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6월 검찰은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이일민 전무의 처제 집에서 30억 원이 넘는 현금과 금전출납부로 보이는 장부, 문건을 찾아냈다. 일반 가정집에서 발견되기 힘든 것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
당시 이일민 전무가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명예회장의 집무실 비밀금고에서 빼낸 돈과 장부,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은 김성회 전 비서실장과 24년을 함께했다. 김 전 실장은 '영원한 신격호 비서'라는 별칭까지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류제돈 대표가 여전히 롯데의 금고지기 역할을 수행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비롯됐다.
최근 롯데그룹 인사기조는 1960년대 후반 출생 인물을 등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롯데지주에 있던 1960년생 임원 등은 계열사 등으로 이동조치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60년생인 류제돈 대표가 그룹의 핵심자산을 관리하는 롯데물산 대표직에 오른 건 신동빈 회장의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보필하며 자금을 관리해온 인물이 핵심 계열사 대표로 자리하면서 금고지기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롯데그룹 관계자는 "류제돈 대표는 그룹의 중요한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롯데의 지배구조가 지분 대신 경영진 임명권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는 것이 총수의 신임을 얻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롯데의 경우 지분율이 적어도 총수의 임명권이 특정인에게 주어지면서 지배구조가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홍기용 교수는 “류제돈 대표를 내정한 것만 봐도 50% 이상의 지분율로 (대표 자리에) 앉혔다기보다 총수의 측근으로 활용된 사례”라며 “롯데의 지배구조가 경영진 임명권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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