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효과 헤로인 100배, 사형 약물이자 살상 무기…싸고 접근 쉬워 오남용 우려, 연예계에도 유입
1950년대 벨기에에서 처음 합성돼 의약품으로 쓰였지만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불법 제조가 시작돼 강력한 환각 효과를 가진 마약으로 불법 유통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권에서 20~30대 젊은 층의 오남용이 심각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P 약물은 최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고등학생 등 10대 40여 명을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P 약물은 과연 어떤 약물이며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일까.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도 등장
미국 사회에서 P 약물이 또 한 번 화제가 된 계기는 바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다.
전직 백인 경찰 데릭 쇼빈 측은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플로이드의 죽음은 인종차별과 무관한, 훈련받은 대로 정확히 행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쇼빈 측 변호사는 숨진 플로이드의 체내에서 마약성 진통제인 P 약물 성분이 발견됐음을 강조하며 약물 복용과 기저질환인 심장병 때문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재판에 출석한 미국의 폐 전문 내과의 마틴 토빈 박사는 사망 원인을 산소 부족으로 분석하며 P 약물 성분 검출을 사망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P 약물이 호흡률을 40%가량 줄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 영상의 플로이드는 이미 호흡을 잃기 직전의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헤너핀카운티의 최고검시관인 앤드루 베이커 박사 역시 “경찰 진압과 제압, 목 압박 과정에서 발생한 심폐 정지가 사인”이라며 “P 약물이나 심장병도 사망에 기여했지만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밝혔다. 결국 배심원단은 쇼빈의 2급 살인과 2급 우발적 살인 등 3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평결했다. 이제 형량을 정하는 판사의 선고만 남았다.
#'차라리 총살형을…'
최근 미국에서는 6월로 사형 집행일이 예정된 미국 네바다주 사형수 제인 마이클 플로이드가 변호사를 통해 사형 집행 방식 교체를 요청해 화제가 되고 있다. 제인 마이클 플로이드는 1999년 라스베이거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5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현재 네바다주에서는 3가지 약물을 주입해 사형을 집행하는데 그는 약물 주입이 너무 고통스럽다며 총살형을 요청했다. 미국에서는 제인 마이클 플로이드 외에도 여러 명의 사형수들이 약물 주입 대신 차라리 총살형을 원했다.
사형에 사용되는 약물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P 약물이다. P 약물은 진통제로 사용되는 약물이며 중독성이 강하고 값이 싼 탓에 오남용 위험이 큰 마약류로 분류된다. 호흡 억제 작용이 있어 사형에 사용되는 약물로도 활용되는데 P 약물 과다 복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사실 P 약물이라는 약물이 전세계인의 이목을 처음 끈 것은 2002년이다. 마약류가 아닌 살상용 무기로 먼저 화제가 됐다. 2002년 10월 수십 명의 체첸 반군이 러시아 모스크바의 ‘돔 꿀뜨르이(문화의 집)’ 극장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자 러시아 특수부대는 극장에 특수가스를 살포했다. 그 결과 체첸 반군은 물론이고 119명의 인질까지 모두 사망했는데 당시 살포한 특수가스가 바로 P 약물이다. P 약물은 30g으로 1만 5000명을 죽일 정도로 독성이 높다.
이번에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가 적발한 P 약물 불법 투약 10대들은 과감하게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스스로에게 사형 약물을 투약하는 행위가 됐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미중 무역분쟁의 한 축
그럼에도 P 약물은 신종 마약으로 급부상했고 전세계적으로 불법 유통과 불법 투약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P 약물 오남용의 폐해를 주목해 왔는데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선포한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P 약물과의 전쟁’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P 약물을 비롯한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자가 매일 130여 명 발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미국 질병통제청에 따르면 P 약물 등 아편 계열 합성 마약 오남용으로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3만 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러시아 인접국을 통해 유럽 지역으로 P 약물이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는데 에스토니아에선 인구 100만 명당 마약 중독 사망자가 110명까지 늘어났다.
P 약물은 미중 무역분쟁의 한 축으로 떠올랐을 정도인데 P 약물이 중국에서 대량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내 친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P 약물 미국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아 많은 미국인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며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압박에 중국 마약 통제위원회와 미국 규제당국은 공동기자간담회를 갖고 ‘중국 발 P 약물 밀반출 작전을 중단시키기 위한 미중 수사 공조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과 미국 정부의 강력 단속에도 불구하고 중국 마약거래상들은 온라인 광고로 주문을 받아 가상화폐로 대금을 결제하도록 한 뒤 일반 편지 형태의 국제우편으로 미국에 P 약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대량 유통을 하고 있다.
#미국에선 사망 연예인도 발생
안타깝게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 유독 마약류나 약물복용으로 자주 문제가 되곤 한다. P 약물 역시 비슷하다. P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미국 연예인도 있다. 그는 바로 미국 방송사 CW 드라마 ‘더 플래시’에서 주인공 플래시의 어린 시절 역할을 맡아 주목 받은 아역 배우 로건 윌리엄스다. 2020년 16세의 나이로 사망한 로건 윌리엄스는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 등에 있는 치료 센터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P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만큼 P 약물은 중독성이 강하며 사망 위험도 높다.
2019년 7월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LA 에인절스의 투수 타일러 스캑스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사체에서 술과 더불어 P 약물과 옥시코돈이 검출됐다. 미국 경찰은 스캑스가 알코올과 함께 강력한 진통제인 P 약물과 옥시코돈을 투약하고 자신의 토사물에 질식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일을 계기로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2020년 스프링캠프부터 P 약물을 비롯한 마약성 진통제를 약물 검사에 포함하기로 협의했다.
한편 2020년 11월 ‘불리 다 바스타드’로 활동 중인 래퍼 윤병호로 추정되는 인물이 마약 투약을 자수했다. 그는 ‘f.t.w_independent_records’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마약류 투약 사실을 고백했다. 이미 중학생 때부터 기침약 성분인 아편 계열 마약류 코데인부터 대마초와 스파이스 등을 투약했으며 ‘고등래퍼’ 출연 이후 갑자기 얻게 된 유명세로 너무 혼란스러워 엘에스디와 엑스터시, 코카인, 케타민, 필로폰과 헤로인, P 약물 등 너무 많은 마약들을 했다고 고백했다.
여기서 P 약물은 여러 투약 마약류 가운데 하나 정도로 짧게 언급됐지만 이미 국내 연예계에 P 약물이 유입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눈길을 끈다. 연예관계자들은 P 약물에 중독된 연예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프로포폴처럼 병원에서 관리하는 마약성 약물의 경우 병원과의 친분 등으로 연예인들이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약국 관리 부실이 문제
새로운 마약, 특히 마약성 약물이 등장해 국내에서 마약 유통이 확산되는 과정은 마약류에 따라 각기 다르고 세부적인 부분도 매우 복잡하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연예인이 투약해 화제를 유발하거나 마약성 약물을 직접 관리하는 병원에서의 불법 유출, 또는 의료인의 불법 투약 사실이 적발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프로포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가 적발한 P 약물 불법 투약 10대 사건은 이런 흐름에서 다소 비켜간 것으로 보이지만 적발된 10대들이 부산·경남 지역의 병원에서 자신 또는 타인 명의로 마약성 진통제 P 약물 패치를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틀에서는 이에 부합되는 사례다.
이런 흐름은 2020년에 이미 감지된 바 있다. 울진군의료원의 부실한 마약류 관리가 문제됐는데 2020년 2월 울진경찰서는 울진군의료원 소속 간호사 3명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한 간호사는 P 약물을 몰래 빼돌려 한 차례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았고, 또 다른 간호사는 내시경 환자에게 투약하고 남은 P 약물을 반납처리 하지 않고 동료 간호사에게 투약해준 혐의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인증 병원인 울진군의료원의 부실한 마약류 관리 실태도 문제가 됐지만 이들 간호사들이 P 약물을 투약해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업무를 봤다는 점이 더 화제가 됐다.
2020년 9월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에서 제출받은 3년간(2017~2019) 의료용 마약류 도난·분실 사고 세부현황에 따르면 P 약물 1989개가 도난당하거나 분실됐다. 프로포폴이 605개 도난·분실된 데 비하면 3배가 넘는 양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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