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끌고 있는 부분은 나이 차이지만, 시먼즈가 존슨 총리의 '막후 실세'라는 주장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먼즈의 정치적 입김이 강해 존슨 총리가 어린 신부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에는 존슨 총리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는 측근의 폭로까지 터지면서 영국인들의 관심은 온통 존슨 총리 커플에게 쏠리고 있다.
둘이 24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은 2017년 시먼즈가 보수당 홍보 담당으로 합류하면서였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공동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매튜 시먼즈와 변호사인 조세핀 맥아피 사이에서 태어난 시먼즈는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블록버스터 영화 ‘어톤먼트’의 오디션을 본 경력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접고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홍보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환경운동가인 잭 골드스미스 하원의원과 함께 일한 시먼즈는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보수당에서 일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소회를 말하기도 했다. 그 후 보수당 중앙 본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빠른 속도로 승진했으며, 이런 그를 가리켜 당시 동료들은 “자신만만하고 영리하며 열정적이었다”면서 “좋은 동료였고, 당내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고 묘사했다.
정치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시먼즈와 긴밀한 사이인 한 장관에 따르면, 시먼즈는 특히 현안과 대중 여론에 대해 뛰어난 직감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2010년 보수당 홍보본부장 자리를 꿰찬 시먼즈는 2년 후 당시 런던시장이었던 존슨의 재선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시먼즈는 홍보본부장 겸 대변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존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 후 시먼즈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존 휘팅데일, 지역사회부 장관이었던 사지드 자비드와도 함께 일하면서 보수당 내에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2017년 보수당 커뮤니케이션 담당을 맡은 후부터는 영국 정치의 중심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매주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며 당내 핵심 인물로 부각됐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시먼즈는 보수당 선거본부(CCHQ)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외무장관이었던 존슨과 염문설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2018년, 존슨이 시먼즈의 서른 번째 생일파티에 참석해서 아바 노래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는 모습이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존슨은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리나 휠러와 25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결국 존슨과 시먼즈를 둘러싼 수상한 소문은 휠러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존슨과 휠러는 그해 여름 갈라섰다. 그해 가을부터 존슨과 시먼즈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다우닝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2019년 총선 선거 캠프에서는 이미 시먼즈를 가리켜 미국의 영부인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플로투크(FLOTUK)’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해 7월, 존슨이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총리에 선출되자 둘은 나란히 다우닝가 10번지로 입성해 동거를 시작했다. 이로써 시먼즈는 영국 최초의 ‘퍼스트 걸프렌드’가 됐으며, 또한 최초로 다우닝가 10번지에 거주하는 미혼 커플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해 4월에는 아들 윌프레드 로리 니컬러스가 태어났다. 현직 총리가 자녀를 출산한 것은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캐머런 이후 세 번째다. ‘니컬러스’라는 이름은 존슨 총리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당시 그를 치료한 두 명의 의사인 닉 프라이스와 닉 하트에서 따왔으며, ‘윌프레드’와 ‘로리’는 각각 존슨 총리와 시먼즈 조부의 이름이다.
내년 7월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될 경우, 존슨 총리는 1822년 이후 처음으로 재임 중 결혼하는 총리가 된다. 존슨 총리는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이지만, 시먼즈는 초혼이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옥스퍼드대학 동창 알레그라 모스틴-오웬과는 두 번째 부인인 휠러와의 불륜 사실이 들통 나면서 결혼 6년 만에 이혼했다. 변호사인 휠러와의 사이에 네 명의 자식을 두었다. 이 밖에도 2009년, 런던시장 재직 시절 내연 관계였던 미술 평론가 헬렌 매킨타이어와의 사이에서도 혼외 자식을 한 명 두었다.
존슨 총리와 시먼즈는 서로를 각각 ‘베어’와 ‘오터(수달)’란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요컨대 존슨 총리가 시먼즈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다름 아닌 막후 실세라는 의혹이다.
시먼즈를 가리켜 ‘존슨의 궁정에서 사는 애정에 굶주린 교활한 여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존슨 총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시먼즈는 순진한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인 전투원이다”라고 비꼬고 있다. 이를테면 존슨이 시먼즈와 단둘이 아파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다음 날이면 이상하게 결정을 뒤집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평소 동물복지 및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시먼즈가 영국 정부의 오소리 도태 작전을 철회하는 데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이런 의혹은 시먼즈가 도태 작전이 실시되기 전 동물보호운동가들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의 확실해졌다. 이 밖에도 존슨 총리가 취임 후 행한 첫 연설에서 동물 복지 약속을 한 것도 사실은 시먼즈의 입김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총리 측근들의 잇따른 사임에도 시먼즈가 관여했다고 믿고 있다. 지난해 말 갑자기 사임한 리 케인 공보담당과 한때 존슨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도미니크 커밍스 선임보좌관의 경우가 그랬다. 케인의 경우, 존슨이 수석보좌관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시먼즈가 반대해 무산됐고, 커밍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의혹이었다.
한때 ‘실질적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커밍스는 브렉시트 총괄책임을 맡았던 인물로, 존슨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혔기에 그의 사임은 더욱 이례적이었다. 이에 당시 영국 언론들은 총리실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던 커밍스가 토사구팽 당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암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쫓겨난 커밍스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하면서 최근 존슨 총리의 정치 생명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커밍스는 총리 관저의 인테리어에 투입된 막대한 비용의 출처가 의심스럽다고 폭로하면서 “존슨 총리는 내게 이 인테리어 비용을 비밀리에 보수당 거물급 후원자가 부담하도록 지시했다. 나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데다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관저의 커튼, 벽지, 가구 등의 교체에 투입된 비용은 20만 파운드(약 3억 원)였다.
이와 관련, 영국의 ‘태틀러’는 인테리어를 싹 바꾸길 원한 인물이 다름 아닌 시먼즈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시먼즈가 “전임 테레사 메이 총리의 인테리어는 ‘존 루이스’ 스타일로 끔찍하다”면서 “상류층 보금자리 수준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존 루이스’는 영국 중산층 가정이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이다.
존슨 총리를 옹호하는 쪽의 주장은 다르다. 총리실 관저가 워낙 낡은 데다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영국 총리에 대한 처우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나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론은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해명을 납득하는 영국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태껏 존슨 총리만 이런 대접을 받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 정치 문화 특성상 역대 영국 총리들은 다우닝가 10번지의 낡고 소박한 공관에서 근무하는 걸 영광으로 여겨왔다. 때문에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는 존슨 총리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다.
다우닝가 10번지는 어떤 곳? 300년 역사의 ‘노후 주택’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이자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넘버 텐(Number 10)’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본래는 수석 재무상을 위한 저택이었지만 19세기 들어 총리가 수석 재무상을 겸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총리 관저가 됐다.
영국 정치의 심장부이지만 규모가 방대하다거나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소박한 노후 주택에 더 가깝다. 집 세 채로 이뤄진 건물에는 100여 개의 방이 있고, 직원 200명이 근무하고 있다. 총리 전용 사저는 3층에, 그리고 주방은 지하에 있다. 이 밖에도 총리가 근무하는 집무실을 비롯해 각료들과 만나는 회의실, 국가지도자와 외국 고위인사들을 만나는 만찬장과 접견실 등이 있다. 건물 뒤편에는 내부 안뜰과 2000m² 너비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도 있다.
의회 가까이에 있는 편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초기 총리들 가운데 이곳에 들어와 살았던 경우는 드물었다. 이곳을 기피한 이유는 초기 총리들이 대부분 귀족층이었기 때문이다. 더 크고 더 훌륭한 저택을 소유한 귀족들의 눈에 10번지 건물은 그저 그런 평범한 건물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에서 한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점차 낡아가면서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유지비용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결국 살아남은 이 건물은 지금은 영국 정부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 됐다. 1985년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에 대해 "국가 유산 가운데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상징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검은색으로 칠해진 현관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현관문’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문은 1766년 건축가 켄튼 쿠즈가 디자인한 것으로 검은색 참나무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1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박격포 공격 이후 방폭 철문으로 대체되었다. 원래의 참나무 문은 전쟁 내각실의 ‘처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이 방폭 철문은 동일한 모양과 색상으로 두 개가 있으며, 재정비를 위해 2년마다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있다. 다만 철문이기 때문에 여덟 명이 들어 올려 운반해야 할 정도로 육중하다.
안전상의 이유로 문은 밖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한다. 문 안에서는 경호원이 CCTV로 외부 상황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문 앞에 설치돼 있는 우편함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 차원에서 구멍이 막혀 있기 때문에 사실은 장식용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문 앞에는 10번지를 의미하는 숫자 10과 사자 머리 모양 손잡이, ‘제1대 수석재무상’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황동 문자판이 부착돼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이 행운을 위해 사자 머리를 만지고 가기도 했으며, 그 후에는 손상을 막기 위해 주철로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원래의 것을 복제해 놋쇠로 만든 후 검은색 칠을 해놓았다.
숫자 10에 대한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37도가량 살짝 기울어진 ‘0’이 사실은 숫자가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사용하던 ‘트라잔 알파벳’의 대문자 ‘O’라는 추측도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